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By | 2013년 5월 13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communication)”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히 소통을 위한 통신수단이 발전했음에도 우리는 소통에 목말라한다. 대통령이 되면 으레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기업의 총수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대학의 총장도 교수들과의 소통에 대하여 언급한다. 큰 사회이던지 작은 사회이던지 우리는 소통을 원하고 있다.

이제 소통은 가족간에도 강조되어야 할 하나의 덕목이 되어 버렸다. 부부지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자식과 부모간에도, 형제간에도 소통이 필요하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다들 소통에 목말라한다. 광범위한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은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 듯 하다.

오늘은 동료교수와 이야기를 하면서 “touch”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런 이유로 touch라는 제목을 달아보았다. 부부지간에도 터치는 단순한 스킨십(skinship 스킨쉽)을 뛰어넘는 많은 터치들이 있다. 부부가 스킨십을 많이 한다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류의 터치없는 스킨십은 일종의 페팅일 수 있다.

눈빛의 터치, 말 한마디의 터치, 귀 귀울임의 터치, 미리 앞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배려의 터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부부는 서로의 터치가 필요하다. 요즈음 처럼 통신기기가 발달되어 있는 시대에 사는 부부는 통신 수단을 통한 터치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치가 가능하다. 문자로 쏘는 하트하나, 글 하나가 부부가 늘 터치하고 있는 느낌을 전해준다.

단순한 육체적 터치(physical touch)인 스킨십을 뛰어넘은 부부관계의 좋은 덕목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의 생활속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해야 하는 직장인인 남편이나 아내들이라할지라도 이러한 터치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루 1분이면 족하다. 1분을 투자한다면 10번의 문자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터치는 소통이다. 그 소통의 터치의 방법은 너무 많고 다양하다. 마음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부부애를 바탕으로 터치는 귀한 소통의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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