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여행기 (2002년 4월)

By | 2009년 12월 28일

2002년 캐나다 노바스코샤 핼리팩스에서 자동차로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가서 “디즈니월드”을 여행했던 이야기를 적은 사이트의 화면을 캡쳐한 것임.

서버를 옮기다가 폴더하나를 발견했다. 잊고 있었던 올랜도 여행기이다. 구글에서 “올랜도 여행기”라고 치면 두번째로 검색되어 나온다(2009년에 쓴 글임). 신기한 일이다. 핼리팩스메일 닷 컴에 링크를 걸어놓고 저 자신도 잊고 있었던 자료들이다. 2002년 4월… 캐나다 삶이 1년이 거의 될 무렵,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아이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고, 또 춥고 긴 캐나다의 겨울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동안 실험실에만 가느라 아이들과 여행을 해보지 못한 아빠로서의 미안함이 있었던 때에 한국에선 상당도 할 수 없는 긴 여행을 한 셈이다. 그 자료들을 보니 신기할 뿐이다. 1메가 픽셀짜리… 후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요즈음 나오는 휴대폰 사진보다 못하다. 그러나 저에겐 소중한 자료이다. 다시한번 되새기고 싶은 추억이고, 잘 커준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쏫아 올라오는 그런 사진이다.

웹페이지로 만들었던 자료는 소실되었고, 책으로 엮었던 내용의 텍스트만 가져왔다. 또한 이 자료는 그저 우리 가족의 옛 추억일 뿐 올랜도 여행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없다. 너무 오래된 일이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28일에 적음

 

[추가] 저장하드에서 사진들을 어렵게 찾았다. 다만, 모든 사진을 올리지 않고 일부 사진만 올린다. 워낙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들이라 화질이 매우 좋지 못하다. 다만, 기념으로 그냥 남겨두는 것이다.

2018년 10월 16일에 적음.

 


올랜도 여행기 

 

여행을 시작하며 

“디즈니 월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하며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가기 위한 계획에 착수하였다. 2월중순부터 계획된 플로리다 올랜도의 여행은 처음 3월말에서 4월초 출발로 변경되었다. 디즈니월드는 우리 가족이 미국에 가던지…캐나다에 가던지 꼭 방문하겠다고 아이들과 약속한 터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 첫째이고 이곳에 도착한지 6개월이 지나고 그동안 이곳 공부와 영어공부, 그리고 한국공부까지 하느라 수고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우선 전체적인 날짜를 잡았다. 가는데 5일, 올랜도에서 4일간 머문다음, 오는데 7일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루트는 이러하다.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핼리팩스에서 화요일에 출발하여 뉴브룬스윜을 거쳐 미국의 Maine주로 들어가… 95번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미국 동부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달려 미국 동남부에 있는 플로리다까지 가는 계획이다. 중간에 보스턴, 뉴욕, 워싱턴은 들리않고 곧장 내려가는 스케쥴이다. (그러나 여행직전에 변경되어 워싱턴과 볼티모어를 들리는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토요일저녁에 도착해서 다음날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쉰다음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올랜도에 머무르고…. 금요일에 올랜도를 출발해서 아틀란타와 네쉬빌, 루이빌, 클리브랜드를 거쳐 캐나다로 재입국하며… 온타이오주의 키치너를 거쳐 몬트리올, 퀘벡을 거쳐오는 약 9,000Km(지도상 거리)를 달리는 대장정이다.

  아직 정확한 비용은 계산중에 있고, 이미 자동차는 3월 19일에 1,200불을 주고 수리할 부분들에 대한  수리를 마쳤다.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기도중이다.

2002년 4월 21일 저녁에 적음.

 

여행에 필요한 서류     

  처음에 플로리다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때 핼리팩스의 한인들중 많은 분들이 가족이 국경을 넘는 경우 911사태이후 엄격하여져서 간혹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있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따라서 미국경을 넘기 위해 좀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국경까지 가서 입국을 못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준비하고 있는 서류를 적어 본다.(나중에 여행이후에 추가로 첨가할 예정이다.)

1. 여권 – 말하면 잔소리다.

2. 비자 – 보통 10년짜리나 5년짜를 받는데, 이것만 있다고 무조건 입국시켜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3. 초청 확인증 (Certificate) – 이것은 나를 캐나다로 초청한 교수의 확인서이다. 내용는 내가 가족과 함께 미국여행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할 것이고,    분명히 돌아올 것을 확인다. 의문사항이 있으면 전화로 직접 연락해라는 내용.

4. 기타 증명서

(1) 운전면허증 : 노바스코시아 운전면허증 / 한국운전면허증 / 국제운전면허증

(2) ID카드 : 댈하우지대학에서 발급한 ID카드는 대학원 구성원임을 증명한다.

(3) SIN : 노바스코시아에서 발급받은 SIN은 이곳에 법적으로 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5. 그 밖의 증명서 (증명이 될만한)

  나의 경우는 전북 대학에서 전에 비자발급용으로 제출했던 증명서인데 그 사본을 가지고 있다. 제목은 “Cerficate of Official Business Trip”이며, 내용은 “캐나다 댈하우지대학으로 부터 Visiting Scolor로 초청받아 1년간 가족동반으로 해외줄장을 가게되며 그 사이에 봉급을 일정액(액수가 표현되어 있으나 적지 않음)을 매달 지급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6. 그 밖의 서류

  지금 생각으론 아파트계약서를 가져갈까 생각중이다. 왜냐면 내가 아직 5개월 돈을 더 지불하고 있는데 설마 너희나라에 불법으로 입국하려는 것이 아니다 라는 간접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비자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첫여행이라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국경까지 꼬박 6시간을 달려야 한다.그러니 만만의 준비를 하고 출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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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많은 부분이 기우였다. 국경을 넘는데 비자와 여권만 필요했다. 911사태가 점점 미국내에서도 잊혀가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여행 첫날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음식과 관련된 준비물     

  가져갈 대강의 음식은 이러하다. 쌀, 김, 김치, 젓갈(오징어)이고, 달걀은 현지에서 조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컵라면이다. 컵라면은 12개들이 신라면과 김치라면을 2박스를 구입했다. 최소한 한국음식을 두끼는 먹어야 한다는 것이 식생활과 관련된 원칙이다.

  • 전기밥솥 –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110V용 전기밥솥
  • 그 밖에 식기 – 수저, 젓가락, 그릇, 일회용 그릇 등
  • 전기주전자 – 최근에 월마트에서 구입했다. 달걀을 쩌먹을때나 컵라면을 먹기 위해 필수이다.
  • 휴대용 가스렌지와 통가스 4개 (한묶음). 한인가게에서 30불(가스렌지)와 4개에 8불에 구입했다.
  • 아이스박스 – 월마트에서 22.79불 주고 구입 (당연히 세금이 붙는 품목임. 22.79+15%TAX) 캐나디언타이어에서는 24.99불 했다. 48L들이였다. 회사는 Coleman이라고 텐트나 레저용품 전문업체이다.

 

자동차 점검하기     

  지난 2002년 9월 20일에 자동차를 구입한 후 엔진오일 교체와 지난번 스탑등이 깨져서 점검한 것 말고는 카센터(딜러나 캐나디언 타이어)에 간 적이 없는데… 엔진오일을 교체하러 2002년 3월 19일에 캐나디언 타이어(Canadian Tire/캐나다에선 가장 크고 유명한 자동차 정비업소 체인점 / http://canadiantire.ca )에 갔다. 엔진오일만 교체하고 여행을 위한 Inspection(점검)은 그 다음주에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엔진오일을 교환하던 엔지니어가 차에 문제점들을 발견해서…내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나의 OK를 받고 나서 수리하였다.

1. 엔진오일 교환 (Formula 1 5W30)          21.99 + 4.09 + 1.322 + 1.00
2. 각종 오일점검 및 보충                         2.00
3. Stabilizer Link Kit의 교환비                 69.60 + 133.30
4. ALT. 및 A/C 벨트교환                        52.20 + 37.04 + 9.98
5. Tid Rod 교환                                    34.80 + 58.06
6. 타이어 Alignment                              49.99
7. Gasket교환                                    174.00 + 33.39
8. 엔진샴퓨                                         34.80 + 4.29
9. 브레이크 실린더 교환(양쪽)                116.00 + 110.00 + 4.19
10. 브레이크 디스크 세척(9번때문에)          34.80 + 4.75
 11. 타이어교환(전후 교환/Rotation)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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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 Exempt Labour               577.81
PST Exempt parts                 407.37
Shop Supp;ies                       28.89
HST(15%)
Total HST                             1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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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Total                        1,166.18

  혹시 몰라서 엔진오일 한통(자그마한)을 추가로 구입했는데…서비스로 주었다. 가격을 좀 깍아 볼텐데…. 왜 그리 안했는지….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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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02년 3월 22일

  Wheel Alignment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사진 길에서 핸들이 쏠리는 현상이 있어서 캐나디언 타이어로 가져갔습니다. 그곳 엔지니어 말로는 Alignment는 완벽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공짜로 새타이어로 바꾸어 주네요. 사실 이전 타이어도 6개월간 썼고 약 7,000km을 달렸기 때문에..새것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래도 새 타이어로 바꾼 후로 좀 잡아진 느낌입니다. 더 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사람들(캐나디언타이어) 많은 돈을 수리비로 받았지만… 수리에 대하여 comp;laint하면 바로 뭔가해주네요. 캬~ 이래서 많이 받는 것인지 모르겠지만….그래도 비싼 것은 어쩔 수 없다.     

  


디즈니월드(Disneyworld)

디즈니월드란?

디즈니월드? 디즈니랜드? 아직 그곳에 가보지 못한 분들은 사뭇 헬갈리는 부분이다. 저 자신도 이곳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된 사실이니 말이다. 디즈니월드는 올랜도에 디즈니랜드는 미국의 서쪽 캘리포니아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그러나 디즈니월드와 디즈니랜드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면 안된다. 물론 일본 동경에 있는 디즈니랜드도 마찬가지이다. 디즈니랜드는 디즈니월드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에버랜드는? 국력이 다르니 굳이 비교하지 말자. 우리에게 에버랜드는 그저 감사할 놀이기구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디즈니월드는 미국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월트 디즈니월드의 구성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디즈니월드는 매직킹덤, 엡콧, 애니멀킹덤, 엠지엠스튜디오 등의 4개의 테마파크로 나누어져있다. 또한 여기에 Water Park와 Downtown Disney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입디 딱 벌어진다. 아래에 각각을 설명하려고 한다.

매직킹덤(Magic Kingdom)

묻지마라 매직킹덤. 디즈니의 인기인들을 만달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놀이기구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각각의 재미는 그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학데 한다. 안에는 6개의 테미랜드로 구성되고 그 안에 몇 개의 시설들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19세기의 미국거리를 재현한 메인스트리트를 비롯하여 Adventure Land(4), Frontier Land(5), Liberty Square(1), Fantasy Land(5), Mickey’s Starland(1), Tomorrow Land((6)로 구성되어 있다. 디즈니 인기인들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된다.

Epcot(EPCOT, 엡콧)

  ECOT(엡콧)은 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의 첫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직역하자면 “미래사회의 실험적 모델”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크게 두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미래의 세계와 쇼케이스로 되어있다. 미래의 세계에서는 Spaceship Earth, Communicore, Unversity of Energy, World of Motion, Horizons, Worders of Life, Journey into Imagination, The Land, The Living Seas 등이 있다. 제목만 들어보면 알 것이다.쇼케이스는 미래의 세계보다 안쪽에 위치하며 큰 호수를 중심으로 둘러있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여기엔 각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는 곳이다. 멕시코, 노르웨이, 중국, 독일, 아틸리아, 미국, 일본, 모르코, 프랑스, 영국, 캐나다 순으로 (시계방향) 배열되어 있다.

애니멀킹덤(Animal Kingdom) –

이곳에 다녀온 분들의 의견은 둘로 갈라진다. 꼭 봐야 한다와 시간이 되면 봐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동물원인 셈이다. 그러나 이곳에 다녀온 분들중에 이곳에서의 뮤지칼은 두고두고 기억나게 하는 곳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냥 동물만 볼려고 한다면 그 기대감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나 “디즈니에서 만들었다”라는 사실을 가지고 접근해 보라. 후회는 없을 것이다.

엠지엠스튜디오(MGM Studio) –

만화천국 월트디즈니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엡콧이나 매직킹덤보다 규모는 작지만 실제 영화제작과 관련되어 일하는 곳이다. 이안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영화제목별로 건물을 두고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백스테이지나 특수촬영소 등도 볼 수 있으며 애니메니션 투어는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WaterPark I – Blizzard Beach(자료없음)

 

WaterPark II –  Typhoon Lagoon Beach (타이푼 라군 비치)

한마디로 놀이공원이다. 그러나 ‘애버랜드 등의 한국의 놀이공원보다 규모가 크겠지’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온다면 착각이다.물론 이보다 더 큰 “Wet’n Wild”가 있지만 이것과 재미를 비교하지 말라. 왜냐면 디즈니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Water Slides, Surf Pool, Castaway Creek, Rafting, Shark Reef 등의 어트랙션이 있다. 이곳은 특별히 가기전에 자세한 정보를 갖고 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Downtown Disney(자료없음)

디즈니의 동쪽 끝에 있는 디즈니빌지는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쇼핑타운과 레스토랑 등을 제공해 주는 곳이다. 한마디로 돈쓰는 곳이다. 밤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젊은이들의 취향에는 맞을 것이다.


 

올랜도에 대하여

올랜도(Orlando)

왜 올랜도인가?

  그것은 묻지마라 바로 디즈니월드 때문이다. 그러나 디즈니월드 뿐인가? 절대 아니다. 올랜도는 그 차체가 볼거리로 가득차 있다. 물론 1971년에 문을 연 우러트디즈니월드 때문에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올랜도는 하나의 거대한 리조트타운이다.

   

디즈니월드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매직킹덤, 엡콧, 애니멀킹덤, 엠지엠스튜디오 등의 4개의 테마파크와 Water Park와 Downtown Disney까지 디즈니월드를 다 구경할려고 해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이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디즈니월드의 MGM 스튜디오와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분명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날짜 때문에 MSM 스튜디오와 유니버샬 스튜디오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MGM보다 늦은 1990년 개관하였으며 헐리우드 유니버샬 스튜디오와 함께 최신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곳에 오면 낯익은 영화의 제목들로 이루어진 어트랙션(attraction)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백 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 죠스(Jaws), 주라기공원(Jurassic Park), E.T., 콩프런테이션(Kong Frontation), 대지진(Earthquake), MIB(Men in Black) 등의 어트랙션은 실제 영화속의 상황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백투더퓨터를 경험해 보라.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씨월드(Sea World)

  바다에 사는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시계 최대의 바다공원이다.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7개의 메인쇼와 각각의 어트랙션을 체험할 수 있다. Area A (Ocean Friends Entertainment/바다의 친구들)에서는 고래와 돌고래의 쇼, 펭귄과의 만남, 바다표범 먹이주기 등 절대 입장권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Area B (Beneath the Sea Entertainment/바다 밑)에서는 16만 갤런의 수조안에 5000마리 이상의 열대어를 비롯한 해양동물과 식물을 볼 수 있고 시월드극장에선 영화가 상영된다. Area C (Sea Lions/Sharks /강치와 상어)에서는 하와이안쇼, 강치와 수달의 쇼, 돌고래 먹이주기풀과 해안선의 무척추동물 등을 만져볼 수 있는 해수풀과 시월드전체를 볼 수 있는 스카이타워뿐만 아니라 상어와 해마 전용풀 등을 볼 수 있다. Area D (Shamu Stadium/ Atlantis/ 샘스타디엄)에서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타고 바다밑을 여행하고 스상스키쇼도 즐길 수 있다.

  

홀리랜드

  성지순례지를 한 곳에 모아놓은 홀리랜드. 멀리 성지에 까지 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곳. 특히 신앙인이라면 이곳을 빼놓지 않아야 한다. 가기전에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좋겠다. 교회를 몇 년정도 다니신 분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올랜도 시내

  올랜도에 갔을 때 “올랜도에 가서 주로 큰 파크들만 갔다왔다면 올랜도를 봤다고 하지 말라!”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랜도의 인터네셔날드라이브(International Drive)가면 먹을 것과 또한 볼거리가 있다. 난 잠시 들렸다 왔지만 엎어진 집, 카레이싱, 기울어진 건물 등의 볼거리도 많이 있었다. 그곳에서 피자도 먹고 게임도 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도 아이들이 식사를 마친 후 놀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즐거운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또한 60여개의 호수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각자 한번 찾아보라.

