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정의’가 없는 것일까? ‘선의’가 없는 것일까? ‘배려’가 없는 것일까? ‘존중’이 없는 것일까? ‘친절’이 없는 것일까?
글쎄다.
이런 것들이 없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보편적”이지 않고 “선택적”이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다.
- 보편적 (普遍的) universal :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하는 것.
- 선택적 (選擇的) selective : 여럿 가운데서 골라 뽑는 것.
보편적이어야 할 정의와 선의, 배려와 존중이 선택적이라는 사실이다. 그 선택적인 이유도 자신의 이익과 정치적 성향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고 슬픈 것이다.
결국은 자신의 이익과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선택적 행위는 결국 소인배의 행위이다. 우리의 삶이 보편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할 때 우리에게는 천국이 없는 것이다.
아파트가 주거지의 기본이 된 우리사회에서 그 사는 모습을 한번 들여다 보자. (아파트 주민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단면을 들여다 보자는 뜻에서 적어본다.)
- 이웃은 없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인사는 커녕 무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아는 사람에게 대할 때 행동을 보면 가히 놀랄만 하다.
-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한 태도의 1/100만 이웃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자신의 집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기에 창문으로 쓰레기를 마주버린다. 먼지를 털어낸다.
- 주차를 보면 장애자를 위한 장애인주차장의 이용차량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 휠체어가 지나가고 보행자가 지나가야 할 횡단보도에 주정차하는 차량을 들을 보라.
- 분리수거장을 보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보다는 무지한 행동의 결과를 보여준다.
- 아파트 단지안에서 운전자들은 보행자를 보호하거나 배려가 전혀 없다.
- 이기적인 주차는 또 어찌하랴.
- …
사람들의 행위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는 삶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나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지친다. 그리고 내 자신을 돌아다 본다. 내 안에는 이런 모습은 없는가?하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보기도 한다.
비단, 아파트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모스일까?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일아나는 모습이 아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익이나 차세대의 삶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자신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인데도,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 그 이익을 자신의 자식들에게만 물려주면 된다는 생각일까?
보편적 공의, 보편적 정의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래야만 우리사회가 더 이상 지옥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지속된다면 우리사회는 지옥이 될 것이다. 이미 지옥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기준이 선택적이 될 때, 편가르기와 그 결과에 따른 상태를 적대시하고, 폄하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천국이 아닌 지옥이 다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아직도 보편적 공의를 고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여준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