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원에서 1학기에 배우는 과목 중 해부학교실 교수들이 강의하는 과목은 세가지이다. 해부학과 조직학, 그리고 신경해부학이다. 이런 과목명은 없다. 모두 “인체의 구조와 기능 1, 2″라는 과목속에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따로 교과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전북의대 해부학교실에서는 전통적으로 해부학 교과서는 “Moore“의 “Clinically Oriented Anatomy“를 사용하고 있다. 벌써 7판째이다. 한글 번역판이 있긴 하지만, 원서를 고집하고 있다. 학생들은 번역판 보다는 원서를 보길 권한다. 그 이유는 두 책을 모두 보면 알게 된다.
조직학은 이번에 바꾸었다. 유명한 Ross의 조직학(Histology)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고문사의 “사람조직학”은 좋은 책이다. 만들어진지 오래되었고 그동안 잘 다듬어져 왔다. 다만, 한글책이다 보니 학생들이 조직학용어를 한글로만 배우려고 한다. 조직학 용어를 모르고선 논문을 읽는 것이 어렵다. 조직학 용어만큼은 꼭 영문용어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내 시험도 용어를 중심으로 출제된다. 해부학 용어는 그나마 학생들이 영문을 쉽게 접근하지만 조직학은 꺼려한다.
이 책의 장점은 타이틀과 용어가 영어이다. 즉, 문장의 주어(주로 조직학용어)가 영어로 표기되고 나머지 서술부분은 한글이다. 실제 교과서의 일부를 그대로 발췌해 본다.
Portal canal에 위치한 혈관을 interlobular artery(소엽사이동맥), interlobular vein(소엽사이정맥)이라고 부른다. Interlobular artery와 interlobular vein 중 작은 것들은 sinusoid로 직접 연결된다. 큰 혈관에서는 distributing artery(분배동맥)와 distributing vein(분배정맥)이 분지되어 나와 classical hepatic lobule의 가장자리를 따라 뻗으며, 여기서 sinusoid로 혈액이 흘러 들어간다(그림 18.7). Sinusoid(굴모세혈관)로 들어온 혈액은 classical hepatic lobule의 중앙 즉, central vein을 향해 흐른다. Central vein은 classical hepatic lobule의 중심축을 관통하면서 점점 굵어지다가, 결국 sublobular vein(소엽밑정맥)으로 연결된다. 여러 sublobular vein들이 합쳐져 몇 개의 굵은 hepatic vein(간정맥)을 형성하며, 이를 통해 간조직에서 배출된 혈액이 inferior vena cava(아래대정맥)로 유입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조직학 용어를 제대로 모르고 좋은 의사가 되려고 하면 안된다. 몰라도 된다고 말하사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무식한 의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담당교수들에겐 출판사에서 보내온 그림을 모두 배포했다. 새롭게 슬라이드도 만들고 학생들에게 배포할 강의안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과서가 바뀌면 사실 교수들의 일이 늘어난다.
신경해부학은 “Clinical Neuroanatomy and Neuroscience“의 번역판인 “통합강의를 위한 임상신경해부학(5판, E*Public)”이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하는 책이다. 조직학과 마찬가지로 교수들도 새롭게 강의슬라이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학생들은 신경해부학이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임상과목에서 중요하게 쓰일 기초지식이기 때문이다.
의학에서 빼놓거나 배우지 않아도 될 분야는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 지식을 제대로 쌓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정확한 학습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강의내용을 만들어가야 한다. 학생들은 꾀를 부리거나 꼼수를 부리거나, 학점을 취득한 것으로 배움을 다 했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공부만큼은 정직해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학을 제대로 아는 만큼 우리는 죄를 적게 짓고 살게된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작게는 사기꾼이 되고, 때로는 살인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학을 배우는 의학도들에겐 도덕 그 이상의 가치를 요구받는다. 그것이 싫으면 의학의 길을 떠나면 된다. 사기꾼이나 살인자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평소에 교수님 블로그를 잘 보고 있는타학교 의전원 신입생입니다. 의학을 제대로 아는 만큼 죄를 적게 짓고 살게 된다는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그레이 해부학 등의 교과서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강의안이나 족보 볼 시간도 부족해서 아틀라스만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멍청한 질문이지만 교과서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학부 때 처럼 통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발췌독을 추천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강의안이나 족보만 볼 시간도 부족한 것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많을 수 있으나 실제로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답니다. 실제로 동아리모임, 동기모임, 동문모임 등등으로 인한 분주함 때문이겠지요.
사실 강의안이나 족보는 보조자료이고 교과서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강의안은 말그대로 강의안이고 학습의 중심은 교과서가 되어야 합니다. 또 1학년에 배운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나중에 다시 찾아 볼 때도 자신이 봤던 교과서를 보면 훨씬 빠르게 찾아 볼 수 있답니다.
저는 1학년때 쓰는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강의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나의 의학의 근본이 되었던 책인 셈이지요..
강의안을 보고 이해가 안되면(아무리 강의를 잘 해주고, 강의를 집중에서 들었다고 하더라도) 책을 찾아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현실은 많은 학생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냥 외워버리죠(일명 “막고 품어버리는”). 그렇게 외운 것이 어떻게 지식이 되겠습니까? 다시금 말하지만 학점을 취득하기 위하여 의학을 배우는 일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물론 제 말이 이상적인 말이 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의사면허시험(전국 94%가 합격하는)을 통과했다고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는 일이겠지요.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의학공부가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자신도 지금도 간혹 악몽을 꾸곤하죠. 학교에 갔는데…갑지가 시험을 본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죠. 허겁지겁…시험을 준비하다가 잠에서 깨곤 하죠.
교과서는 꼭 사야 합니다. 그거 산다고 교수에서 일전한푼 안옵니다. 리베이트가 없다는 말입니다. 교수에게는 사도 그만, 안사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꼭 사야 합니다. 교과서도 없는 학생이 어찌 학생일까요?
나중에 필요한 지식 인터넷 뒤져서 단편적 지식을 얻게 되는 모습… 참으로 추합니다. 듣보잡 정보를 지식이라고 가져오는 학생들을 보면 쥐어 패주고 싶죠(물론 쥐어 패는 일은 없지만). 선배들이 주는 왜곡된 정보(모든 정보가 왜곡되었다는 것은 아님)에 현혹되지 말길 바랍니다. (많은 정보 중 자신에게 편한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결국 그런 정보들이 좋은 정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죠)
그렇다고 시험 전날까지 교과서를 뒤적이고 있으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고, 미리미리 공부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의전원에 들어 왔는데 막상 ‘과배정에 성적은 별로 안 중요하다(서울 유명 병원 제외)’ ‘동아리나 동문 활동 열심히 해서 평판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 혼란이 오던 차였습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학부 생활을 하다 동문 골학 이후 군대식의 선후배 관계와 각종 필참의 동아리, 동문 등의 모임으로 인해 공부에 소홀해 질까봐 걱정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갈피를 못 잡던 차에 교수님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직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지식이 되는 공부를 해라는 말씀 새겨들으면서 공부하겠습니다.
성적은 하고 싶은 과를 하기 위해 쌓는 것이 아니고..
성적=실력…이라는 전제하에 쌓는 것입니다.
동문도 좋고… 동아리도 좋고… 인맥도 좋지만….
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기본의학 지식을 쌓는데…
게을리하거나 소홀이 한다면… 문제가 심각한 거죠.
이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