 

플로리다(Florida)

플로리다의 전체적 모양 그려보기

  플로리다(Florida)는 그 자체가 관광지이다. 미국의 동부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플로리다는 마치 우리나라 처럼 하나의 반도로 형성되어 있다. 두말하면 잔소리인 디즈니월드, 유니버샬 스튜디오, 씨월드, 홀리랜드 등이 있는 올랜도(Orlando)를 비롯하여 세계의 휴향지로 알려져 있는 마이애미(myami)의 해변은 사뭇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올랜도에서 이곳까지 차로는 하루를 꼬박가야한다. 또한 플로리다의 남쪽끝 헤밍웨이가 사랑한 섬 케웨스트(Keywest)를 직접 가보고 싶은 것은 플로리다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와서 플로리다키즈(플로리다와 키웨스트를 연결하는 다리. 42개의 섬들을 연결)를 운전하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그것뿐이겠는가? 흑인들이 판친다(?)는 소문 때문에 마이애미를 피해서 다이토나비치(데이토나비치, Daytonabeach)쪽으로 눈을 놀리지는 않을까? 사실 이곳은 미국의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보내고 싶은 제1순위에 속하는 곳이다. 또한 이곳에는 유명한 자동차 경주장 “인터내셔날 스피드웨이”가 있다.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뿐이겠는가? 잭슨빌(Jacksonville)은 포기할 것 같은가? 내친김에 플로리다의 서해안에 자리 잡은 템파(Tempa)까지? 또한 올랜도에서 40분정도 달리면 갈 수 있는 케니대 우주 센터는?


국경을 넘어와서 

2002년 4월 2일 여행 첫째날 [미국경을 넘어 Main주의 Banger까지]

 

자 출발이다!

  아침일찍 잠에서 깨었다. 전날 1시가 넘어서 잠에 들어 매우 피곤한 몸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일찍 일어난 것 같다. 며칠전 다친 목의 통증이 심하고 오십견이 온 왼쪽 팔이 여행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 게 했다. ‘이렇게 피곤해서야… 어떻게…’하는 마음이 몸을 더 피곤하게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17일동안의 대장정을 시작해야 하고 모든 가족이 가장인 나를 의지하고 있으니..어찌하랴. 힘을 내서 아파트 창고에 있는 카트를 가져다가 짐을 싣기 시작했다. 몇 번을 왕복하여 겨우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아이들도 여행의 즐거움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짐을 싣는 것을 도와 주었다. 아내도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서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식사도 해야 하니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거실에 앉아 여행의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앞으로의 모든 일정가운데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돌보심을 소망하며 기도하였다.  전날 밤에 핼리팩스한인교회 최현강 목사님 내외분께서 오셔서 함께 여행을 하는 저희 가족을 위해 축복하며 말씀을 전해주셨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고속도로에 진입한 시간은 9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210km가량을 운전해서 노바스코시아를 벗어나 New Bronswick에 들어섰다. 여기에서 우측으로 있는 16번 국도를 타게 되면 빨강머리앤의 고장인 P.E.I.로 갈 수 있는데 우린 그냥 New bronswick의 2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진행했다.

  중간에 유량게시판이 1/2로 떨어지면 바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기로 했고 우린 계속 그렇게 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원칙은 계속 지켜졌다.

 

캐나다의 동쪽 “Maritime provinces”

  캐나다 동쪽을 Maritime provinces(연해주)이라고 부른다. 대개는 Halifax가 있는 노바스코시아주(Nove Scotia Province /참고 : 미국에서는 주를 State로 표기하시남 캐나다에선 Province를 쓰고 있다)가 캐나다의 동북부에 있다고 하지만 노바스코시아를 중심으로 정확히는 동북쪽에 New Foundland가 있고 북쪽으로는 P.E.I.가 있고 서쪽으로는 New Bronswick가 자리잡고 있다. New Bronswick의 서북쪽으로 퀘벡주가 있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미국의 최북동쪽주인 Main 주 (state)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노바스코시아에서는 New Bronswick를 거쳐 Main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두군데가 있다. 하나는 더 북쪽인 New Bronswick의 서쪽중심부은 “Woodstock”이란 곳을 통해 미국의 Main주의 95번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것이고 하나는 New Bronswick주의 서남쪽 끝인 St. Stephen이란 도시를 통해 미국의 Main주의 9번국도를 통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린 후자를 택했다. 여기 사는 분들의 이야기가 그곳이 더 가깝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가본 바로는 (올 때 느끼게 된 것이지만) 전자를 통해 가는 것이 거리상 약간 더 멀지 모르지만 시간과 정력을 아낄 수 있는 길임을 알 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핼리팩스의 한인이 있다면 한번쯤 다시 확인해 주길 바랄 뿐이다. 나중에 차로 미국을 간다면 난 전자의 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P.E.I.를 가면서 New Bronswick까지의 길은 익숙해져 있었으나 New Bronswick의 중심지인 Moncton-Saint John-St.Stephen으로 이어지는 길은 처음이었으나 차량이 많이 않고 날씨또한 쾌청하여서 시야도 매우 좋았다.

 

목포에 온 느낌이 뜨는 Saint John   

  Sussex라는 동네에서 식사를 한 후 우린 saint john으로 향하였다. Saint John은 New Bronswick의 남쪽에 있는 해안도시이다. Moncton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넘게 달려서 도착한 이곳의 느낌은 생각보다 큰 항구도시였다. 고속도로의 왼쪽으로 해안을 따라 형성된 이곳은 마치 목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도 서쪽으로 새로운 도시가 계속 생겨나는 느낌을 받았다.

 

국경도시 St. Stephen

  5시간 반을 달려서 우린 미 국경도시인 St.Stephen에 도착했다. 솔직히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 911사태 이후에 캐나다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나 임시 거주자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St.Stephen의 동쪽은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즐비라고 메인도로를 따라 쭉 서쪽으로 달리니 T자형 길이 나온다. 바다가 보이면서 말이다. 여기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만 좌회전을 한 후에 (어떤 표지판도 없다) 차를 세우고 근처에 서있는 운전자에게 물어봐서…다시 반대길로 향하였다. 아무튼 이 T자형 길에서 좌회전을 하고 7-800m가량 가면 “USA”가는 길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마치 조그마한 다리를 건넌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길이 맞나?’의심이 갈정도였다.

 

국경을 넘기 전에 한 컷.

국경을 넘어   

  아무튼 그 나무로 된 조그만 다리를 건너디 주유소와 비슷한 건물이 나온다. 다리를 건넌 차들의 트렁크속 검사와 비자의 검사를 하는 곳이었다. 2군데의 Enterance에는 무장한 군인과 이곳 사무실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있었다. 순서에 따라 지정된 곳에 가니… 트렁크를 열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한국에서 가져온 비자와 이곳 대학에서 써준 Brian교수의 레터를 보여주었더니 차를 한쪽으로 세우란다. 그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물론 그 사이에 비자가 있거나 시민권자들은 여권만 보여주고 그냥 지나친다. 긴장을 하고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50대중반의 경찰복 차림의 직원이 비자와 여권을 보여달랜다. 그러더니 1인당 6불씩 모두 24불을 내라고 한다. 돈을 지불하니 6개월 거주할 수 있는 도장을 찍어준다. 여권에 말이다. 그리고 여권에 붙여주는 표는 영수증과 같은 것인데… 이것 나중에 미국을 떠날 때 제출하라고 쓰여있는 것 같은데 실제 미국서 다시 캐나다로 입국할 때 제출하는 곳이 없었다. 아무튼 우린 여권을 받아들고 “사진촬영을 해도 되냐?”고 물어본 후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옆건물의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넣었다. 여기서 부터는 캐나다에서 사용하는 Debit card는 사용할 수가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비자카드인 국민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와는 달리 Gallon를 사용하는 미국에서의 기름값은 대충가름해보니 캐나다보다 더 저렴하였다.(나중에 알고보니 당시에 기름값이 많이 오른 상태였다고 한다.)

 

끝나지 않은 캐나다    

  실제 메인주의 9번 국도는 아직 열악하다. 볼 것도 없는데다가 도로면도 좋지 못하고 많은 덤프트럭이나 긴 트레일러들이 엄청 많이 다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바스코시아의 고속도로와 흡사했다. 이곳도 국도는 고속도로에 비하여 열악한 편이었다. 또한 도로주변의 주택이나 나무 등의 모습이 마치 우리가 아직 캐나다에 있나?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아마도 기후 등이 비슷하여 그러한 느낌을 드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마치 끝나지 않은 캐다인 것처럼 말이다.

  거의 2시간을 달렸을까? 아내가 지도를 계속 보면서 우리가 가고자하는 Banger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곳은 국도라서 중간에 휴게소(Rest Area)가 한군데도 없었다. 따러서 Banger가 가까이 왔을 때 좀 넓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Banger의 시내지도를 열심히 보았다. 그러나 도시의 서남쪽에 왔을 때 난 길을 잃고 말았다. 퇴근무렵이서인지… 차량이 많고 또 표지판이 그리 눈에 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95번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그리고 고속도로 주변에서 Days Inn이 보이자 고속도로를 벗어나 Inn으로 가고자 했다. 왜냐면 플로리다까지 95번 고속도를 타고 (물론 중간에 95번을 벗어나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Days Inn은 일단 가격이 적당한데다가 여행전에 가입한  CAA(미국의 AAA, Triple A  [참고]) 때문에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틈새를 막아라. 그리고 김치를 먹자  

  우리가 들어간 곳은 공항 근처라서 간혹 비행기의 이착륙 소리 때문에 소음이 조금 심한 편이었다.  예약없이 왔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을 소비한 후에 아이들을 방에 놔두고 우리 부부는 차에서 짐을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쌀은 작은 봉지에 조금 덜어서 가져가고 밥솥과 전기주전자, 옷 등…아무튼 큰 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은 탓에 작음 짐들의 갯수가 엄청났다.

  난 목욕탕에서 큰 타월을 가져다 복도쪽 문틈새를 막고 유리창을 조금 연후에 우린 컵라면을 끊여서 먼저 아이들의 식사를 해결해주고 나서 김치와 젓갈로 배를 채웠다. 사실 낮에 Sussex라는 동네에서 밥을 먹긴 했지만 입국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서 많이 먹질 못했기 때문에 시장한 터였다. 아무튼 김지냄새를 좀 풍기고(?) 나서 시계도 한시간을 늦추고… 또 올랜도의 이목사님께 전화도 드리고…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간혹 캐나다에 전화를 하시는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리자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계속 걱정을 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리 전화를 드려서 안부를 물었다. (난 미국에서 며칠에 한번씩 이렇게 전화를 드렸다.)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수영을 하겠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Indoor pool에 갔다. 물론 아이들만 수영을 하고 난 보호자로서만 있었다. 사람들이 없어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다. 사실 운전을 한 나는 많이 피곤한 편이었으나 이런 휴식을 아이들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은 지나가고 있었다.

  캐나다 노바스코시아주의 핼리팩스에서 미국 Main주의 Banger까지 약 800km의 길을 약 9시간 정도 달려온 셈이다.

 

멀고 험한 뉴욕가는 길 

2002년 4월 3일 여행 둘째날  [멀고 험한 뉴욕가는 길]

 

아~ 남쪽이여

  아침 일찍 서둔다고 했지만 9시가 넘어서야 우린 뱅거를 출발했다. 핼리팩스 시계론 10시가 넘어서였다. 지도상으로 뉴욕까지 700마일정도 되어 보였다. 아마도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호텔에서 95번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물어본 후에 쉽게 95번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보슬비가 오고 있었고 차량의 통행도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고속도로의 노면이 좋아서 특별히 운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지금까지 보았던 길과는 달리 비교적 큰 나무가 길의 양쪽으로 펼쳐진 고속도로였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목 때문에 준비해온 곰 인형을 좌석의 head reast쪽에 대고 운전을 계속했다. 한시간정도 내려가지 차량의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속 105km이상은 유지할 수 있었다. 두시간정도 달렸을까? Portland의 표지판이 나온다. CAA에서 준 지도에 의하면 Portland와 보스턴은 들리지 않고 95번 고속도로에서 495번과 90번, 그리고 다시 84번을 타고 나서 684번을 거쳐 95번을 타고 뉴욕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지도상으로는 그냥 95번을 타고 Portland와 Boston를 거쳐 내려가는 길이 가장 쉬운 길처럼 보였으나 대도시 주변의 복잡한 길을 피해서 지정해준 지도를 믿기로 했기 때문에 CAA에서 준 지도에 의존했다. 따라서 Portland를 가는 95번 South표시와 함께 495번으로 가는 출구(Exit. 15)가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495에 들어섰다. 약 1시간을 달렸을까?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온 곳을 다시 가는 느낌이었다.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아뿔싸! 내가 남쪽으로 가는게 아니고 북쪽으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북상하고 있는 길은 495 North였다. CAA에서 준 지도를 쉽게 읽어 버린 탓이었다. 재빨리 가장 가까운 95번 고속도로로 진입했으나 잘못들어선 곳까지는 왔을 때는 이미 2시간 가량을 소비한 후였다. 2시간을 더 남쪽으로 달릴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해 버린 것이다.

  짜증도 나고 힘도 들었다.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좀더 남쪽으로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하고선 Exit 3번 근처(포틀랜드의 남쪽/Main주안에)에 있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지도상으로는 뉴욕까지 8시 이전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린 이 휴게소에서 1시간반 이상을 허비하며 충분히 휴식을 취하였다. 여기서 우린 컵라면을 끓여서 김치와 함께 식사를 했다. 밥은 이미 뱅거에 있는 Days Inn에서 전기밥솥에 해왔기 때문이다. 지도상으로 Banger에서 210km가량되는 곳인데 400km를 넘은 것을 보니 180km이상을 쓸떼없이 달리고 시간도 2사간정도 허비한 셈이었다.

지루하지 않으려면 게임을 해라!     

  아이들이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은 미리했다. 그래서 이미 올랜도의 휄로쉽교회 이근재목사님의 제안으로 우린 게임을 하며 남쪽으로 계속 향하였다. Banger에서 출발하기전에 우린 이미 게임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고 (처음엔 비가 와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심이후엔 즐겁게 할 수가 있었다.) 주찬이와 주원이는 즐겁게 게임에 열중하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Main주의 3번 출구 근처의 휴게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의 방법은 간단하였다. 미국의 52개주에서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뺀 주의 차량을 적는 게임이었다. 각 주의 번호판을 확인하는 것이 게임이었다. 규칙은 이러했다. 어떤 주의 차량이던지 한 개만 보면 된다. 기본 20개이상은 관찰해야 하고 20개이상 30개의 주(state)까지는 0.5불(50센트)씩 주고 31개주부터는 1불씩 계산해준다. 40개가 넘어서면 10불을 보너스로 주는 게임이었다. 즉 33개주의 차량을 발견하면 30X0.5불+3X1불=18불이 되는 셈이고 42개 주를 발견하면 30X0.5불+12X1불=27불+10불보너스=37불을 받게 된다. 이 게임은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도보다 더 먼 길   

  아무튼 95번 South 고속도로에서 1번이 끝나자 우린 New hampshire주를 잠깐 지나면서 (이게 언제 지나갔나 싶더니만) 바로 Boston이 있는 Massachusetts주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495 South-3차선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실은 메인주에서의 495는 495 North이다. 같은 번호의 남북 고속도로가 다른 주에 위치할 줄 누가 알았으랴.) 495 South를 타는 이유는 보스턴 근처의 95번 고속도로가 밀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CAA에서 495 South를 권장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495 South에서 90 West(보스턴 서쪽에서 서쪽으로 쭉 다리는 유료고속도로이다). 우린 이길에 들어서기전 기름을 넣기 위하여 잠시 들어간 곳에서 한참을 헤메이고 말았다. 그러나 어째든 우리는 90번 유료고속도로로 들어섰다(495 South Exit 22). 그러나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탓에 비가 오는 날씨가 다시되었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또한 많은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많이 붐비었다. 여기서 우린 다시 84번 South를 타야했습니다. 84번을 타면 바로 Connecticut주에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까지 난 많이 지쳐있었고 지루한 운전이었습니다.

