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한 시신

By | 2024년 4월 1일

카데바(cadever)라는 용어는 “해부실습용 시체”를 의미한다. 미국식으로는 ‘커대버’라고 읽는다. 사실 우리는 죽은 인간의 몸을 시체라고 하지 않는다. “시신”이라고 부른다. 조금이라도 점잖게 부르기 위함이다. 더우기 ‘사체’라는 표현은 인간에게 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문화는 시신을 매우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다룬다.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갑자기 이슈화가 된 해부실습

최근에 의대증원과 관련되어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부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해부학실습”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특히 보건복지부 차관의 카데바 발언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시신기증을 서약한 분들이나 이미 기증하신 분들의 유가족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다. 카데바를 마치 짐짝 취급하듯한 발언은 해부학을 가르치는 나로선 참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당시에 페이스북에 나의 분노를 드러냈지만 블로그에는 글을 쓰지 않았었다.

시신기증을 서약하신 분들

전북의대에는 “전북시신기증자협의회”가 있다.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서 시신기증에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 병원에 진료차 오셨던 분들이 이곳에 들러 상담도 하고, 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하신다. 간혹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는 경우, 오신 분들에게 꼭 인사를 하게 되는데 그 분들이 늘 제게 하시는 공통된 말씀이 있다.

“나를 잘 해부해서 나처럼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없게 잘 연구해 주세요”

이처럼 시신기증을 약속하신 분들의 공통된 소망은 바로 의학발전에 기여하시겠다는 의지이시다.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돌아가시면 몸을 전북의대에 맡기신다. 전북의대에 기증하시는 분들은 연 평균 20분 정도되신다. 코로나 때 약간 줄었다가 다시 예년의 기증자수를 보여주고 있다.

타대학으로 시신을 보내는 경우는 없다.

의대의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차관의 무지한 발언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보통 시신을 맡기시는 경우는 해당대학의 발전을 위해 기증한다. 따라서 만일에 타대학으로 보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본인(이미 돌아가신)이나 유가족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많은 의과대학에서 해부실습용 시신은 부족하다. 의대증원을 밀어부치기 위해 정부부처의 직원의 무지한 발언은 얼마나 준비없이 의대증원을 밀어부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해부실습 과정

시신을 기증하면, 곧바로 방부처리를 해서 냉동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전북의대의 경우에는 3년 정도 후에 실습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야만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실습이 가능하게 된다. 즉, 3년 정도의 미래에도 예정한대로 실습이 가능하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각 대학들마다 이런 식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생각된다.

실습의 시작과 끝은 추모식과 입관식이다.

해부실습은 3주간 골학실습(뼈를 가지고 하는 실습)을 하게 되고, 그 이후에 12주간 해부실습을 하게 된다. 해부실습의 첫날은 추모식이다. 해부실습 몇일 전에 냉동고에서 이미 꺼내놓은 시신을 해부실습 첫날에 학생들은 시신을 깨끗하게 닦고 제모를 한다. 그리고 시신의 손목에 부착되어 있던 기증의 명찰을 떼어서 실습대 모퉁이에 매달아 놓는다. 시신의 존함을 실습내내 보게 된다.

추모식에는 모든 학생이 추모사를 쓴다.

예전에는 대표학생만 추모식에서 낭독할 추모사를 썼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모든 학생들이 추모사를 쓴다. 이런 퍼포먼스는 매우 의미가 있다. 단순한 행사가 아닌 의미있는 과정이다. (이 부분은 조만간에 논문으로 나오게 된다.) 이렇게 작성된 추모문은 모든 실습이 끝난 후에 입관식 때 관속에 시신과 함께 넣게 된다.

“알고 하면 해부이고, 모르고 하면 훼손이다.”

해부실습을 지도하면서 늘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알고 해부를 해야만 한다. 따라서 미리 예습을 해와서 실습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위해 모든 학생들은 실습 전에 같은 조웜들에게 자신이 그날 해야 할 실습 내용을 발표한다. “오늘은 OO부위에서 OOO식으로 접근해서 OOO구조물을 관찰하려고 한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실습을 다 마친 후에는 다시금 조원들에게 발표를 하게 한다. 그날 자신이 해부한 부위과 구조물을을 조원들에게 설명하고 보여주게 된다.

시신과 친해지는 의대생들

생전에 자신의 몸을 맡기겠다고 서약한 분들의 시신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진지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친해진다는 느낌을 준다. 시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열심히 해부를 하지만, 시신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진다. 간혹 추모사에서 시신의 존함을 부르는 학생들도 있다. 이것은 실습마지막 날인 입관식 때 확실하게 보여준다. 인체의 구조를 더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해부학실습은 정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해부용 시신의 입관식

일반적인 입관식은 가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해부실습용 시신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학생들이 조각난 시신을 잘 수습하여 관 속에 넣은 후 관뚜껑을 봉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각 조별로 자신들이 실습 첫시간에 썼던 추모사도 함께 넣는다. 냉정할 것 같은 의대생들도 입관 후에는 관을 어루만지면서 어르신들을 보내드린다.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화장 그리고 납골당

해부실습용 시신들은 모두 화장이 된다. 물론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날짜를 조정해서 가족들이 모시고 가서 화장하도록 한다. 물론 비용은 학교에서 지불한다. 화장한 후에는 실습실 앞쪽에 있는 추모실에 모신다. 물론 가족이 원하는 경우에는 가족이 모셔가기도 한다. 따로 가족묘가 있거나 선산이 있는 경우에는 모시고 간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10년간 학교 추모실에 모신다. 10년이 지나고 나서 가족이 모시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실습실 앞 추모비 주변에 합장형태로 보신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용 비석으로 덮게 된다.

4월 1일이 되었는데, 언제 학생들이 복귀할지 모르는 캠퍼스를 걷다가 이렇게 기록을 해두고 싶어서 연구실에 들어와 몇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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