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한다. 나도 그렇다. 그 “변함”에서 소중한 변함은 바로 “회심”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게 이러저리 변하는 것이나 배신과 같은 나쁜 의미의 변함도 있지만, 인생에서 회심은 수많은 것을 가져온다. 특히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한 회심은 인생에서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변함”의 시작이다.
혈통으로는 히브리사람이요, 로마 시민권자였던 “사울(바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가두는데 앞장섰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멕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답한다.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그는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오직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렇게 질문하였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사도행전 9:1-9)
그는 그렇게 회심의 계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변하였고, 기독교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는 사도가 된다. 바울이 기독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그런 바울이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디모데전서 1:15)”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살았던 회심이후의 삶은 현대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고, 십자가의 길이었다. 그런 바울도 하나님앞에 죄인으로 무릎을 꿇어 엎드릴 수 밖에 없는 죄인된 인간이었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이런 회심을 보게 된다. 내 자신도 하나님을 만났다. 그런 만남의 이후에도 내 안에 수많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앞에 범죄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내 자신도 많이 변화되었다. 아직도 내안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들로 인해 늘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