 

옐로우시티 Hartford    

  84번 고속도로를 달리면 Connecticut주의 중심에 있는 Hartford를 지나게 됩니다. 이곳을 지날 무렵이 해질 무렵이었고 90번 고속도로에서 내리는 비가 그치고 해서 그런지 hartford가 전반적으로 yellow톤으로 느껴지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좋은 인상을 준 도시로 기억될 것입니다.

 

미국에도 정체현상이    

  hartford를 기분좋게 지나면서 차량이 늘고 정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Connecticut주의 Hartford에서 채 30km가 안되는 Waterbury시까지 거의 2시간정도가 정체되면서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비까지 내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우린 이떄 7시가 넘어섰기 때문에 차안에서 남은 밥과 김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 사이에 둘째날의 목적지인 뉴욕의 장호준집사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지도상으로는 아마도 늦어도 10시면 도착을 할 수가 있는 거리였다. 다행히 Waterbury를 지나자 정체가 풀렸다. 그러나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어두움이 운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Waterbury에서 84번을 계속이용해서 서남쪽으로 달렸고 여기서 다시 684번을 탔다.

 

개미군단    

  Connecticut주에 들어서면서 도로에 많아지는 차량은 바로 트레일러 트럭이었다. 긴 컨테이너박스를 실은 트레일러들이 자가용인량 일반 승용차와 같은 운전으로 고속도로를 누볐다.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와 같았다. 우린 그들을 “개미군단”이라 불렀다. 아마도 뉴욕항과 관련이 있는 트레일러라 생각되었다. 저렇게 많은 물건들이 뉴욕항을 통해 수출입되고 있으리라.

 

여기가 뉴욕인가?    

  아무튼 어둠속에서 우린 684번에서 95번으로 들어서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문제는 684 South에서 95번으로 가기 위해서는 287번을 잠시 타야하는데 이길이 쉽지 않았다. 이곳은 바로 뉴욕의 북쪽이었는데 지도와 일치하지 않았다. Exit도 틀렸다. 난 이곳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가 다시 오던 길을 타고 올라가서 다시 뉴욕쪽으로 오는 방법을 택했다. 한참을 달려서 (10km이상) 오던길로 다시 갔다가 내려왔다. 계속 장호준 집사와 통화를 하면서 겨우 287번을 거쳐 95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실은 287번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을 때 “문잠궈”하는 나의 외침에 온 가족이 긴장을 했다. (여기서부터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이 잠을 자지 못했다)

  겨우 95번에 들어서 남쪽으로 계속 향하는데 여기서 695번으로 들어가서 다시 295번 고속도로를 타고 Throngs Neck Bridge를 건너 Long Island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95번에서 695번으로 들어서는 곳이었다고 기억된다. (여기 고속도로는 넓은 시내안의 길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굉장이 꼬불한 길인데…갑자기 펑크가 나서 바퀴가 도로와 마찰하는 소리가 난다. 아내고 분명히 펑크가 난 것이라고 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지 마라     

  내 머릿속에는 “절대 갓길에 차를 세우지마라”고 한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탈렌트 노주현의 미국내 갓길 사건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펑크가 난 것 같은데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겨우 조금 넓어보이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상했다. 무슨 소리지. 계속해서 달리는데도 몇킬로 미터는 이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아마도 도로표면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사람들의 운전은 양반?      

  뉴욕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많은 차량들의 빠른 질주는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이날의 목적지인 롱아일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난폭운전(과속, 끼어들기, 신호넣지 않고 차선변경 등)으로 온 가족은 긴장을 해야했다. 여기에 비와 어둠이 가세하였다. 서울에 차가 많아 차들이 난폭운전을 한다고 했던가? 천만에 말씀이다. 뉴욕에 와보면 안다. 난폭운전이 어떤 것인가를…

  핼리팩스에 사시는 한교민이 플로리다를 차로 가다가 뉴욕에서 차를 세워놓고 비행기로 갔다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아마도 나도 호주머니에 둔이 두둑히 있었으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10시가 넘어서 우린 long Island의 Syosset이란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이민와서 3년째인 장집사부부는 한국의 크리스챤이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음향엔지니어이다. 조그만한 집의 2층에서 아들 필립이와 살고 있었다. 3년만에 만남이었다. 부인은 감기가 심해서 몸이 몹시 불편하였으나 우리를 위해 된장국과 밥을 준비해 놓았다. Connecticut주에서 차량이 밀릴 때 이미 우린 식사를 했었는데… 그래도 정성스럽게 차려준 음식을 우린 감사의 마음으로 먹었다. 너무 늦은 탓에 우린 거실에서 잠에 빠졌다.

  오늘 아침 Main주에서 출발해서 New Hampshire, Massachusetts, Connecticut, New York주와 그리고 뉴욕시까지 많은 길을 달려야 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볼티모어” 

2002년 4월 4일 여행 세째날 [아름다운 항구 볼티모어]

 

맨하탄을 건너며

  우리가 다시 타야하는 95번 고속도로 가기 위해서는 우린 맨하탄을 건너야 했다. 롱아일랜드에서 맨하탄은… 해저터널(말이 거창한데..그냥 터널이다. 물속으로 나 있는…)을 거쳐서 들어갔다가 다시 해저터널(반대쪽)로 나와야 한다.

  맨하탄에서는 중심도로인 34th Street를 지나치기로 했다. 거기에서 엠파이어빌딩을 보려고 말이다. 복잡하고 좁은 거리가..바로 뉴욕을 대표하는 길이었다. 아이들과 아내는 열심히 사진을 찍고….두리번 두리번…뉴욕거리을 구경했다. 물론 차를 세우가 구경할 때가 많기 하겠지만…어제 여행의 피로가 심한 탓에 오른 쉬엄쉬엄 볼티모어까지만 가리고 했다.

  34th Sreet가 끝나갈 무렵 난 거리의 자판상을 하는 한국인(분명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다)을 발견했다. 부부인 듯한 30대 후반의 이들 부부는 길거리에서 선글래스를 팔고 있었다. 가격이 싸서그런지…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큰 채양을 쓴 아줌마는 분주히 안경을 정리하고 손님들을 대하였다. 반면에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 남자(남편이겠지요)는 그저 아주… 귀찮은 표정이다. 의욕도 없어보인다. 그 부인과 워낙 대조대는 삶인 것을 그냥 차로 지나치며 느꼈다. 이민사회의 또 한면을 보는 것 같아서…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린 이렇게 34번 거리를 그냥 지나는 것만으로 뉴욕의 관광(?)을 마치었다. 원래 계획도 뉴욕을 볼 생각은 없었다. 단지 오랜만에 장호준 형제를 보고 싶은 생각이 컸었기 때문에 먼..롱아일랜드까지 간 것이었기에 뉴욕관광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줄을 선 비행기들

  뉴저지인지 아니면 아직 뉴욕시를 벗어나지 않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는 곳에 Newark시가 있고 여기에 Newark airport가 있다. 95번 고속도로를 쭉 타고 내려가는 길에 말이다. 그런데 95번 고속도로에서 남쪽 하늘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다. 바로 공붕에서 비행기가 쭉 줄을 서있다. 일정한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는데 어느 일정지점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라오면서 다시 북쪽을 향해 순서대로 줄을 서고 있는 모습니다. 이 공항이 몇 개되는 뉴욕의 공항중의 하나로 생각되어 진다. 공중에서 줄을 서있는 비행기는 멋진 광경을 한참동안 보면서 우린 계속 남쪽으로 향하였다. 여기는 5차선이었다. 기존의 3차선외에 옆에 평행하게 달리는 2차선을 만들어서…5차선의 고속도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름값이 싼 뉴저지

  뉴욕을 벗어났다고 생각되자마자 우린 주요소에 들렀다. 아직 어제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기름을 넣기 위하여 주유소에 들렀다. 기름이 쌌다. (이후로 이곳보다 더 싼 곳은 없었다.)

  물론 고속도로상에는 어제 보았던 개미군단들이 일반 승용차들과 더불어 모두 규정속도를 넘어 과속하는 모습이었으나 대체적으로 원활한 교통소통이었다. 뉴욕과 상대적인 모습이어서인지 더 여유있게 보였고 긴 겨울을 지내고 있는 핼리팩스에 비교해서 그런지 참 좋은 날씨였다. 왜 한국사람들이 “뉴저지..뉴저지..”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 고속도로 출구가 몇번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롱아일랜드에서 약 310km되는 지점에서 우린 Waffle House를 찾았다. 한국의 길거리에서 팔던 와플이 생각나서 말이다. 물론 캐나다에서 우린 와플을 사서…syrup를 쳐서 많이 먹고 있던 터였으나 한국의 와플이 생각나서 비슷하다라는 말을 들은 바 있어서… 우린 고속도로 광고판을 보고 와플하우스를 찾았다. 그리 비싼 가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맛이 별로였다. 실망한 탓에 바로 나오느라 Tip을 주는 것도 깜빡잊고 나왔다. 아르바이트인지 풀타임인지 모르겠지만 그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남아 있다. 얼마나 무식한 동양인이라고 욕했을까? 마음에 걸린다.

 

언제 지났갔나? Dalware

  Dalware주는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게 그만 지나가고 말았다. 이런….

 

아름다운 항구도시 Maryland의 볼티모어 그리고 Inner Harbour

  볼티모어는 원래 구경할 계획이 없었던 도시이다. 그러나 올랜도 휄로쉽교회 이근재 목사님의 강력한 압력(?)에 볼티모어와 다음날 워싱턴을 보기로 했다. 따라서 오늘은 뉴욕에서 볼티모어까지 오는 여유있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너무 느긋하게 오는 바람에 볼티모어의 Inner Harbour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질려고 하는 참이었다. 항구 주변의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경찰(대부분 여성흑인인 것이 특이했다)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는 도로를 하나 건너 항구안으로 들어갔다. 지도상에는 따로 Inner Harbour라고 표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main항구가 바로 “Inner Harbour”인 셈이었다. 볼티모어에서 Inner Harbour를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말씀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 밤에 머무를 이OO선생님(한때 한국의 아마바둑의 최강이었음) 집에서 자기로 했는데 그 분의 가게가 9시가 넘어서 문을 닫으니 그 시간에 맞추어야할 필요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수족관은 매우 유명하지만 우리가 도착할 시간엔 이미 닫혀있었다. 그러나 석양과 더불어 만들어내는 항구의 모습은 우릴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와보라고 했구나!’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저녁때가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린 항구를 따라 걷다가 Water Taxi를 탔다. 항구의 이곳저곳을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데 한번 티켓팅을 하면 시간이 되는대로 탈 수도 있고 또 근처의 식당 등에서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손등에 표시하는 도장을 찍는데 보이지 않지만 특정 불및에 비추면 보이는 잉크로 찍어 준다. 우린 항구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쇼핑몰도 가보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이곳교민인 듯한 한국사람들도 많았다. 휴대폰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니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우리가 머물 집까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린 그곳에서 2시간 가량을 보낸 후 지도를 보면서 항구쪽(시내와 바로 인접해 있다. 그 유명한 존홉킨스병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Ellicot City

  우리가 머물 곳은 볼티모어의 서남쪽에 위치한 Ellicot City였다. 한시간 정도 걸려서 우린 그곳에 도착했다. 도로가 조금은 헷갈리게 되어 있었지만 우린 쉽게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우린 집의 위치만 확인하고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고 얼음도 아이스박스에 충전했다.

  이OO선생님 내외분께서 도착하기 전에 우린 집으로 들어갔다.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에게 내가 이름이 뭐냐고 묻고 또 몇학년이라고 물으니 이름을 말하고 “Nine”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보아도 4학년정도 되어 보이는데 말이다. 다시 물었더니 “Nine and half”말한다. 그제서야 이 아이가 한글을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What degree?”하고 물으니 그제서야 “4”라도 대답한다.

  짐작이 간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주로 묻는 것이 이름과 나이였다. 그래서 한글을 잘 모르는 이 아이는 늘 나이를 말해왔다. 그런데 내가 느닷없이 “학년”을 물었으니 동문서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들은 이곳에서 나서 자랐다. 당연히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부모들의 First language인 한글은 대충 듣을 수 있다. 물론 Speaking은 잘 안된다.

  참고로 내가 한국에서 교포2세들의 언어에 대하여 많은 부정적 생각이 강했던 것이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현지의 사정을 알 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 교포 1.5세와 2세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에 대하여 혹시 막연한 부정적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은 다시 재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http://HalifaxStory.com에 글을 쓸 예정이다).

  우리가 집에 먼저 들어가서 조금은 죄송스러웠는데 이선생님 내외분께서 9시 반이 넘어서 들어오셨다. 하루종일 가게를 운영하느라 지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아무 인연도 없는 저희를 위해 식사도 준비해 주시고 잠자리까지 내주셨다. 이사를 하신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아직 집안 정리가 안된 상태였는데 워낙 사는게 바빠서 정리를 못하고 계신 상태였다. 이곳 교민들의 삶의 한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안한 생각과 감사의 생각이 교차하며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팥찐빵도시 워싱턴

2002년 4월 4일 여행 네째날

  

  왜 팥진방인가?

  볼티모어에서 위싱턴까지는 약 1시간이 소요되었다.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워싱턴을 싸고 있는 고속도로(서쪽으로는 계속 95번이고 동쪽으로는 495번으로 된다)의 동쪽으로해서 다시 시내로 들어가는 길(50번 길)은 어렵지 않았다.

  목표는 연필탑(Wasington Monument)이었다. 이 연필탑을 보고도 몇시간동안 그곳을 찾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는 소문(?)를 들은터라…지도를 보면서 접근했다. 워싱턴의 외곽은 “여기 미국 수도 맞아?”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시내쪽으로 가면서 그런 느낌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저 오래된 도시정도로 생각되었다. 일방통행이 많고 또… 길이 반듯하지 않아서 우린 조금 헤매였다. 또한 시내중심지에 있는 아파트나 주택들의 모양이 흑인들이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금방 들었다.

  “10시까지 도착해서 표를 사라!”고 한 OOO목사님의 명령(?)이 생각났다. 그러나 벌써… 11시를 넘고 있었다. 드디어 연필탑을 찾았다. 반대편에는 백악관이 보인다. 밀리는 자동차…좁은 길… 이것이 워싱턴 백악관 뒤쪽 길에서 느낌이었다. 연필탑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주차장이나..공터를 찾았으나 없었다. 도로 주차공간과 연필탑내의 주차공간은 이미 자리가 없었다. 연필탑 주변의 투어버스들은 관광객을 실어나르기 바빴다. 한참을 헤맨후에 우린 백악관의 서북쪽 시내 건물 주차장에 주차하였다. 2시간 반까지만.. 주차비를 받았다. 이 이상은 가격이 동일했다. 주차관리인이 모두 흑인이다. 여기 뿐만이 아니다. 도로 경찰도 백인을 볼 수가 없다. 나중에 관광을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여기선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흑인이다. (나중에 투어버스도 마찬가지) “백인들은 백악관내에 모두 있는 모양이다”라고 아내에게 농담을 했다.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일하는 백인은 거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그나마 워싱턴 중심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시내는 온톤 흑인들의 세상이 되고만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팥찐빵”되어 버리는 도시가 바로 워싱턴인 셈이었다.

  

워싱턴의 상징 “연필탑”

  한참을 걸어서 우린 연필탑(Washington Monument)으로 갔다. 멀리 보일 때 보다 가까이 보니…정말 큰 상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봄햇살을 만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벚꽃(사쿠라)”이었다. ‘아니 워싱턴에 벚꽃이?’하는 의구심이 일어났다. 만발한 벚꽃앞에서 우린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인들이 미국에 와서 약 100년에 심은 거라고 했다. 즉 일본의 미국이민 1세들의 작품(?)인 셈이었다. 나중에 투어를 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여기뿐만 아니고 시내 전역에 벛나무가 있었다.

  연필탑은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었다. 무료로 표를 받아서 줄을 서면 되는 것이었는데… 우린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아이들과 연필탑의 동쪽에 있는 매점(?)에서 핫도그로 점심을 대신했다. 맛있었는지 주원이는 하나 더 먹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배가 불러야 여해할 때 애를 적게 먹는다. 하하하) 우린 버스투어 표를 샀다. 표를 사는데..표를 파는 여자분이 자꾸 “내일 것이냐””고 되묻는다. 오늘 표를 달라고 하자 (표에 있는 날짜에 펀칭을 해준다) 조금은 의아해 했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하나의 박물관 워싱턴

  버스투어는 연필탑에서 출발해서 시내 곳곳(기념관, 박물관 등)를 돌 때 구경하고 싶은 곳에서 내려서 구경하고 다음에 오는 아무 버스나 타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버스를 타던 시간이 1시 반을 넘고 있었다.

