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둘째 아들의 폭풍문자가 내게 쏟아지고 있다. 열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나는 왜 아들이 이렇게 흥분하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사회의 암울한 이야기이지만 또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사회는 참 인간관계가 힘들다. 일대일, 즉 man to man의 관계형성이 참으로 힘들다.
이름보다는 그 사람의 지위나 관계(친인척관계)가 우선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위에 따라 형성된 관계이다보니 늘 그렇게 수직적 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직무를 위해 수직적 관계형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업무에서도 꼭 수직적 관계가 항상 있어야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발전에 저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창의성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래사람은 늘 윗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 보다는 “욕안먹거나 야단을 맞지 않는 쪽으로”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이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비합리적인 구조인가 말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있느 과정에서 한 학생이 제안을 한다. “다른 사람들 하는 방식대로 하지 말고 좀 더 창의적으로 해보자”라고. 그런데 나머지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렇게 하면 교수님한테 혼나지 않을까?”라고 반응한다. 그 순간부터 그냥 종전에 해왔던 방식대로, 남들이 하는 방식대로 준비를 하게 된다. 독창성이나 창의성은 그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아들은 문자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 “창의성이라는게 100개의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1개가 살아남는 것인데, 한국은 아이디어 자체를 못내게 막아버리느니까 애들이 “평타만 치자”라고 하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라고. 나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에 동감한다. 우리사회가 더 발전하려면 이런 것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이런 문제의 제기는 그저 바쁘게 성장위주의 사회분위기에 묻혀버리고 만다.
특히 갈등이 발생했을 때 그 해결하는 모습에서 우리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것들을 찾을 수 있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손위사람 또는 상사는 “화”부터 낸다. 갈등이 발생한 경우에는 “문제해결”을 찾아야 하는데, 화부터 내기 때문에 문제해결과는 동떨어진 과정을 겪게 되는 셈이다.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다만, 그 갈등을 어떻게 풀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갈등이 발생한 경우는 그 갈등의 발생 원인을 찾고 해결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늘 화부터 낸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아주 하등적 반응 중 하나이다. 실제로 아랫사람이 큰 실수를 했다고 해도 화부터 내는 것은 무척 미개해 보인다. 좀 더 성숙한 반응이 필요하다. 화부터 내는 것이 아닌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화부터 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아랫사람을 교육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는 학력의 높고 낮음이나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것 같다. 결국 어렸을 때 부터 갈등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반응하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이들에게 그 많은 공부를 시키면서 정작 우리는 그런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도 자녀들에게 시키지 못한 채 성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성인을 우리는 “괴물”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성장한 사나운 괴물들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