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바울교회가 사는 길

By | 2021년 5월 9일

바울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당연한 결과이다. 사필귀정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한국교회가 망해가는 이유는 기독교의 본질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정신이 죽고, 오직 “세상적 경제논리와 샤마니즘“만 남아 있는 교회가 망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의 비성경적인 종교생활(신앙생활이 아닌)이 수많은 성도들을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본다. 다른 교회는 제쳐두고라고 내가 속해있는 호남지역에서 비교적 큰 바울교회를 생각해 본다.

바울교회가 사는 길은 없을까?

그 방법을 논하기 전에 바울교회(성도를 지칭함)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전에 이루었던 양적 성장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큰 교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그런 덩치 큰 교회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호남의 제1교회”라는 식의 말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그말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 얼마나 가소로운 말장난인가 말이다. 교회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 본질을 찾고, 다시 예수정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것”이다.

첫째로, 원로목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원로목사님이 젊은 청춘을 바쳐 큰 교회를 이루는데 공헌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히 그 분의 헌신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후임자에게 물려준 상황에서 장로들과 성도들은 더 이상 원로목사에 대한 의존이나 기대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을 위해 원로목사님도 노력을 하셔야 한다. 당회에서 10년을 약정하고 선교비지급을 약속했지만, 현재 지급되는 선교비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셔야 할 듯하다. 선교비로 드리는 돈은 성도들의 피같은 헌금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담임목사는 철저하게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초심은 담임목사 자신이 갖고 있던 초심이 아니라, 목회자로서 가장 순수하고 헌신적인 모습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뜻이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이니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라는 비신앙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성도들로 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금품이나 향응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행사 때 봉투를 받고, 또 대접을 받는 일체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성도들을 대접한다면서 교회헌금을 사용할 것이라면 대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말씀 연구를 열심히 해야 한다. 말씀에 대한 고뇌없이 비슷한 설교를 계속한다면 바울교회는 머지않아 교회로서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당회와의 협력체계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 관계를 종전의 교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성경에서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교단들이 보여주는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의 계급화와 차별화, 서열화와 권력화에 대하여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교회의 본질을 찾는 노력을 담임목사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뜻이다.

세째로, 담임목사와 장로들은 바울교회에 대하여 평가를 받아야 하고, 바울교회의 비전과 방향을 다시금 수정해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이 교회가 새롭게 거듭날 수 없다. 물론 이런 것을 한다고 무조건 교회가 새로워지지 않는다. 나의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 “지금 무엇이 문제이냐?”는 무책임하고 무지한 반응을 보여서는 안된다. 한국교회가 썩었다는 평가에서 바울교회가 비껴나갈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교회시스템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바울교회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네째로, 당회를 이루고 있는 장로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당회가 아직도 교회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판단에 따라 교회를 바로 세워나가는데 힘써야 한다. 당회가 성도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교회를 바로 세워가기 위한 노력없이, 지금처럼 당회가 대충 진행된다면 당회로서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사실, 평신도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당회의 장로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장로들은 대안이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부서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장로의 직무를 다했다고 말하면 안된다. 고령화을 이미 보이는 바울교회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다섯째로, 성도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종교적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학습되어 온 탓에 지금의 모습을 버리기 쉽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복적 신앙과 샤마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달콤한 설교에 더이상 속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속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성도들 자신의 탐욕 때문이다. 자신의 탐욕과 탐욕을 부추기는 설교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헌금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면 복받는다는 샤마니즘에서 벗어나,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한번만이라도 둘러보라는 말이다. 만일에 교회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헌금으 한다면 헌금의 사용내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냥 믿고 맡기면 안된다는 뜻이다. 헌금을 하는 주체가 스스로 재정에 대한 감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재정이 바로서야 교회가 바로 서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교회의 추한 모습은 모두 재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여섯째로, 바울교회는 이제 모든 재정을 공개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당회원인 장로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 뿐만 아니라,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 교회가 공개하지 못할 재정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아니라, 죄인 것이다. 재정의 비공개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최소한 성도들에게라도 상세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체감사가 아닌 외부 평가기관의 평가를 통해 재정의 합리성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당회도 재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관례대로 써왔던 재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전면검토를 하면서 수정보완해 가야 한다. 앞으로 계속 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금 재정의 불균형적 지출에 대하여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곱째로, 바울교회의 모든 성도는 이제 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종교생활에만 빠져 있으니 생각할 틈이 없는 것이다. “담임목사에게 잘 해야 복받는다”는 무당같은 소리를 해대는 목회자들에 대하여 한번만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왜 종교개혁을 했고, 가톨릭에서 기독교가 나왔는지 한번만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지금의 여러분들의 모습이 ‘기독교’의 모습인가?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은 성경과 관계가 없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교회 안에만 있지 말고 교회 밖으로 나와 교회 안을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그 안에 있으면 문제인식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특히, 교회 내 직분에 따른 계급화와 서열화의 발생, 그것에 의한 차별화와 권력화가 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시점에서 바울교회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초대교호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갱신해야 할 의무가 지금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에게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주일 오후 점심을 먹고나서 나의 생각을 적어 본다. 바울교회의 적지않은 성도들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복음이란 곧 “이단”이다. 자신이 이미 이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적 신앙생활”이 아닌 “이단적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누군가는 왜 교회 장로가 이렇게 격한 글을 공개적으로 쓰냐?며 불편해할 수 있다. 그런데 반문하고 싶다. 현대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스스로 교회를 새롭게 세우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그저 종교생활에만 열중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따라서 함께 기도하며 죽어가는 교회를 살려보자는 뜻이다.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지 내게 연락을 주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선지자도 아니고, 무슨 의인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교인 중 한 명일 뿐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바울교회여! 제대로 예수를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뜻을 조금이라도 알아가려고 노력해보자는 뜻이다. 더 이상 샤마니즘화되어 있는 한국교회의 이단적 모습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삶의 시간들이 점점 줄어가는 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 뜻을 이루어가며 살자는 뜻이다. 바울교회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모습을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자는 뜻이다. 따라서 추락하고 있는 바울교회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정신 좀 차리자. 바울교회여!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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