  우리가 구입한 투어버스의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기본적으로 연필탑에서 출발해서 제퍼슨기념관, 한국과 베트남 전쟁기념비를거쳐 링컨 기념관을 가게 된다. 이때 중간중간에 내리서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타면 된다. 여기서 다시 Arlington Cemetery Visitor Center를 통해 국립묘지를 보게 된다. 국립묘지 않에서는 다른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 많이 머물기를 바란다. 케내디묘지와 무명용사의 묘지 등을 꼭 봐야 한다.

  국립묘지에서 나오면 케네디센터를 거쳐 다시 연필탑으로 해서 U.S. Holocaust Memoreal Museum, Aets and Industries Museum, Hirshhorn Museum,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U.S. Batanic Gardens, National Postal Museum, Union Station, Supreme cCourt, Library of Congress, National Gallery of Art, Museum of National History, Museum of American History 등을 거쳐 다시 연필탑으로 오는 “8”자 모양의 투어코스이다.

  우린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보기로 했다. 그러나 국립묘지에선 버스에서 내려서 국립묘지내에서 관광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사실 국립묘지도 한참을 보아야 한다. 여기 내에서도 버스에서 내려서 볼 것들이 있지만 우린 그냥 버스안에서 계속 구경만 했다.

  국립묘지를 나온 버스는 다시 정해진 곳을 돌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투어버스를 위해 차선이나 승강장을 이미 구축해 놓은 워싱턴을 관광사업이 하나의 워싱턴시의 예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가 탄 셔틀버스는 미처 다 돌이 못하고 그만 워싱턴 역에서 멈추었다. 아무튼 이 버스투어를 잘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굳이 차를 끌고다니지 마시길 바란다.

  나중에 다시 워싱턴을 갈 기회가 있다면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참으로 쓸말이 많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기대가 되는 부분인데…. 시간에 쫓기어 구경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쉽다. 그러나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하던 워싱턴을 좀..머리속에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소득이었다.

  백악관은 좀 멀리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앞에 간다고 별 다를 것이 있겠는가? 멀리서 보이는 백악관의 뒷뜰(TV에서 많이 나오는 모습 그대로다)의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연필탑 근처에서도 충분히 잘 보인다.

  

깨달음은 나중에 오는 것

  그 때서야 포를 파는 여자분이 되물었던 이유와 OOO 목사님이 10시까지 도착해서 줄을 서라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워싱턴 시내를 하루에 구경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버스투어를 아침에 일찍 시작한다면 충분히 하루에도 끝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함다면 최소 3일은 구경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루는… 버스투어를 하면서 전반적인 것을 보고… 박물관 등은 그날 들리지 말고 위치만 확인해 두었다가 시간을 두고 차로 직접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부세요

  아~ 버스가 워싱턴역에서 서더니 더 이상 돌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미 5시가 되었다고 말이다. 지도를 보니 주차를 해 놓은 곳과 거리가 있었다. 걸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함께 여행했던 서양인(미국인인지..아니면 유럽인이지 구분이 안가는 부부-네덜란드 사람 많이 닮어서리)이 버스나 택시를 타라며…버스 승강장을 알려주었다. 가난한 동양인이 택시를 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가난한 동양인 가족(?)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워싱턴 역 앞에 택시 승강장에 줄을 섰다. 어떤 남자가 지나가며 집사람에게 워싱턴 관광지도를 건내준다. 자기는 여행을 마치고 기타를 타고 떠나는데 “이 지도를 보라”고 하며 말이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여유있는 관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줄을 서있던 주원이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소리가 났어!” “휘파람 소리가 났어!” 며칠동안 차안에서 휘파람 연습을 하던 주원이가 드디어…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래서 주원이가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휘파람 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택시운전사(몰론 흑인이다)는 시간이 5시반이니 러시아워추가료까지 내야 한다고 했다. 팁까지 톡톡히 택시비를 지불하고 우린 주차장에 가서 차를 가지고 출발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워싱턴은 다음에 꼭 온다”하는 것이 나와 아내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와서 시간을 두고 관광을 할 생각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더구나 2세 교육을 생각한다면 워싱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결코 공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워싱턴 관광을 시키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워싱턴이다.

 

남으로 가자!

  아쉬운 워싱턴의 관광은 이렇게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둘어 시내를 빠져나와 95번 고속도로를 탔다. 벌써 해는 지고 있었고 큰 트레일러 들을 비롯하며 많은 차량들이 워싱턴의 남쪽 95번 South를 달리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워싱턴 밑에 있는 OOOO에서 머물기로 했으나 약속을 취소하였다. 조금이라도 남쪽으로 달려놓아야 다음날 올랜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피곤이 엄습하고 운전이 쉽지 않았다. 초저녁인데…이렇게 졸음이 오다니… 9시까지만 운전하면 리치몬드를 넘어서 잘 수 있는데… 하는 마음도…금새 바뀌었다. 더 이상 운전이 힘들었다. 최소한 리치몬드까지만 가도..마음이 편할텐데…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냥 Days Inn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남으로 남으로 

2002년 4월 6일 여행 다섯째날 [리치몬드에서 올랜도까지]

  

작전을 잘 짜야…

  둘째날 고속도로 번호를 바꾸어 가며 (CAA에서 권해 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던 우리는 오늘은 95번 타고가면 된다라는 생각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은 점심을 제외하고 휴식시간을 10분 정도 잡기로 했다. 차가 서는 곳(휴게소나 주유소)에서는 무조건 화장실에 가야 하다는게 아이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또 오늘의 작전이기도 했다.

  지도상으로 족히 1,300km를 달려야 하니 (실제 달려보니 1,280km였다) 평균 시속 110정도 간다고 해도 14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았다. 하루에 1,000km을 운전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선 조금은 망설여졌다. 어째뜬 목표는 올랜도이고…. 도저히 못가겠으면… 플로리다 잭슨빌까지라고 가자. 거기서 올랜도까진…다음날 아침에 일찍 출발하면 되니깐..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안되면… 조지아주(플로리다 바로 위에 있는)에서 잔다…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우리가 가야할 주만 하더라도 출발하는 Varginia, North Carolina, South Carolina, Georgia 그리고 Florida였다. 그러나 95번만 타고가다가 플로리다에서 4번 고속도로를 타기만 하면 되기에 도전해 볼 만한 여행길이었다..

  

큰 오솔길 95번 고속도로

  95번 고속도로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전날 잠을 푹 잔 덕분에 몸은 가뿐하였다. 또한 하루 가야할 길이 만만치 않다는 약간의 긴장감과 드디어 플로리다에 도착하는 날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리치몬드까지는 차량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등은 그저 한가했다. 여유로운 편도 2차선 길이었다. 버지니아에서는 속도위반을 잡는 경찰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차량들이 흐름에 맞추어 시속 120-130km정도씩은 달리고 있었다. 난 앞에 차량을 놔두고 뒤에 따라가는 운전방법을 택했다.

  난 이곳의 고속도로들은 오솔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좁은 길은 아니지만 길가로 세워진 큰 키의 나무들이 넓은 대륙의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고 또 푸른 나무들을 통해 편안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눈에 별로 피로하지 않았다. 긴 거리를 여행하는데 이만한 조건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아주에서는 플로리다까지의 거리를 계속 보여주는 간판이있었다. 이것의 이름을 잊어 버렸는데… 에고…..

  아무튼 4개의 주를 거든히 거쳐오는 동안 우린 출발할 때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차를 세우면..화장실 가기… 기름은 계기판에 1/2정도 떨어지면 넣고.. 그 사이에 차도 쉬게 하고…하는… 이러한 원칙은 길도 좋았지만 운전의 피로를 감소시켜주는데 크게 기여했다.

  

아~ 플로리다

  잭슨빌에 들어서면서 해는 기울고 있었다. 해가 있을 때 더 가자…하는 생각으로 우린 95번을 타고 계속 내려갔다. 그러나…해는 금방 저물었고 우린 가까운 휴게소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기위해서였다. 해가 저물었지만 휴게소에 들른 관광객들은…동행한 개들의 몸을 풀어주기 위해 조깅과 산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린 바른 시간에 저녁을 해치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드디어 95번 고속도로에서 4번 고속도로로 접어들려는 시점에…. 차량이 줄을 서있었다. 어디선가…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이 정체는 무려 1시간 반이 넘에 계속되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겨우 정체를 벗어나 4번 고속도로로 접어든 후에는 졸음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휴게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변이나 갓길에 세울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리를 꼬집고 뺨까지 때려가며… 졸음을 쫓았다. 그렇게 그렇게…. 우린 올랜도에 들어섰다. 인터넷에서 뽑은 지도에 문제가 있었다. 프로그램상으로 가까운 길을 추천하다 보니 매우 어렵게 되어 있었다.

  핼리팩스에서 렌탈한 전화기도(실은 밧데리량을 잘 조절하면서..껏다켰다 하면서 왔는데 정체되는 바람에 그만..) 밧데리가 동이났다. 근처 주유소에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고.. 또 주유소에서 올랜도 지도도 사고…. 겨우 12시가 다 되어서야 우린 목사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이 아이들이 차안에서의 16간 동안 잘 견뎌주었다. 이번처럼 긴 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한 것 같다.

 

1,300 km/day

  오늘 하루동안 달려온 길이 1,280을 넘었다. 1,300km 가까운 거리였다. 하룻동안 달린 거리 중에서 가장 먼 거리였다. 피곤이 엄습했다. 그동안(불과 몇개월전부터) 메일과 최근에 전화 몇 통화로만 알 게 된 목사님과의 만남은 이러한 피곤을 잊게 했다.

  인터넷은 사람을 연결해주는 좋은 매개체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IT산업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무튼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목사님가족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나도 받은 사랑을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해 보았다.

 

쉼 (여행 6일째)

2002년 4월 7일 주일 여행 6일째 [올랜도에서 쉼]

 

휄로쉽교회

  전날의 1,300km의 대장정을 마친 우리 가족은 깊은 수면에서 깨어났다. 아이들의 회복이 생각보다 빨랐다. 아침을 먹고 우린 훼로쉽교회에 갔다. 이곳 교회는 올랜도에 있는 감리교회이다. 성도수는 많지 않지만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입니다”란 슬로건으로 미국성도와 별도로 오후 12시30분에 예배를 드렸다. 한 교회 2회중(미국인&한국인 회중)인 셈이다. 이곳에 예배를 드리며 나는 짧은 시간동안 간증과 찬양을 드렸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과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하여… 아직도 성도로서의 부족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예배를 드린 후 교제의 시간을 통해 서로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 있었다. 아마도 이민교회의 대부분의 주일의 정경일 것으로 생각된다.

  

코코비치 – NASA와 사랑의 유람선

  식사가 끝나고 목사님과 몇분 성도님들과 함께 우린 코코비치라는 해변을 갔다. 코코비치(Caccoa beach, ‘코코아 비치’라고 하지 않고 그냥 “코코비치”라고  부른다)는 올랜도에서 동쪽으로 곧장가면 나오는 플로리다의 동쪽 해변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해변의 모래말고도 두가지 이유에서 이다. 하나는 바로 이 코모비치와 인접하여 “John F. Kennedy Space Center / NASA Visitor centor”가 있고 또 하나는 바로 이곳에서 바하마로 가는 유람선이 이곳 항구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사랑의 유람선”

  우린 먼저 유람선이 출발하는 시간에 맞추어 유명한 디즈니사에서 운영하는 유람선외에 모두 3대의 유람선이 출발을 바로 하려는 순간에 도착하여 출발을 보고 다시 재빨리 차를 타고 코코비치로 들어갔다. 왜냐면 조금전에 출발한 그 유람선이 코코비치와 NASA 사이로 지나가지 때문이다.

  우린 지나가는 유람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멀리 보이는 우주왕복선(?) 발사대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배가 지나기 시작하자 – 3대가 일정간격을 두고 항해한다 – 우린 배경으로 삼을려는 배가 지나기 전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또선상에 서있는 여행객들을 위해 열심히 손도 흔들어 주었다. 오랜만에 운전(?)에서 벗어나 바다도 보고 모래위도 걸어보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공원에서는 펠리칸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꿈과 희망, 디즈니월드 

2002년 4월 8일 여행 7일째날 

 

  드디어 몇 개월간 기다려온 보람인가? 이제 디즈니월드에 간다.

 

디즈니월드 가는 길

  인터넷등에서 나오는 지도에선 디즈니월드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 대략적인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올랜도에 갔으니 말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이 올랜도의 동북쪽이었기 때문에 디즈니월드의 매직킹덤까지는 40여분이 소요되었다.

  월트디즈니월드는 플로리다의 4번 고속도로 25번과 27번 출구사이의 북족에 위치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올랜도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셈이다. 다행히 우리가족은 휄로쉽교회의 목사님께서 직접 Ride를 해주었기 때문에 헤매는 일은 없었다. 실은 올랜도 동쪽에서 시내를 관통해서 가는 길이 쉽지 않은 도로였다. 러시아워에 걸리기 때문에 일찍 출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대개는 9시전에 도착할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에서도 대개 9시전에 도착하는 것을 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정보는 힘

  우리는 출발하기 전에 올랜도의 만물박사 이근재목사님으로 오늘 가야할 매직킹덤의 개요와 꼭 봐야할 것들의 우선순위를 듣고 메모를 해 두었다. 어차피 그곳의 모든 곳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말이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간와 에너지가 허락 되는대로 놓지지 않아야 할 것들에 대한 사전정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저도 이 지면을 통해서 이 글을 읽고 올랜도를 가고자 하는 분들에겐 강요(?)를 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큰 형님이라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매직킹덤으로 들어서는 길은 상당히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즉,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주차권을 먼저 끊어야 하는데 목사님의 차로 우리를 ride해주었기 때문에 입구에서 “내려만 주고 되돌아 간다’라는 말 한마디로 무사통과(?)를 했다. 이곳 사람들의 사람에 대한 신뢰인지 아니면 한 대 쯤이야 하는 것 때문인지 몰라고 그냥 “OK”이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이것도 알아야 거기까지 진입한다.)에 차를 세우고 우린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그 곳의 직원(휄로쉽교회 미국인 회중의 장로)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되자 정확히 나타나고 우린 목사님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입장권은 무료이다. (이거 어떻게 구했냐고 묻지 않길 바란다.) 대개의 경우는 일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오는 셔틀기차(기차모양인데 바퀴가 달린)를 타고 와야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놀이기구로 달려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이게 웬걸… 여기서 모노레일(이것은 진짜 기차이다. 셔틀기차인셈이다. 즉 정문입구에서 놀이기구가 있는 곳 까지 가는)를 타야했다. ‘아니! 도대체 얼마를 더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도중에 매직킹덤안에 있는 호텔과 호수들을 지나쳐 안으로 계속 들어간다.

   

입구에선 지도를 챙겨  

  우린 입구에서 매직킹덤의 지도를 각자 하나씩 주어 들었다. 이 지도가 있어야 만 제대로 볼 수가 있다. 우릴 안내하는 장로님과 함께 매직킹덤의 안에서 전체를 대충 볼 수 있는 또다른 모노레일이 있다. 그냥 노출되어 있고 매직킹덤의 대강을 알 수 있기 때문에…놀리기구는 아니지만 처음에 도착해서 한번쯤 타보길 권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놀이기구나 아니니 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계속 우리를 안내하는 그 장로님께 미안한 감정(고마운 감정보단…미안한 감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때문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실은 바브실텐데 가보시라고 했다). 우린 어마어마한 규모에 잠시 주위를 빙 둘어보았다.그러면서 지도와 이근재목사님이 알려준 메모를 들고 우린 어떤 것을 먼저 탈 것인지 고민했다. 무엇을 먼저 탈 것이고 Fast Pass는 어떤 것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결정했다.

