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에선 처음으로 글을 쓴다.
나는 해부학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교수이다. 의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인체의 구조를 강의한다. 해부학, 조직학, 발생학 등 학생들이 의학을 처음 접하면서 어렵게 느끼고 힘들어하는 과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부학관련 과목은 의학을 배우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해부학은 기초의학에 속한다. 이를테면,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생화학, 미생물학, 유전학, 감염학, 예방의학, 병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기초의학에 속한다.
정부의 2천명 증원 계획
어떤 근거로 2천명 증원 계획이 세워져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근거라고 제시한 3가지의 보고서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문제점에 대해서는 의료계에서 계속 의견을 제시하지만, 정부는 들을 생각이 없다. 심지어는 의사협회를 의료계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있다.
정부는 130여 차례 의료계와 만나서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누구와 어떤 주제를 가지고 만난는지에 대하여서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130이란 숫자로 사람들의 귀를 속이고 있다. 최근에 여섯차례인가 만났다고 하는데, 그 만남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소수의 의견만 듣고 결정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2천명을 증원했을 때의 문제점에 대하여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가?
앞서 말한대로 나는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더구나 해부학에는 해부학실습이라는 시신을 이용한 실습이 포함되는 과목이다. 우리대학은 일찌기 “시신기증자협회”라는 모임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서 기증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여러 여건들 때문에 15구의 시신을 매년 해부한다. 학생이 142명(입학정원 기준)이니, 한 테이블당 9~10명 정도의 학생이 실습을 하게 된다. 만일에 학생수가 증가한다면 시신의 수급 문제와 실습실의 확장 문제가 대두된다. 이것은 말처럼 쉽게 되는 문제가 아니다.
임상실습은 어떠하랴? 또 의사가 된 이후에도 인터 1년, 레지던트 3~4년의 기간도 교육기간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도제식 교육방식이 적용된다. 지금도 도제식 교육이 힘들정도의 숫자인데, 70% 가량 정원이 증가된다면 교육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입학정원수가 적은 대학에서는 적정수의 증원이 되면 교육에 어려움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의 휴학과 전공의들의 사직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다. 그동안 대학병원급 대형병원들이 전공의들의 인력(?)을 이용하여 운영되다보니 그들의 빈자리가 크다. 병원마다 진료의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고, 정부는 전공의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지만 전공의들을 복귀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사실 그동안 강경하게 압박만 해온 정부에 대하여 MZ세대인 전공의들의 복귀는 미비한 수준이다. 그들의 동시다발적 사직은 집단행동으로 매도되고 있지만, 각자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사직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특히, 갓졸업을 하고 인턴에 임용된 신입인턴이나, 인턴을 마치고 각 과에 레지던트에 합격한 전공의들은 임용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수련도중에 그만 둔 경우와는 또다른 문제이다.
학생들의 휴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나로선 많은 걱정이 앞선다. 교육과정이 미루어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 중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의 복귀가 너무 늦어져서 물리적으로 학기를 운영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유급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3월 말에는 복귀를 해야만 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우리대학은 3주 연기를 통합강의 대표교수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그럼에도 또 걱정되는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리듬의 단절”이다. 학기와 방학이 반복되는 교육과정의 특성에 맞추어 학생들은 학습과 쉼을 반복하는데,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학기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준비해온 학생들의 학습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생들 스스로 학습리듬을 잘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겠지만, 이번 사태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깨진 리듬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매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것이 매우 걱정스럽다.
정치적 논리에 무너진 의학교육과 의료계
갑작스러운 의대정원 증원의 문제는 의료계와 의과대학이 반발할 수 밖에 없다. 의학교육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온 무지한 정책이다.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함에도 정부는 서둘러 숫자만 증가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일명 ‘낙수효과’를 바라는 것일까? 지금과 같은 의료시스템이라면 필수의료를 하려는 의사들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의대교수들은 증원을 반대하는데, 대학의 총장이나 본부는 교육부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원하는 숫자 이상의 증원계획을 제출했다. 의과대학의 목소리를 무시한 결과이다. 이번 사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의대증원 문제를 교육부가 아닌 보건복지부가 주관해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2차관인 박 OO차관을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아마도 의사협회에서 나중에 법적 다툼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2천명 증원의 시작이 진정으로 붕괴된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리기 위함이라면, 이것은 오판에 의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만일에 다른 목적으로 2천명 증원을 시작했다면, 진짜 나쁜 정부와 해당 부처가 될 것이다. 현재 의료계가 반발하고, 의과대학들이 반발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사직을 했고(물론 사직이 처리된 경우는 없어 보인다.), 학생들은 휴학을 신청했다(이것도 단 한건도 처리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전공의들을 사법처리할 계획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또 의사협회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모습은 이번 사태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나로서도 무슨 해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다치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려운 학문을 배워서 의사로서 성장해 가고 있는 과정에서 그 과정을 버리고 환자 곁을 떠난 것은 비난에 앞서 왜 그들이 떠나야만 했는지에 대하여 국민들과 정부는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의대생들의 휴학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하면서 갈라치기를 할 것이 아니라, 의료계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정부 여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의대생도, 전공의도, 의사들도 모두 국민의 한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