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의 몸, 시신을 해부한다는 것은 “인체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지적 욕구와 의무”와 “신성한 인간의 몸을 파헤쳐야 한다”라는 갈등 사이에서 의대생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갑니다. “해부실습을 하고 나면, 어른이 된다.”라는 말을 늘 하곤 한다. 실제로 의대생들은 해부실습을 통해서 변화됩니다. 해부학교수로서 30년 넘게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할까?
늘 이것이 숙제였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결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생물교육학과의 이준기교수와 의학교육학교실의 유효현교수와 함께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ASE(American Sciences Education)에 실었다. 제목은 “Ritualized reflection in human dissection: Liminality, ethical negotiation, and 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 among South Korean medical students(인체 해부 실습에서의 의례화된 성찰: 한국 의대생들의 경계성, 윤리적 협상 및 전문적 정체성 형성)”이다. 의대생들이 해부 실습 첫날에 쓴 추도문과 실습 마지막날에 쓴 추도문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해부 전단계에서는 이상주의와 경직된 도덕적 이분법으로 특징짓고 있다.
학생들은 해부실습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맹세하듯 선포합니다. 완벽을 약속함을 넘어 거의 율법적 서약을 합니다. 이를테면, “당신은 당신의 몸을 주셨으니, 저는 제 완벽함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든가, “저는 이 실습에 경건한 태도로 임할 것을 서약합니다. 저는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배움을 위해 해부할 것입니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조직을 마치 제 가족처럼 최대한 존중하며 다룰 것입니다.”라든가, 또한 “저는 이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냄새나 긴 실습 시간에 대해 절대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공부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할 것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
해부 중간 단계에서는 의대생들은 경계적 경험을 하게 된다.
해부가 점점 진행되는 기간에 학생들은 해부 실습의 육체적 부담, 포르말린의 톡 쏘는 냄새, 네 시간씩 서 있어야 하는 육체적 피로, 그리고 암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스스로 세운 서약을 어기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어떤 학생은 이렇게 고백한다.
“첫날 조심스럽게 피부를 벗기던 손이 금세 거칠고 무식해졌습니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적응하는군요. 그냥 용기를 내서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어요.”
“학기 중간에 해부학 수업과 생화학 시험을 동시에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몸을 마치 고기로 만든 교과서처럼 취급하며 서둘러 해부를 끝낸 적도 있었죠. 지방이 잘 안 떨어져서 짜증이 났던 게 부끄럽습니다.”
해부 실습이 끝나가면서 학생들은 집단적인 속죄 행위 의식, 즉 사과에 참여합니다.
“죄송합니다. 초심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당신의 몸을 그저 쫓아다녀야 할 과제처럼 취급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스럽습니다. 제 오만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해부가 아닌 절단을 행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 죄송합니다… 죄책감은 제가 삶의 무게를 깨달았음을 시사합니다. 이 빚을 영원히 짊어지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2/3가 넘는 학생들이 자신이 해부했던 시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부 행위가 더 이상 가족이나 신체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식되지 않고, 오히려 지도교사의 승인을 받은 엄격한 교육적 실습으로 인식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오 선생님… 12주 동안 의대생으로서 온전히 헌신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하기 싫을 때에도 선생님 생각을 하며 좋은 의사가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제 첫 환자이자 가장 훌륭한 스승이셨습니다. 교수님들이 근육의 이름을 가르쳐주셨다면, 선생님께서는 죽음의 무게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 이제 편히 쉬세요.”
해부실습 전후에 의대생들에게 꼭 추도문 작성을 권합니다.
단순히 그 시간을 채우는 행사가 아니라, 고귀한 자신의 몸을 해부하도록 허락하신 기증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은 의사로 살아가야 할 의대생의 해부학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해부실습과정을 거치면서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는 분들은 원논문을 찾아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