  매직킹덤은 19세기 미국거리인 Main Street를 비롯하여 Adventure Land(4), Frontier Land(5), Liberty Square(1), Fantasy Land(5), Mickey’s Starland(1), Tomorrow Land((6)로 구성되어 있다. (괄호안은 attraction숫자)

신데렐라의 궁전을 보았는가?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Main Street, USA라고 부른다. 이 거리에서 앞쪽으로 보이면 영화에서 나오는 궁전이 보인다. 바로 신데렐라 궁전이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곧장 그곳을 향해 간다. 그러나 여기서 Main Street 길가에 있는 바로 집들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손해다. 아이들이야 그저 탈 것에 정신이 팔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게 된다. 그러나 달리지 마라. 그리고 즐겨라.

  신데렐라 성 앞에는 월트디즈니의 동상이 있다. 그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한다. 적당히 줄을 서서 찍어라. 성이 다 나오게 찍으면 사람이 적게 나오고 사람이 자세히 나오면 성이 다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두장씩 찍길 바란다. 또한 동상 앞에서도 사진을 찍어두면 아이들에게 잊지 않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제 이곳을 중심으로 9시에서 3시 방향으로 탈 것들을 비롯한 attraction들이 널려있다.

   

Fast Pass  

  Fast Pass란 제도가 있다. 이는 일종의 예약제도이다. 먼저 1시간이나 2시간 후에 관람할 것을 미리 예약하고 그 사이에 다른 것을 줄을 서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탈 것과 Fast Pass를 할 것을 미리 결정하고 순간순간 대처를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라도 더 탈려면 말이다. 어떤 것은 오전 11시견에 가면 이미 그날의 예약이 끝나는 것도 있다. 이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표를 기계에 집어 넣으면 예약가능한 시간이 쭈욱 나온다. 본인이 선택하면 되는데 꼭 전체적 분위기를 봐서 결정해야 한다. 잘못하면 Fast Pass를 정한 후에 다른 곳에 줄을 서 있다가 시간이 되어서 바로와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실은 그럴 염려는 없다. 애매한 시간이 걸리면 아예 다른 곳에 두 번 줄을 서서 볼 생각으로 늦게 하는 것은 좋긴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Fast Pass를 사용할 수 없음으로 잘 결정해야 한다. 아참! Fast Pass가 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는 곳이 있다. 물론 되는 곳이 줄을 많이 서는 곳이고 재미있는 곳이다.

  나중에 시간이 되어서 들어갈 때는 일반줄의 입구와 별개로 fast pass를 가진 이용객의 입구가 따로 있고 안에 들어가서도 거의 곧바로 탈 수 있게 해준다.

   

흥분하는 아이들  

Tomorrowland Indy Speedway <<< Tomorrow Land구역에 

  Space Moutain의 Fast Pass를 빼고선 우린 바로 Tomorrowland Indy Speedway로 달려갔다. 이는 2인승 자동차가 정해진 트랙을 도는 것이다. 2차선을 달리는데 서로 침법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핸들(Steering wheel)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자동차는 이게 바로..진짜 엔진이라는데 그 매력이 있다. “부르릉~ 부르릉~” 액셀러이터를 밟는 소리와 함께 머플러에서 내뿜는 자동차 엔진소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지 흥분을 일으킨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섰다. 꽤나 더운 날씨였으나 당시에 눈내리는 촌동네(? 핼리팩스?)에서 온 우리는 그저 햇살이 좋을 따름이었다. 기다리면서 자동차의 굉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 만큼 기대감도 커졌다. 우린 둘이씩 나주어 탔다. 아이들이 직접 운전했다. 핸들과 액셀레이터를 동시에 아이들이 조정했다. 신났다. 안내내하는 직원들은 그 굉음과 더위속에서도 친절하였다. 프로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이들은 다시 또 타자고 했으나 아직 탈 것이 많이 남아있다며 Space Mpiuntain으로 향했다.   

 

장난이 아냐?  

Space Moutain <<< Tomorrow Land 구역에  

  Space Moutain의 fast pass의 시간이 남아 있었으나 다른 것을 또 줄서기는 부족한 시간이어서 우린 바로 Space Moutain으로 갔다.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으나 절대 넣어주지 않았다. Space Moutain에도 줄서기가 계속되고 다만

  fast pass라인으로 사람들이 속속히 들어가고 있었다. 20여분을 기다려 우린 fast pass로 들어갔다. 일반 줄에 늘어선 사람들의 시선(?)에 어떤 쾌감을 느끼며 우린 안으로 들어갔다. 우린 순서대로 기차에 탔다. 기차가 어둠을 달리며 우주에 떠있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마차 은하철도 999처럼….

  난 카메라를 집이 들었다. 그 순간 타고 있는 기차가 아래로 갑자기 떨어지며… 진행한다. 아차~ 하는 순간 카메라를 놓칠번 했다. 하마터면… 이 많은 사진들을 찍을 수 없게 될 뻔 했다. 그렇게 빨리 달리리라고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우주안을 달리는 기분만 내는지 알았다. 그때부터 우리가족은 비명을 지르며 우주안으로 날아가는 기차를 탔다. 아이들이 나오면서… 다시 타자고 한다. 실은 패스트 패스가 두장이 더 있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다시 탈 엄두가 나지 않아서…그냥 패스트패스를 쓰기로 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료로 표를 준 휄로쉽교회의 미국인 장로님이 준 것이다.)

  아이들은 다시 패스패스 코너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만에야…싱글벙글 웃으며 나왔다.

터키다리?  

매직킹덤을 비롯한 디즈니월드에는 “터키다리”가 있다.  Smoked Turkey Leg(칠면조 다리 훈제)가 바로 그것이다. 팔뚝만한 칠면조다리는 닭다리와 크기는 비교불허이다. 간혹 맛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글세다. 소스를 치지 않으면 좀 비린 듯하고 (특히 안쪽은 비리다) 밖은 그래도 불에 태운 탓에 먹을 만하다. 우린 2개를 사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쓰리기 통에 넣고 말았다.

여기선 이런 것 사도 다 비자카드가 된다. 그래서 현금이 전혀 필요가 없다. 모두 카드로 되기 때문이다. 콜라 하나늘 사도 말이다. 오히려 더 불편해서 현금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도 좋다.

  우린 일단 배를 불리고 나서 다음 attraction으로 향했다.

 

사람 구경해 

<<< Fantasy Land 구역내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린.. 반대편에 있는 Splash Mountain을 타기 위해 신데렐라의 궁전의 뒤쪽으로 가면서..사람 구경을 하였다. 가다보니..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신데렐라의 사인을 받기 위함이었다. 사인을 받겠다는 아이들에게 “싸인책자”(그냥 백지에… 표지만 좀 좋은..싸인북인데… 가서 아이들에게 사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가서보면 느낀다. 내가 왜 이런 말 하는지…를…)를 사서..줄을 서려다가..”이따 와서 싸인 받고 가서 탈 것을 타자!”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끝내 신데렐라 사인은 받지 못했다.. 뭐든지 보이면..바로 줄서서…하는게 중요하다.)

바로 이거야! 

Splash Mountain & Big Thunder Mountain Railroad <<<  Frontier Land 구역내

  광주 패밀리랜드에서 타 본 보트(동굴을 지나고 물을 타고..다니면 마지막에는 아래로 쭈우욱..떨어지는 것)와 같은 것이나 그 구성이 더 다르다. 아마도 애버랜드에 있는 것과 유사한데…더 투자를 많이 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것도 fastPass를 뽑고 그 옆에 있는 Big Thunder Mountain Railroad(FastPass됨)을 줄을 서서 탔다. 많이 기다리고…햇볕을 피해..겨우 안으로 들어갔는데..꾸불꾸불한…줄이 엄청났다. 패스트패스를 뽑은 사람들은..싱글벙글…안으로 쑥쑥 들어간다. 나도 다음에 있는 Splaxh Mountain은 저렇게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이 두 개 중 하나가 더 재미있다. 더 스릴을 만낀한다. 나올 때..찍힌 사진을 살 수 있다.(이것은 한국과도 동일)

   

뗏목까지?

<<<  Liberty Square 

  매직킹덤안에는 호수가 많다. 심지어는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들어올 때도 모노레일을 탈 수 있고..배를 타고 들어올 수도 있다. 아무튼 여기안에서 신데렐라 궁전의 주위와 Liberty Square는 작은 호수이다. Liberty Square는 사람을 태운 범선이 정글을 지나가고… 또 뗏목까지 탈 수가 있다. 우린 퍼레이드까지의 시간이 약 30분 남았음으로 범선은 시간이 안되고…뗏목을 타고 호수안에 있는 섬에 가기로 했다.

  타자마자 퍼레이드가 시작된 느낌이다.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뗏목을 타고 섬에 갔다가 바로 다시..타고 되돌아왔다. 줄서는 사람 때문에..겨우 서둘렀다. (결코 나만 바쁜게 아니다)  줄을 얌전하게 섰던 아내가…우리와 떨어졌는데… 겨우.. 가족과 함께 타야 한다며..겨우 탔다. (실은 이모습을 난 계속보고 있었다.) 겨우 뗏목을 탄 아내가… 옆에 사람을 통해…탔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미리가서 자리잡아!  

  출발전에 목사님께서 퍼레이드 시간이 되면 30분 전에는 가서 자리를 잡고 그냥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퍼레이드가 시작되고…우린 가까운 퍼레이드 길(이 길은 지도에 나타나 있다.)에 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3-4겹으로 둘러싸서 보이지 않는다.

  주찬이와 주원이는 잽싸게 틈새로 끼어 가장 앞줄에 가서 목을 내민채 퍼레이드를 보기 시작했다. (사진에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수십분간을 구경했다). 야! 그저 감탄사의 연발이다. 일단 들어간 비용이 엄청난데다가…. 퍼레이드를 하는 출연진의 연기력은 프로급니다. 그냥…대충 시키는게 아니다. 마치 영화속의 주인공인양 더운 때약볕에서 연기를 한다. 때론 큰 공모양 안에 들어있기도 하고 두꺼운 옷을 입었다. 아마도 안에 있는 사람은 숨이 컥 막힐 것 같았다. 아무튼 굉장한 퍼레이드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퍼레이드 꽁무늬를 따르는 많은 군중이 지나가고…길 거리엔…쓰레기가 자욱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청소하는 사람들이 나와서…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때론 타잔이고 싶어 

<<<  Adventure Land  

  월트디즈니 동상(매직킹덤의 한가운데)에서 6시반에서 9시 방향에… 호수와 정글이 있다. 이것이 바로 Adventure Land이다. 퍼레이드를 보고나서 우린 가장 가까운 이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6개의 attraction중에서 우린 Swiss Family Treehouse에 올라갔다. 큰 나무(큰 나무하면 애니멀 킹덤의 나무를 생각하는데…이곳은 매직킹덤이다)에 타잔집을 지어놓았다. 어렸을 때 누구나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했으리라.

  

아! 이것이 즐거운일 줄이야!   

  타잔나무(?)에서 내려온 우리는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알고보니…사인을 해주는 곳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물론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그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금방 줄을 선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사인을 받는다. 각종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이다. 아까…이들이 퍼레이드를 하지 않았던가? 캬….

  아이들은 줄을 이탈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고 한다. 아이들은 각 캐리터들과 악수도 하고 장난도 치고 (사진을 보면 실감 날 것이다)  아이들은 어느덧 탈 것들을 즐기기 보다는 각종 캐릭터의 사인을 받는 일에 더 열중했다. 지도를 보며 사인해 주는 곳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주로 Fantasy Land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다니면 많은 사인을 받을 수 있다.

  난 아이들이 사인받는 것을 이렇게 좋아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2시 방향에 있는 Mickey’s Starland(지금은 Mickey’s Toontown Fair라고 함)에서도 사인을 받았다. 줄을 30분을 넘게 서서 기다리면서..우린 캐릭터의 사인을 받고 또 함께 사진촬영을 계속했다.

  이 사인과 사진촬영을 위해 각 캐릭터로 분장한 배우(?)들은..정말 성심껏 아이들과 손님들을 대하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프로의 세계인 셈이었다. 우린 이제 5시가 넘은 시간에도 최후의 하나까지라고 더 탈려고 서둘렀다. Mickey’s Toontown Fair 내의 The Barnstormer at Goofy’s Wiseacre Farm(이것은 키 제한이 있음. 열차처럼 타고…구경)을 비롯해서 Fantasy Land내의 Mad Tea Party까지 즐겼다. 이곳에서 Peter Pan’s Flight를 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아쉽지만…  

  정말 아쉬운 시간들이 흘러갔다. 벌써 마감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나오면서 아이들 햄버거 하나씩 사주고…걸어나오는데…너무 아쉬워서 신데렐라성 앞에서 사진을 다시 찍었다. 오전에 찍은 것은 주로 월트디즈니 동상 앞에서 찍은 것이 대부분 이었기 때문이었다. 출구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밀렸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기 위해…

  벌써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 빠져나왔다.

 

아…인터내셔날 드라이브   

  난 지금도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직접 운전을 하지 않은데다가..지도도 없이..그냥 어둠속에서 짐작으로 볼 수 밖에). 인터내셔날 드리이브의 근처에 형성된 시가지는 테마파크가 있는 디즈니와는 또 다른 맛있었다. 먹을 것과 놀거리가 여기에도 있었다. (분명히 올랜도 시내는 아니고 디즈니월드에 가까운 곳이다) 여기에서 우린 지진에 무너지려고 하는 집과 거꾸로 지어진 집… 그리고 스릴넘치는 번지점프와 작은 자동차(이거 정말 신나겠던데 마감시간이 되어서 타보질 못했다) 등등..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정보를 알고 간다면.. 올랜도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린 목사님과 피자를 먹으러 갔다. 8시가 넘은 시간이라 목사님댁에 가서 식사하는 것도 죄송스럽고 해서 피자집을 갔다. 거리는 피자의 가격에 따라 쿠폰을 주고 이 쿠폰으로 게임을 해서 상품을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피자를 먹자마자 게임기에 매달렸다. 밥먹은 어린이가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기대이상의 올랜도의 여행날이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2002년 4월 9일 여행 8일째 [UNIVERTIAL STUDIO/유니버샬 스튜디오]

 

정보는 힘이다 2

  오늘도 역시 이근재 목사님으로부터 유니버샬 스튜디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열심히 받아 적었다. 먼저 봐야 할 곳과 빼지 말아야 할 곳을 말이다. 오늘은 직접 운전을 하고 가기로 했다. 목사님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있어서… Ride까지 해주는 것이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어제 가면서 메모 해둔 약도-가는 길-와 유니버샬 스튜디오의 정보를 적은 쪽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어제와 마찬가지고 가방에는 두 대의 카메라와 그리고 얼려놓은 물을 가방에 넣었다.

 

두 갈래길

  여기와서 처음 안 사실이지만 유니버샬은 월트 디즈니월드와는 별개의 회사이다. 물론 디즈니월드의 MGM 스튜디오와 비교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구경거리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참동안 들어가서 주차를 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는 주차빌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주차를 시켰을땐…그 층(각 층의 이름이 있다. 킹콩 등)과 그리고 그 구역을 외우거나 적어두어야 밤에 나올 때 고생을 덜 할 것이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면 유니버샬 슈튜디오의 입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두길로 나누어지는데 오른쪽이 유니버샬 스튜디오이고 왼쪽이 매직킹덤과 같은 놀이기구를 타는 곳이다. 이 부근에 많은 레스토랑이 즐비하며 이 곳에서 저녁에 몇가지 이벤트들이 있다. 이 입구를 잘 기억해 두지 않으면 나올 때 해메이게 된다.

  왼쪽으로 쭉 걸어가면 유니버셜 특유의 공모양의 마스코트가 보이는데..여기가 진짜 유니버셜 스튜디오인 셈이다.

     

야~ 유니버셜 스튜디오이다

  이곳에 오면 대개 지도를 입구에서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안에 들어가 버리면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입구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6개의 테마영역으로 나뉘어진다. 우린 오늘은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에 비하여 우리의 발검음은 무거웠다. 어제 하루종일 탈 것들과 또 서서 기다려야 했던 관계로 다리가 많이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니버샬 스튜디오는 Production Central, New York, San Francisco/Amity, World Expo, Woody Woodpecker’s Kidzone, Hollywood로 구성된다.

Production Central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우린 마스코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어제 사인을 다 받지 못한 주원이는 처음부터 사인을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직 구경하나도 못했는데…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지는 않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탈 것보다..그냥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둘이 않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다는 마음과 함께. 이곳 입구에 있는 영역이 바로 Production Central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인을 받는 것에 주력했다. 특히 주원이는 사인 받는 것을 좋아하고 만족해 했다. 이번 여행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매달릴 때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 부모된 도리가 아닌가 싶었다.

