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주부터 시작하는 해부학 강의를 위해 강의안들을 정리하고 있다. 작년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학생들에게 배포할 강의안까지 모두 점검을 시작했다. 올해 해부학 수업을 듣는 학생의 수는 230명 정도이다. 과연 강의실 수업이 잘 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수업을 해야하는 숙제가 교수와 학생들에게 주어졌다.
강의안을 들여다 보면서 ‘올해 평가는 단답형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 단답형으로 출제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단순한 암기식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문항이 아니라, 해부학 구조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문제, 즉 해부학적 추론을 묻는 질문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한가지 문제를 떠올린다.
전문가의 사각지대(Expert Blind Spot)
전문가의 사각지대(Expert Blind Spot)란 전문가가 초보자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타인의 눈높이에 맞춰 지식을 전달하지 못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한다. ‘의대생들이니깐 이 정도만 설명해 주어도 다들 이해할꺼야’라든가, ‘앞서 설명한 내용이니 스스로 연결을 해서 이해하겠지’라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사실 그런 기대(?)를 충족하는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섞여 있는 것이 의과대학의 교육현장이다.
‘이것도 몰라?’
이런 생각을 교수는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것도 모르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다. 객관식 시험문제 출제로 고민하던 중에 전문가의 사각지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교육과 평가는 한 몸이다. 교육을 하는 목적이 평가를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교육의 결과는 평가를 통해서 해부학적 구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의대생들의 생각과는 달리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몇 점을 받았는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 때문에 교육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강의안을 보면서 전문가의 사각지대에 빠지지 않도록 점검을 해보고 있다. 솔직히 책을 전혀 읽지 않은 현 대학의 교육현장에서 강의안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학생들의 학습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의안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어야 한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강의안에 있지 않는 관련 내용이 시험문제로 나오면 아우성을 치는 것이 현재의 대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강의안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것이다.
사실, 강의안은 강의내용의 가이드일 뿐인데, 언젠가 부터 강의안이 교과서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씁쓸한 마음과 강의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사각지대의 발생에 대한 두 생각이 꽉차있는 머리상태이다. 옆에서 바람을 불어주고 있는 선풍기의 바람이 더워지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