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자율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가 형성되다 보니 “자율”이라는 단어는 때론 중요해 보였다가도 혼란스러울 떄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혼자서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늘 그렇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아이들이 혼자서 알아서 했어요”라고요. 물론 그런 아빠의 입장이겠지요. 엄마는 다를 것입니다.
어제 우연히 주찬가 쓰던 책상앞에 붙여진 종이한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상은 이제 아내가 사용하고 있는데 아직 벽에 붙은 종이가 그대로 있었던 셈입니다. 이런 계획표를 지난번에 엄청나게 버렸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어렸을 때 부터 이렇게 계획표를 만들어서 아이들의 학습진도를 늘 체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체크리스트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돌아 보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학습을 시켰다면 아아도 아이들은 숨이 컥 막혔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부터 계획안에서 (방학숙제로 내주는 생활계획표는 숙제를 위해 만든 것이고) 학습을 하는 습관을 길러왔기 떄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학습량에 대해 분량을 조정해서 만든 계획표였기 때문에 좋은 계획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따라서 이런 작은 일에도 역시나 “균형”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게 됩니다. 이 균형이 자율성을 헤치지 않으면서 원하는 학습목표량을 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내는 걱정합니다. 이런 글을 제가 쓰면(제가 어제 사진을 찍는 순간 알아차리더군요) 몇몇 아이들이 혹사당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이런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결코 단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정확한 학습목표와 학습량, 그리고 성취동기 등 종합적인 스케쥴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과의 교감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해 오면서 보여주었던 모든 학습에 대한 태도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그리 복잡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이런 총체적인 일이 어느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려서 부터 하나씩 하나씩 쌓아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들의 “자율적인 학습” 뒤에 숨겨진 “엄마의 체크리스트”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봅니다. 부모의 자녀의 학습에 대한 행동이 “간섭”이 아닌 “관여”가 되어야 할 것이고, 아이들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침에도 다시한번 “균형”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