 

New York

  이곳은 5-60년대의 뉴욕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영역이다. 이곳에서는 익히 알고 있는 영화의 제목에 따른 attraction들이 있다. 이곳에는 Twister, Extreme Ghostbuster, Kongfrontation, Blue brothers, Street Breaks 등이 있다. Kongfrontation (King Kong)에 가서 fastpass를 뽑았다. 디즈니월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fastpass가 아니고 “Express”이다. 그리고 우린 바로 옆 영역으로 넘어갔다.

 

San Francisco/Amity

  이곳은 네 attration이 있다. Rock’n Roll, Earthquake, Jaws, Wild Wild Wild West Stunt Show. 일단 우린 New York에서 Express를 썼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줄을 서야 했다. 우린 Earchquake(대지진)에 가서 줄을 섰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에서는 TV에서도 몇 번이 방영되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곳에 방문한 분으로부터 이곳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다 읽으면 재미 없을라나?)

  그렇지만 아이들에겐 멋진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들어가서 줄을 서면  순서가 되면 무슨 조그만 극장같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여기에서 관객들을 몇 명뽑아서… 영화를 촬영하는 기법을 관객과 함께 보여주며 즐기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드디어 영화에서 보았던 대지진의 경험을 직접하게 된다. 이 것도 기차를 탄 상태에서 체험하게 된다. 직접 체험해 보길 바란다.

  무엇을 하던지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린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 어떤 것이나 흥미를 느낄 수가 없다. 지금부터 나열하는 모든 attraction이 이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과 아내는 탄성을 지르고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공포(?)를 즐기었다. 그러나 디즈니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냄새보단 그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게 만드는… 테크놀로지를 이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New York 거리로

  EarchQuake에서 한참 비명을 지른 우린 밖으로 나와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12시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되는대로 배를 채우는 것도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경할 욕심에 쫄딱 굶는 경우도 생긴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려면 일딴… 배고픔을 잊게 해주어야 한다. 이제 Express를 해 놓은 킹콩을 보러가다가 Blue Brothers의 공연을 잠시 구경했다. 그냥 길거리에서 행하여지는 공연이지만 여간 관람객을 끌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프로그램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이들의 프로정신이 늘 맘에 들었다.

  킹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게 해준다. 아이들은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하늘을 나는 기차를 타고 킹콩의 공격(?)에 비명을 질렀다.

 

다시 San Francisco로

  처음에 지도를 챙겨서 갈곳을 정하고 Express를 뽑아야 하는 일에 동선을 짧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은 이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그렇게 안되는 경우도 많다. 이곳은 매직킹덤보다 더 규모가 작아서 그리 동선이 길어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놓지고 지나가 버린 (거리의 건물 들을 유심히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꼭 동선은 짧게 하길 부탁드린다.)

  San Francisco를 지나쳐서 우린 World Expo로 곧장 갔다. 왜냐면 여기서 백투더퓨쳐의 Express를 뽑기 위해서이다. 1시에 San Francisco의 끝에 있는 Wild Wild Wild에서 쇼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다가 Jaw를 보았지만 그냥 지나쳤다.

  Express를 끊고 나니 시간이 아주 애매했다. Wild Wild Wild쇼는 한번 더 있기 때문이다. 그냥 길거리에서 쉬었다. 그냥 앉아서 쉬는게 아니고 중간에 물안개를 만들어서 쉬원하게 하는 곳들이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물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World Expo의 잊지 못할 “백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

  이곳은 절대 놓쳐서는 안될 곳이다. 두 개의 attraction이 있다. 하나는 “백투더 퓨쳐”이고 또 하나는 “Men in Black(MIB)”이다. 이 두 개는 꼭 봐야한다. 백투더퓨쳐는 일본 자동차회사인 TOYOTA(도요타)에서 제공해주고 있었다.

  백투더퓨쳐의 Express는 모든 Fastpass가 그러하듯이 많은 줄을 서있는 사람들 옆으로 그냥..거침없이 들억는 재미가 톡톡하다. 그만큼 이곳은 사람들이 드끓는 곳이다. 들어가면 줄을 세우고… 밀폐된 곳으로 들어가서..그곳에서 차를 타게 된다. 그리고 차가 위로 올라가면 전면이 열리게 된다. 이때부터 우린 기막힌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차가 하늘을 날으며 깊은 계곡과 도심의 건물…그리고 심지어는 도시의 대형 광고판에 충돌하는 경험은 지금까지 어떤 것 보다고 흥분케하는 것들이었다. 머리좋은(?) 나는 너무 일찍 이들의 테크놀러지를 이해하고 말았다.

  아내는 떨어질까봐 꽉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아이들은 무서워 고개를 정면에서 자동차 계기판으로 눈을 옮겨단다. “옆을 봐”하는 나의 소리도 아랑 곳 하지 않는다. 옆을 보면… 이들의 테크놀러지의 속사정을 금방 알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백투더 퓨쳐는 영상과 Mechnical technology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직접 경험해 보길 바란다.

 

Wild WIld Wild

  즐겁고 흥분된 마음으로 우린 백투더퓨쳐를 경험하고 나와서 Wild Wild Wild쇼를 보러 갔다. 15분전까지 와서 줄을 서야 한다는 공지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우린 30분전에 갔다. 그런데 아내는 Woody Woodpecker’s Kidzone에 있는 새로생긴 Animal Plant Live와 시간이 약간 겹친다며 그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봐야 한다며 중간에 나오자고 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우린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배경의 무대를 두고 좀 뒤쪽에 앉았다. 계단식 객석이지만 빨리 나갈려고 말이다. 이곳에서는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재현하며 스턴트들이 어떻게 떨어지고 영화가 어떻게 찍히는지를 보여준다. 중간에 나갈려고 했던 마음을 싹…가시게 만들었다. 한참을 웃고 즐기다가 우린 끝까지 다 보았다. 그리고 서둘러서…  Animal Plant Live를 보기 위해 Woody Woodpecker’s Kidzone로 갔다.

Woody Woodpecker’s Kidzone

  이곳에는 그 유명한 E.T가 있는 곳이다. 서둘러서 Animal Plant Live로 갔으나 이미 쇼는 시작되었고 거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우린 가장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더니..그냥 계단을 쭈우욱…내려가더니…가장 앞자리 통로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늦은 시간만큼을 보상하려는 듯 신나게 동물쇼를 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동물들이 나와서 쇼를 보여 준다. 물론 동물만 나와서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니고 역시 탄탄한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곳이 또한 이곳이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나중에 볼 것이 없음으로 여기까지만 적는다.

배고프다

  그제서야 우린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았다. 백투더퓨처에 이어 Wild Wild Wild쇼, Animal Plant Live를 연이어 보느라 배고픔을 잊고 있었다. 오전 11시반경에 핫도그먹은 이후에 (이것도 아이들만 먹었으니) 몇시간동안 굶고 있었으니…

  백투더퓨쳐 옆쪽에 식당가가 있다. 동서양의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미 아침에 목사님으로부터 여기에서 식사할 것을 권유받은 이유도 있다. 실제 가보니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있었다. 나와 아내는 복음밥을 아이들은 피자을 먹었다. 아이들이 쌀밥을 찾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하다. 식사를 하며 그간 몇시간 동안 구경한 것을 서로 이야기하며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빨리 가고 있었지만 우린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리 서둘지 않았다. 앞으로 많은 여행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 촌스런 죠스, 그러나……

  밥을 먹고 우린 느긋하니 우리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오후의 햇볕은 정말 뜨거웠다. (아 핼리팩스는 얼마나 추운데…). 한참을 줄을 서서 들어가니..한배에 20명 넘게 태운다. 조그만 호수를 배를 타고 가며 갑자기 출현하는 상어를 총으로 쏘며 승객들을 나르는 선장(아주 젊은 친구였음)의 장난스러움에… 우린 그냥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어가 조금은 좀 촌스러워서리. 그러나 역시… 이것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 젊은 선장의 연기력이었다. 정말 자기 자신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온 힘을 다해 연기하는 그 젊은 친구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여기서 아이들이 너무 피곤해 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게임하는 것도 보고 그냥 구경하며 Jaws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우린 시간적으로 마지막 코스가 될 E.T를 보러갔다.

E.T.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그 감격 그대로 영화 E.T를 체험하게 만들었다. 이미 영화에서 보았던 E.T.가 다은 외계인과 떨어졌던 숲속에서 우린 줄을 섰다. 밖에서 줄을 서다가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숲속에서 줄을 서게 만든다. 여기서 이미 우린 E.T.영화에 사용되었던 세트인 것을 알 게 된다. 그리고 다시 우린 E.T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편안하고 달콤하게 영화 E.T.속의 주인공이 되게 만드는 이 곳은 디즈니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에겐 꿈을 어른들에겐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가게 하는 곳이다.

잊지 못할 유니버셜 스튜디오

  이렇게 우린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나오는 곳에 있는 Hollywood는 나오면서 먹을 거리를 먹고도 기념품도 살 수 있게 해 놓았다. 입구에 나와서 우린 Univertial Studio의 심볼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사진엔 늘 내가 빠진다. 사진을 찍어야 함으로.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한다. 드디어 네식구가 동시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유니버샬 스튜디오에서 나온 우린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고 말았다.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간대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다. 청소하는 흑인 쳥년에서 물었다. 그랬더니 청소도구를 다 내평켜쳐놓고선 우릴 입구까지 데려다 준다. 그 입구는 우리가 아침에 올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공연을 위한 무대를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고마운 청년의 친절함을 다시금 생각하며…

 

엡콧 EPCOT 

2002년 4월 10일 여행 9일째

  EPCOT(엡콧)은 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의 첫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직역하자면 “미래사회의 실험적 모델”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크게 두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미래의 세계(Future world)월드 쇼케이스(World Showcase)로 되어있다. 전체 지도를 보자.

  먼저 차를 타고 들어가면 주차장이 있는데 그냥 넓은 주차장이니 꼭 차량을 놔둔 곳의 위치를 메모해 두길 바란다. 양쪽 주차장 사이에 있는 길로 가면 셔틀기차가 지속적으로 다닌다. 여기서 입구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엡콧의 입구에 들어서면 미래의 세계가 먼저 있는데 첫 번째만나는 것이 돌비석도 아니고 돌탑도 아닌 조형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게 Leave A Legacy이다. 여기에는 돈을 주면 사진과 이름을 새겨주어 영원히(?) 기념하게 만드는 기념비이다. 한번새겨보라. 나중에 와서 보면 되니깐…(그런데 여길 두 번이상 오는 경우는 극히 적을 것이다.)  

  다음에 만나는 것이 바로 Space Earth이다. 우리 가족은 이곳을 구경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근재목사님에게 야단(?)을 맞았다. 다른 것은 구경못했어도 이것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뒤쪽에 Innovations가 있는데 우린 들어가지 않고 더 왼쪽에 있는 Universe of Energy를 갔다. 여기에서 더 멀리있는 Test Track의 fast pass를 뽑아 놓고 다시 왔다. 한참을 기다려 안으로 들어가니… 한꺼번에 30-40명씩을 그룹을 지어 원형의 실내로 들어가게 하고 거기서 이 attractions의 개관을 설명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한꺼번에 좌석에 앉게한다. 그리고 벽면의 웅장한 화면을 통해 에너지에 대한 영상물을 보여준다. 이것 뿐인가? 엥~ 하는 순간, 화면이 열리며  우리가 앉아 있는 좌석이 미끄러지듯 항해(?)를 시작한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에너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유치원생 정도라면  이해를 하기가 좀 어려울 수 있으나 초등학생이상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테마이고 특히 어른들은 감탄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지금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Wonders of Life이다. 이곳에서는 우리 인체에 대한 것을 볼거리로 제공해준다. 이틀간의 매직킹덤과 유니버샬 스튜디오의 구경을 한 탓인지 우리의 동작은 매우 느려졌다. 여기 실내에서 아이들이 운동의 속도에 따라 화면의 속도가 바뀌는 머신에 매달리고 있을 때 앉아서 쉬었다. 다 못보더라도 무리는 하지 말자. (왜냐면 아직도 여행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체력조절의 필요성을 잊지 않고 있었다. 짜여진 일정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특히 인체의 혈관을 통해 항해하는 경험은 (멀미를 하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인체에 대한 더 큰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다음은 Fastpass를 뽑아놓은 Test Track으로 향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나와 비슷한 순서로 올랜도를 구경하기 때문에 엡콧은 3일째나 4일째 구경을 하게 되기 때문에 다를 이곳에서는 지쳐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되어 우린 안으로 들어갔고 Fastpass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곳에서 자동차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이곳은 GM(General Motor사)에서 스폰사하는 곳이어서 GM의 차들을 볼 수 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겐 말할나위없는 볼거리를 제공받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서는 자동차의 생산후에 자동차를 여러 조건하에서 테스트하는 곳을 거치게 된다. 이 경험이야 말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자동차를 만끽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다시 줄서서 한번 더 타자고 한다. (매직킹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린 대충 먹을 것을 사먹고  미래의 세계(Future world)의 광장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바로 갔다. (시계방향으로 돌던 것을 무시하고) 그곳에는 바로 The Living Seas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면서 The Land(이곳에서는 땅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다)를 만나긴 했지만 앞에서 사진만 찍로 바로 The Living Seas로 갔다. 아직 볼 것은 많은데 오후시간이 많이 흘러갔기 때문이고 또 아이들도 이제 걷는 것을 힘들어 했다. 힘들어 하면서도 그래도 잘 따르고 있었다.

  The Living Seas는 쉽게 표현하면 수족관이다.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면 안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지하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내려가면 거기에 큰 홀과 수족관을 볼 수 있다. 바다생물에 대한 정보와 직접 바다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물론 올랜도의 Sea World가 있긴 하지만 여긴 엡콧안에 하나의 작은 구경거리임에도 우리 가족은 탄성을 질렀다. 많은 바다생물을 한 수족관에서 볼 수 있다니 그러나 우린 소리를 지르면 발견한 생물이 있었으니 바로 해우(바닷소)였다. 한참동안 보다…내가 소리쳤다. “황소를 바다에 넣어보라. 해우가 되는지 ” 난 진화론적 과학에 대한 심한 반발심이 생겼다. 그전에도 진화론은 그냥 이론(theory)일 뿐이라는 것을 다른 부분에서도 이미 확인한 바 있지만. 창조론을 그저 기독교에서나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과학이라는 속임수에 속고 있음을 다시금 말해주고 싶다.) 아무튼 말로만 듣던 해우는 나에게 충격과 행복감을 가져다 주었다.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부분을 다시금 상기하며 말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우주의 생물에 시작에 대한 답이 어디있을까?

  우린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아… Space Earth를 가야하는데… 하는 아쉬음을 뒤로 하고 우린 놓칠 수 없는 Imagination로 갔다.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구경거리이고 체험이었다. 이곳을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기에서 지휘를 하면 음악이 연주되는 것에 아이들은 많이 좋아했고..또 사잔을 찍어서 편집해서 .메일로 보내는 것인데 .잘못해서 나중에 한 장도 받지 못했다. 아쉬웠다.

  Space Earth를 봐야하는데..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린 서둘러 우린 월드 쇼케이스(World Showcase)로 향했다. 왜냐면 그곳은 밤9시까지 하지만 각 국가에 따라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시간이 빨리 끝나는 곳이 많았다. 이곳은 가운데 큰 호수가 있고 이 주변으로 7시방향부터 시계방향으로 Mexico, Norway, China, Germany, Italy, USA, Japan, Moroco, France, United Kingdom, Canada 순으로 10개국가의 관이 있었다. 각 나라에 걸맛는 건물과 그 안에 이벤트로 꾸며져 있다. 우린 멕시코관부터 시계방향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왜 한국관은 없을까?’하는 아쉬움을 갖고 멕시코관에 들어가자 “아~”하는 소리가 입밖으로 나왔다. 더욱 한국관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 곳에는 국가차원에서 로비를 통해서 한국관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데…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이곳에서 멕시코를 이해할 수 있듯이 10개의 국가를 이렇게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아끼자… 목사님이 추천해준 곳을 보자…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노르웨이 였다. 아이들이 이곳을 지금(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얼마나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해적의 나라를 볼 수 있었다. 아참…이곳(월드 쇼케이스)의 도우미들은 그나라의 사람들이 일을 한다. 멕시코와 노르웨이는 보트를 타고 그 안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캬….

