조직학 시험문제를 출제하려다가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의대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일까?”라고 말이다. 항상 생각하고, 또 늘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말이지만 오늘 밤에는 글 하나를 써두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심각한 내용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적어두는 것이다.
의대생을 가르치는 주체는 “의과대학의 교수들”이다. 의대생들은 오직 의과대학 교수들에게 수업을 받는다. 물론 의예과 시절엔 인문계열이나 자연계열의 교수들로 부터 강의를 받기는 하지만, “의학”은 모두 의과대학 교수들로 부터 배우는 것이다.
첫문단을 쓰다가 갑자기 제목에 번호를 붙였다. 아무래도 말이 길어질 듯하여 짧막하게 시리즈로 써보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 피교육자인 “의대생”들에 대하여 간단히 적어보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의대생은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라고 말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의 꿈을 이루는 통로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무엇인가? 대답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말할 수 있다.
“좋은 의사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에게 배우는 “의대생”들이 내게 주는 의미이다. 그들은 무궁무진한 미래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잘 교육이 된다면 그들은 “좋은 의사”가 되어 “의료”라는 본질을 수행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의사의 의료적 행위”의 숭고함은 퇴색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라는 직업은 직업의 의미를 넘어선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숭고함’에서 멀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의학 중에서도 기초, 그것도 가장 기초가 되는 “해부학”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의사가 되는 첫걸음인 해부학을 잘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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