  다음은 중국관…. 중국관은 멀리서 봐도 중국을 생각하게 한다. 마당에선 어린아이들의 쇼가 있다. 이것에 많은 서양인들은 관심을 갖고 구경한다. 다들 바닥에 않아서…  우린 중국관안을 구경하지 못했다. 벌써…6시가 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관안에 영상을 꼭 봐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그리 되지 못했다.) 6시 30분에 있는 (물론 8시 10분에 한번 더 있다. 이 시간표는 지도와는 달리 따로 가이드용지가 있으니 꼭 두 개를 함께 가지고 다녀야 한다. 유니버샬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Deams Parade(원 제목은 Tapestry of Deams Parade이다)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매직킹덤의 퍼레이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사람들은 거의 1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는다.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퍼레이드를 기다린다.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매직킹덤의 퍼레이드를 앞에서 보지 못했던 우리는 미리가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되어갈수록 질서있게 자리를 잡았고 이를 정리하는 직원들은…즐겁고..밝은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는데..막바지에는 음악에 맞춘…이벤트도 잠시 보여준다. 여기에서 한 흑인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시종..밝은 표정으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나누고..지나가는 모든(???) 여자직원들을 포옹하고 때론 입맞춤을 해대는 광경은 또다른 볼거리이다. 왜 그 흑인직원에게 다른 여자직원들이… 그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친구가 사회생활(???)을 참 잘 하나보다 싶었다.

  Deams Parade는 매직킹덤의 퍼레이드와 마찬가지로 모든 출연자들이 “프로다!”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경쾌하면서도 웅장한 음악과 퍼레이드는 전체의 짜임새가 거의 완벽했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과 실제 페레이더가 펼치는 음악의 조화는 정말 대단했다. 정교한 타악기의 연주…. 야외에서 하는 만큼 대충할 것 같은데… 그들은 한 오케스트라에서 하는 듯한 연주를 해내고 있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타악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있었다.) 아무튼 거의 한시간동안 이루어지는 퍼레이드 시간동안…아이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구경하였다. 난 후레쉬를 터뜨렸다. 이곳의 출연진들은 사진을 찍으려 하면 그저 좋은 사진이 나오도록 적극도와주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난 여기서 많은 사진을 찍어댔다.

  해가 기울고 이미 어두어졌다. 우린 사람들 사이로 (밤이 되자 갑자기 사람이 많이 불어난 것 같았다.) 바삐 걷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다리가 아파왔다. 시계방향으로 독일관, 이탈리아관, 미국관을 거쳐(그냥 보지 않았다.) 일본관까지 갔다. 일식을 먹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들어가 보니..먹을 게 별로 없었다. 일본관안에 들어갔다. 이들이 무엇을 보려주려는 것일까?하고 말이다. 놀란 것은 이들일본관에는 일본 프로야구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들이 서양인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느 것은 이또오 히로부미가 아니었다. 바로 프로야구였다. 조금은 으아해하고…조금은 좀 유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한국관이 생기면 거기에 무엇을 전시할꼬?하는 생각도 하고 말이다.

  모나코관으로 갔다. 일본관에서 먹을 것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나코빵이 유명하다나? 그러나 실제 가보니..너무 비싼데다가…별로 맛이 없어보였다. 밖으로 나왔다. 주로 먹을 것만 파는… 에고…

  남은 나라가 프랑스관영국관, 그리고 캐나다관이었다. 9시에 있는 불꽃놀이까지는 아직까지 30분이상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포장마차같은 곳에서 핫도그를 통해 배를 채웠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있어서…(이때 거리에선 두번째 페레이드가 계속되고 있었다.) 프랑스관에 들어갔다. 큰 극장에 3면의 대형화면으로 프랑스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좌석은 고정되어 있었으나… 화면이 큰 데다가..앞쪽에 앉다보니..멀리를 했다. 상당히 불쾌한…멀리를…했다. 화면은 공중에서 찍은 프랑스의 전반적은 볼거리를 제공하였는데…멀미 때문에 10분이 고통스러웠다. 안 볼 수도 없고… 에고…

  밖으로 나온 우린…불꽃놀이(Fireworkds)를 볼 자리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호수주변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린 그냥 길에 서서 보기로 하고..아이드은 호수난간쪽으로 갔다. 이런 난간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보기 좋은 곳에 섰는데 마치 휠체어를 탄 사람의 앞이었다. 가서 다른 곳에 가도록 했다. 아이들이 다른 곳에 삐집고 들어갔는데 이곳 사람들이 그런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았지만 그냥 내 버려 두었다. 그래도 눈치껏 자리를 잡았다. 나와 아내는 그냥 길에서 서서 구경했다. 호수를 이용한 불꽃놀이 아직까지 그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는 처음보았다. 수억을 퍼부었을만한…이벤트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매일밤 이렇게 쏘아올린다고 하니….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불꽃놀이도 그냥 쏘아올리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기에도 최신의 테크놀러지가 적용되고 있었다. 꼭…밤까지 기다렸다가..이것을 보아야 한다. 이것을 보지 않으면…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만족해 하며… 군중에 휩싸여… 엡콧을 빠져나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그리고 “엡콧은 3, 4일째 보는 곳이 아니다. Fisrt Choice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데이토나비치 

2002년 4월 11일 여행 10일째 [데이토나비치]

마이애미 대신에

  플로리다하면 누구나 “마이애미”해변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마이애미는 사람들에게 그리 흥미를 끌지 못한다. 너무 흑인들이 많고 또 많은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마이애미를 꺼린다. 최근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는 여름에 가장 가서 쉬고 싶은 곳으로 마이애미가 아닌 “데이토나비치”를 꼽았다. 아직 덜 개발(?)된 지역이고 또 마이애미와 같은 해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곳은 바로 그 유명한 자동차 경기장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

  데이토나비치를 들렸다가 NASA 케니데 우주항공국까지 들리는 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지도와 정보(?)를 가지고 우린 동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가는 길이 좁고 또 많은 차량 때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1시 가까이 되었다. 좀더 서둘껄..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더구나 저녁 6시에 저녁을 먹기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전쟁의 복구에서 허덕일때

  먼저 간곳은 바로 Daytona USA였다. 이곳은 우리가 TV에서 자동차경주를 많이 보아왔던 곳이었다. TV에서 나오는 탈렌트를 만나는 기분으로 우린 입구르 한참이나 찾았다. 경기장 자체에서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바로 여기에 박물관이 있다. 이 경기장의 역사와 자동차경주의 역사를 전시한 박물관이다. 생각보다 싸지 않는 입장권을 사서 우린 안으로 들어갔다. 3일간의 올랜도 여행으로 우리 모두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이 경기장은 1937년에 경기장을 만들어 자동차경주를 하였으며, 우리나라가 625전쟁이후 폐허에서 전쟁복구에 힘쓸 때 지금의 경기장 형태를 완성(1954)하고 자동차경주를 즐겼다는 사실에 큰 충격에 빠졌다. 이래서 미국인가?하는 어떤 열등감이 느껴졌다. 솔직한 감정이다. 우린 보리고개를 넘기며 농사의 결과를 하늘에 맡기며 어려운 시기를 감당하고 있을 때…자동차 경주를 즐기고 있었던 이네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아~ 대한민국이여!

  안에 작은 소극장에서 자동차 경주에 대한 정보들을 보여주며 박물관안에는 자동차경주의 모든 역사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이들이 컴퓨터게임기 앞에서 얼쩔댈 때 아내는 자동차 경우의 역사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런 것을 봐야 하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철없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한국사람들이 오면 이런 것 잘 안읽어본다.)

  이 안에서는 자동차경주의 시뮬레이션을 체험할 수 있는 고급(?) 오락기가 있다. 실제 자동차 경우에 타고 앞화면에 자동차 트랙이 나오는데 보통 오락실에서 하는 것과는 좀 차원이 다르다. 더 리얼한 자동차 경주를 할 수 있다. 난 둘째인 주원이와 함께 탔다. 문제는 주원이는 악셀레이터가 발에 닿질 않았다. 재빠르게 자리를 바꾸고..계속 경주에 참여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동시에 경주하는 사람들보다 뒤쳐졌다. 그리고 그 결과를 프린팅해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신이났다. 그러나 두 번하기에는 가격도 비싸고 시간도 없고… 또 힘도 들었다. 꼭 한번쯤 경험해 보길 바란다. 또한 여기에서는 우리가 TV에서 보는 자동차경기도중 바퀴를 교체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약 20초동안 바퀴 4개를 교체하는 시범은 많은 사람들의 볼거리이다. 이것도 시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으니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박물관안을 본 후에 우린 경기장안에 투어를 하려고 줄을 섰다. 30분마다 셔틀기차(?)가 오는데 사람이 많으면 15분간격으로 실어나른다. 여기에 운전하는 사람들은 대개 60이 넘어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젊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약 40여명의 손님들을 한꺼번에 태우고 가면서 경기장의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었다. 1시간이 채 안걸리는 투어인데 그 경기장을 다 볼 수 있고 중간에 내려서 실제 자동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본인이 운전하는 것은 아니고… 옆좌석에서 카레이서가 운전하며 유리가 없는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얼굴살의 떨림(???)과 이그러짐(!!!)을 체험할 수 있는 코스이다. 우린 포기했다. 무서버… 아무튼 경기장을 쭉 둘러보는 동안 운전하는 할아버지는 내내 싱글벙글…농담까지 섞여가며 자기의 일을 즐기고 있었다. 아~ 한국의 할아버지들여!

마이애미의 대안 “데이토나비치”

  우린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와 데이토나비치로 갔다. 지도를 보면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입구의 다리는 여행의 기쁨을 더해주었다. 시내에서는 철저히 속도를 제한하였고 이를 어기는 차는 거의 없었다. 데이토나비치 안에서는 차들이 기어다닌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참동안 주차장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처음 해변길을 들어섰을 때 부근에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주차비를 내고 들어가면 되는데… 모래가 너무 가늘어서 자동차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데이토나비치 주변엔 세차장이 많다. 이미 점심떄가 지났기 때문에 우린 서둘러서 차를 세우고 점심준비를 했다. 가는길을 예상해서 최소한 4시 반에는 출발을 해야 하는데 약 1시간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아내는 라면를 끓이고 아이들은 벌써..모래로 달려갔다. 해변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자거나… 아니면 몸을 태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변은 아주 작은 알갱이의 모래(아주 가는 모래)였다. 그리고 수심의 차이가 거의 없어… 몇십미터를 가도..허리밖에 차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해변의 길이가…너무 길었다. (마이애미도 이렇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풍덩들어갔다. 시간이 없어서…나는 아이들을 재촉하고…아이들은… “10분만 플리즈”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아쉬웠다. 해변의 북쪽에 위치한 케이블카도 타야하는데…. 아쉬움만 더해갔다.

 

ALE Restaorant

  돌아오는 길도 한참 걸렸다. 또 집을 찾는데도 쉽지 않았다. 분명히 갈 때 간 길인데… 말이다. 돌아와 아이들과 ALE라는 레스트랑에 갔다. 아이들이 그곳에 가고 싶어했다. 목사님 내외는 올랜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나가시고 계시지 않았다. 목사님 아이들은 딸 수잔나와 둘째인 대니얼, 그리고 막내(3살)인 새미가 있고 그리고 한국에서 유학온 제임스가 머물고 있다. 제임스는 우리를 위해 방을 비워주었다. 아무튼 아이들과 함께 ALE라는 곳에 갔다. 캐나다에서 음식점에 갈 때마다 늘 돈이 아깝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우리기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이 나오자 나의 이런 선입관이 틀렸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모처럼 한국에서 먹어보던…그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 아이들도 만족해 하고…우리 아이들도 만족해 했다. 아내도 오랜만에 입에 맛는 음식점을 왔다며 즐거워 했다.

  아쉬운 올랜도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올랜도에서 아틀란타까지 (11일째)

2002년 4월 12일 여행 11일째 [올랜도를 떠나 아틀란타에]

 

이제 집으로 가자!

  아침에 깨어보니… 사모님은 벌써 출근을 하셨고 우리 식구만 식사를 했다. 목사님과 새미는 아침을 드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월마트로 갔다. 새미는 우리 차를 탔다. 새미를 못타게 하려고 문을 잠그고 아이들(주찬이와 주원이)이 들어가는 바람에 새미는 휴대폰으로 자동차에 많은 흔적(?)을 이때 만들었다. 그 흔적을 볼 때마다 귀여준 새미가 기억나게 해주니 때론 흠집이 좋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새미와 주원이

  새미(Samuel의 애칭). 새미는 우리가 올랜도에 도착한 날부터 주원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주원이를 건들었다. 너무 나이차이가 많다고 생각했는지 주원이는 안놀아줄려고 하고 새미는 자꾸 건들고. 주원이는 피하고. 피하는데 한계가 있고. 그러나 새미가 때리면 오버해서 울고. (하마터면 911부를뻔했다. 하도 크게 울어서 뭔 일 생긴줄 알고….흐흐흐) 그렇게 5일동안 알 게 모르게 정이 들었는지 새미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새미의 형(중3)과 누나(고2)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은데 오랜만에 가장 나이차가 적은 같은 동족(?)을 만났으니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새미가 싫다며 도망다니는 주원이는… 좀 철이 없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새미는 졸졸졸 따라 다니며 도망치는 형아의 모습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그저 어른들 눈에는 어찌 그리 이쁘게 보이는지… 하하하.

  

월마트

  월마트에서 시장을 보았다. 목사님댁 식품을 거덜냈던 우리가족은 시장을 보기로 했거니와 또..자동차의 엔진오일을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무려 4000km를 넘게 썼으니 당연히 교환하여 출발하는게 좋를 것 같았다. 올랜도에서 이제 집까지 가는 거리가 족히 대충 어림잡아 5000km정도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사람은 목사님댁에서 주로 먹는 상품들을 골랐다. 남자인 나는 이런 것 잘 모른다. (내가 한국사람이어서 망정이지….) 그 사이에 목사님은…차안에서 휴대폰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전원잭을 사주셨다. 에고….. 그리고 난 목사님에게 휴대폰 이어폰을 선물했다. 자동차 점검이 될 때까지…목사님은 비를 맞아가며 전원잭을 점검해서…결국 우리 자동차의 전기문제까지 해결해 주셨다. 아~ 목사님….

  

이별은 만남의 기약인가?

  벌써 시간은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목사님은 근처 치킨집으로 우릴 데려가셨다. 그리고 거기서…또 주머니를 터셨다. 아~ 목사님…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아쉽고…고마운 마음이 가득한…마음이 교차했다. 그러나 이별은 만남의 기약이라고 했던가? 또 언제 만날지 알 수 없는 기약이지만 다시 만나는 기약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미였다. 며칠간 정이 들었던 탓일까? 우리차에 타려고 떼를 쓰며 운다. 낮시간엔..거의 보지 못하고 밤시간에 잠깐 잠깐 보면서 주원와 토닥토닥 싸우던 새미 그 새미가 이제 형아들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새미는 다시한번 강한 인상을 우리 뇌리에 각인했다. 보고 싶다. 새미…..

   

폭우의 만나며

올랜도를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한국에서의 장대비와 같은 폭우를 만났다. 앞의 자동타가 두 대정도 보일까 말까한 시야…였다. 나는 비상등를 켜고 갓차선에서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면 운전했다. 올랜도에서 늦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름을 넣을 때를 제외하곤 쉬는 것을 자제하고 마음먹었던 것이…’휴게소만 나타나면 쉰다’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그러나 비가 그칠 때까지 휴게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천둥번개를 동반하는 폭우는 한참동안 지속되었는데 비가 그치자 언제 그랬냐는 둥 청아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산이다!

  아틀란타에 접어들면서 우린 반가운 광경을 보기 시작했다. 바로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도 미동부에서도 거의 보지 못했던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큰 산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보는 그런 산이었다. 길도 점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는 지형이었다.

   

이벤트의 나라 미국 – Stone Mountain

  해가지려고 할 무렵 우린 아틀란타에 도착했다. 아틀란타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미국의 동남부의 중심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다시 뉴욕에 왔나?’하는 생각이 들 게 해주었다. 도시를 둘러싸는 고속도로를 타고 우린 아틀란타의 동쪽으로 달렸다. Stone Mountain까지 가야하는데 지도상으로 1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았다.

  차들이 많고 복잡하긴 했으나…해가 지고나서야 우린 Stone Mountain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쌀쌀했다. 우린 두꺼운 옷을 내입고 레이저쇼를 하는 것을 물어서 찾아갔다. 수학여행온 학생들과 일반 관광객들이 있었다. 바닥은 비가 왔었는지..질퍽거려서 우린 서서 구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산의 벽면에 새겨진… 기마병(남북전쟁때의 모습) 3사람이 그러져 있었다. 거의 1시간 동안 레이져쇼는 계속되었다. 음악과 잘 프로그램밍되어 있는 레이저쇼었다. 결국은 미국은 하나다…라는 주제를 보여주었다.

  돌산..하나를 그냥 놔주지 않는 미국인들의 이벤트에 대한…집착을 느꼈다. 그냥 놔두면… 그저 민둥산 돌산을 뿐인데…말이다. 뭐라고 하나 있으면…그것을 그냥 놔두지 않는 미국사람들이었다.

  2일전의 엡콧에의 환상적인…불꽃놀이를 이미 구경했던 아이들이지만… 음악과 레이저쇼, 그리고 불꽃놀이가 만들어가는 환상적인 이벤트에….”재밌다”라고 표현하는 아이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이 재미있어야 하면 성공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도 한국사람이

  세계 어느곳에 한국사람이 없는 곳은 없다. 아틀란타가 큰 도시니..당연히 한국사람이 많을 것이다(정확한 통계는 아직도 모른다). 다시 시내쪽으로 가서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comport Inn에 들어갔다. 처음엔…아틀란타의 북쪽에 위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고속도로에서 좀 헤맸기 때문이다(실제론 아틀란타의 동쪽이었다). 이곳에 주변에서 한글로 된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식당가며…변호사 사무실 등 이곳에서 한글로 된 간판을 보게 될 줄이야 LA나 뉴욕도 아닌데 말이다.

  또한 이 곳 Comfort Inn의 직원들의 발음은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주로 소리가 입청장을 중심으로 비강과 구강에서 울려나오는 발음이었는데…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곳 사람들만 그러는 것인지..아니면… 미국 남부의 발음이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먼 길을 다녀온 탓인가? 그래도 우린…라면을 끊여서..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문틈을 막았다.

 

아틀란타에서 네쉬빌까지 (12일째)

2002년 4월 13일 여행 12일째 [아틀란타에서 네쉬빌까지]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아틀란타시내에 있는 “마틴루터 킨 목사 박물관”에 가는 것이 오늘의 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였다. 아틀란타에 있는 코카콜라 박물관도 있으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는 것 같아서 코카콜라 박물관은 포기하였다.

  주차를 하고 처음 본 것은 교회였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교회… 입구에 “구경안됨”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예배와 상관없이 교회를 구경삼아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 게 되었다.

  바로 그 건물의 옆에 바로 옆에 “Martin Luther King Jr. National Historic Site”라고 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없었다. 안에 현관에 들어가니 킹목사의 생가를 구경할 수 있는 티켓을 시간대별로 나누어 주었다. 우린 11시 표를 받았으나 결국 찾지 못해서 가질 못했다.

  아내는 처음부터 샅샅이 읽어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벌써 흥미가 없는 듯 했다. 좀 어두운 면이 부각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이곳 안에는 예상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좀 더 큰 고등학생 이상부터는 그것을 통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것들이 내 마음에 일어났다. “아~” 우린 언젠가부터 소외된 계층과 사람들을 잊고 살고 있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대다수 국민은 잘 살지만 반면에 어두운 곳이 있다.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 그렇다치더라도 세계에 참으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굶주리고 헐벗은 어린이들은 또..어떠한가?

  마틴 루터 팅 목사는 이런 부분의 운동을 하다…돌아가셨다. 이곳에는 단지 흑인들만 위한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던져주고 있었다. 이곳은 마틴 루터 킹을 더 이상 추모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우리안에 있는 그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다 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원초적 질문을 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이미 난 기성세대의 그룹에 속하고 있지 않는가?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생각들로 복잡했다. 난 다시 청년이 되어야 한다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곳에서 받은 감동을 난 다시 잊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이땅에 사는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하며 살자하는 마음도 함께 일어났다.

   

누가 차타?

  아틀란타를 떠난 우린 우린 새로운 주에 들어섰다. 테네시주 이곳 경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차타누가가 있다. 도시이름이다. 우린 장난스럽게 “누가 차타?”하면서 이름을 상기했다. 이곳에는 볼 것이 두군데가 있다. 하나는 Ruby Fall이고 또 하나는 Rock City이다. Rock City는 야경을 봐야 한다고 해서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표지판을 따라 우린 Roby Fall로 갔다. 올라가는 길이 고불고불하여 주원이가 멀미를 한다고 하더니 도착하기 전에..심하게 토하고 말았다.

  결코  싸지 않은 티켓을 사서(이런 시골?에서도 카드가 된다는 것이 참..신기하다) 줄을 섰다. 일단 엘리베이터로 수직으로 내려가서 그 동굴를 따라 들어가는 순서였다. 1시간동은 화장실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화장실을 갔다 오게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TV모니터를 통해 동굴의 역사를 소개해 준다. 그리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나오는 손님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멈추도록 한다. 이런 것을 보면서…늘 줄서기 잘하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들어가고 나가는 그룹이 절대로 한꺼번에 움직여서 부딪히는 일이 없다.

  동굴에 가면 한국의 석류굴 생각이 나게 한다. 암석의 산속 깊에 형성된 좁은 동굴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간에 종유석이 많은 종유석 동굴이다. 한국의 만장굴이나… 석류굴보다..그 규모가 크지 않지만… 좋았다. 이국땅에서 이런 곳에 와 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말이다.

    

어디갔니? 루비폴

  30분 가량 갔을 때 드디어 폭포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나 보다! 가까이 가니 소리만 우렁차고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아~! 어두워서 결국 못보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찰라 음악과 함께 조명이 위에서 아래로 쏘아졌다.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그저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폭포였다. 종유석 동물 끝에 직경 5m정도의 원형동굴이 위로(수직으로)  있고, 그 위에서(꼭대기는 보이지 않음) 쏟아지는 폭포는 대단했다. 그 폭포수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넘치지 않고 사라지고 있었다. 항상 그 만큼의 양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떨어지는 만큼 물이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었다.(여기 오기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물의 근원지와 또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많은 조사를 했으나..아직 껏 신비에 싸여있다고 한다.)

  떨어지는 폭포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해 놓았다. 떨어지는 물방울에..카메라를 손으로 가리면서 사진을 찍었으나 어찌하랴 찍히지 않으니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거러나 폭포는 찍히지 않았다. 그저…어둠만 찍힐 뿐이었다.

    

아! 멀미

  그 곳을 내려오면서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 되었는데 온 식구가 멀미를 했다. 산이 있어 좋긴한데…멀미라.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길 때문은 아니었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중간에 라면을 끊여서 밥도 먹고….

  그러나 네쉬빌 가는 길은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아틀란타와 차타누가에서 보낸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또 중간에 멀미를 심하게 하는 주원이 때문에…쉬어야 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기 위해 쿨러(아이스박스)를 꺼내던 나는 으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틀란타에서 실었던 얼음이 녹아 그만 쿨러의 꼭지가 빠졌는지 물이 다 새어나오고 말았다. 이것 때문에 다들..멀미를 했다. 이미 물이 다 쏟아졌으니 차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어찌하랴……

  남은 물이라도 잘 비우고 쿨러안을 정리해서 우린 네쉬빌로 향했다. 중간에 목적지인 정교수님의 안내로 .새로운(지도에는 없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였으나 약속시간인 6시에 도착하지 못했다.

 

음악의 도시 “네쉬빌”

2002년 4월 14일 여행 13일째 [내쉬빌에서 쉼]

 

미국인 교회에 예배드림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9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우리 간 곳은 정교수님 가정이 다니는 미국인교회이었다. 침례교회이었는데, 건물이 체육관 처럼되어있다. 예배 이외에는 체육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본 동양인인 우리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곳 교회의 목사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예배는 11시에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한국처럼 1부 예배인 셈이었다. 넥타이를 하지 않는 목사님은 아주 편하게 설교를 했고 설교의 요점을 화면에 처리함으로서 예배의 집중력을 높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어권 예배는 처음이라 낯설고 또 용어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곳은 음악의 도시답게 찬양을 연주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일단은 프로급이었다. 섬세한 연주가 가능한 연주자들이 예배를 돕고 있었다. 참 부러운 부분이었다.

잭슨장군?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네쉬빌이 아니고 네쉬빌 아래에 있는 조그만 도시였다. 실은 하나라고 봐도 되지만 행정적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교회에서 북쪽으로 달려서 시내의 동쪽으로 가서 우린 General Jacson이란 네쉬빌의 강를 유람하는 유람선을 타기로 되어 있었다. 이름이 왜 붙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되돌아 오는 동안 뷔페식사와 음악공연을 보게 되어 있는 패키지였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표를 예매해둔 정교수님께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우린 식사를 하고 (이미 예약석이 되어 있었다) 바로 이어지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메인 싱어와 일렉키타, 베이스키타, 그리고 드럼과 변형된 벤조(이거 가야금 처럼 뉘어놓고 연주)를 연주하는 여성 싱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가수의 연주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특히 주찬이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중간중간에 물어본다. “저거 바이올린 소리예요?”하고. 아무튼 바이올린 연주에서 기차소리, 타악기소리, 잡음 등 다양한 포퍼먼스를 하는 연주였다. 연주는 지루하지 않게 코믹한 요소들 넣어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음악을 선사하고 있었다. 특히 단체관람객인 5-60대 아저씨들이 많이 즐거워했다.

  연주가 끝나고 우린 배위로 올라가서 강가를 구경했다. 이미 식사와 연주 도중에 창가를 통해 별로 볼 것이 없는 이곳 네쉬빌강이었지만 강바람도 쏘일겸 나와사 기념촬영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강의 주변은 정말 황량했다. 때론 목장도 나타나지만 말이다.

 

자동차여!  

  어젯밤 짐을 내리면서 발견한 아이스박스(Cooler)에서 흘러내린 물때문에 차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던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가까운 공원에 갈 계획을 바꾸어 차안을 청소하기로 했다. 짐을 내리고 의자를 빼내고(글로 쓰니 이렇게 쉬운데, 실은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고….) 바닥을 드런낸 후 주방용휴지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정교수님 내외와 우리 부부가 함께 이 일을 했다. (정교수님 부부께는 지금도 얼마나 미안한지…) 아무튼 두어시간을 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아파트의 관리하는 독신남에게 큰 선풍기를 빌려서 바람으로 날려보려고 애를 썼으나 그리 쉽지는 않았다.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라면 좋을 텐데!하는 아쉬움도 어찌보면 호강이라고나 할까?

미국에서 동창회를? 

  저녁은 이곳 네쉬빌에 와 있는 나의 동창 두사람 가족과 정교수님가정, 그리고 전남의대 내과학 정OO교수님 내외가 참석하였다. 한국에서도 졸업후 만나지 못한 동창을 이곳 미국에서 만난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아리랑인가?) 한국음식점에서 우린 오랜만에 갈비를 먹었다. 여자들은 순대를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역시 자장면이다. 아이들은 일찍 식사를 끝내고 누군가 가져온 카드로 게임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한국아이들이 많이 모여서들인지 즐겁게 노는 것을 보았다.

  난 오랜만에 만난 동창(두 사람 모두 여자)들과 가까운 동창들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한 사람은 남편이 방문교수로 와 있는데 함께 왔고 한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유학을 와 있었다. 개원하고 있었는데 병원도 문을 닫고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공부하러 와 있음에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의 생활을 만족하고 있다는데 있다. (한국에 있으면 돈 잘 벌텐데….)

  내쉬빌의 시내는 구경하지 못한채 테네시주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네쉬빌 – 루이빌 – 클리브랜드 

2002년 4월 15일 여행 14일째날 [ 내쉬빌에서 루비빌을 거쳐 클리브랜드까지]

 

북으로 북으로

  네쉬빌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 가족의 오늘의 여행의 여정은 조금은 먼 길을 달려야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교수님 사모님이 해주신 아침과 그리도 싸주신 샌드위치를 들고 우린 개솔린을 넣은 후 고속도로까지 진입했다. 여기까지는 정교수님이 직접 가이드를 해주셨다.  내쉬빌 시내를 관통해서 북쪽으로 달리는 65번 고속도로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네시(Tennessee)주를 벗어나 켄터키주로 향하였다. 이 부근은 길 주위에 산이 있고 이 산은 지층이 여러층(퇴적층처럼)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아마도 산을 깍아서 고속도를 만들어서 그렇게 지층을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아브라함 링컨

우린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몇사람이 있다. 그 중의 한 분이 아브라함 링컨이 아닐까한다. 65번 고속도로 10번 출구에 “아브라함 링컨의 생가”가는 곳이 표시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가 이길을 거쳐가지 않았다면 (비록 생가에 직접 가보지 못했을지라도) 아브라함링컨이 켄터키(Kenturkey)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여행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마음은 생가에 한번 가보는 것이나 오늘 루이빌을 거쳐 클리브랜드까지 가야하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게으른자여 들을지어다

  여행전부터 올라가는 길(올랜도에서 다시 핼리팩스까지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계속 해오신 이근재목사님께서 올랜도를 출발할 때 주신 설교테잎은 이미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성경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있었다. 이곳 켄터키주에서 들은 테잎의 설교제목은 “게으른자여 들을지어다”였다. 성경이 말하는 게으른자에 대한 바른 가르침의 말씀이었다.

  캐나다생활 가운데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만적 요소를 다시한번 감사함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말씀이었다. 우리가 참으로 시간을 아끼며 성실하게 살아야하는 성경적 말씀이었다.

  우리는 흔히 듣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 말을 하면 “설교하네”하는 설교에 대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사람에겐 무의식속에 기독교를 폄하하거나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나를 포함하는 많은 크리스찬들의 잘못된 삶에서 비롯 했을테지만,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목사님들의 설교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분이라면 이미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올랜도에서 선물로 받은 설교테잎은 먼 거리를 여행하는 나에게 또하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아름다운 공원 루이빌과 사랑이네  

  루이빌(Louisvile, 루이스빌이라 읽지 않고 그냥 ‘루이빌’이라고 한다)은 광주(전라도)에 살 때 함께 일했던 휘현자매가 사는 곳이다. 신학공부하는 전도사님과 결혼하여 현재 “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아들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캐나다에 오기전부터 서로 연락을 해오던 차이라 올라가는 길에 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65번 고속도로에서 루이빌의 동쪽으로 우회하는 265번에 있는 신학교의 기숙사 아파트에 생활하는 사랑이네를 찾기 위하여 중간에 전화를 하면서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한 지도를 갖고) 찾아가던 중 우린 다시 북쪽으로 더 가 버리는 실수를 범함으로 또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다행이 고속도로 출구까지 마중나온 전도사님과 사랑이 덕분에 쉽게 아파트까지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정말 좋은 날씨와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살기좋은 곳이다라는 말을 그동안 전화상으로 메일에서 많이 들어왔지만 정말 맘에 드는 곳이었다. 주택가 사이사이에 펼쳐진 골프코스들… 아니… 골프(퍼블릭) 코스 사이에 집들을 지어놓았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이미 잔디밭에는 민들레가 피고…민들레의 홀씨까지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떠나온 핼래팩스와는 날씨가 2개월은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루이빌은 하나의 공원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야외벤치에서 식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고기도 굽고 한국에서 먹어본 고추장볶음(이거 핼리팩스에서도 만들어 먹어 봄) 등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들을 준비했다. 사랑이를 줄려고 준비한 트럭(레고에서 만든)을 받아는 사랑이는 선물과 함께 오랜만에 동족(?)들을 약간의 경계심을 갖더니만 이내 아이들과 어울려논다.

     

내친김에… 인디애나까지 

놀다가 자고 가라는 전도사님내외의 만류도 뿌리치고 우린 가는길을 재촉해야 했다. 265번 고속도로에서 71번 East를 통해 신시네티와 콜롬버스를 통해 클리브랜드까지 가야하는 우린 71번 고속도로로 나가는 출구를 찾지 못한채 루이빌의 북쪽을 통해 Ohio강(켄터키주와 인디애나주, 오하이오주를 경계하는 강)을 건너 64번 West로 들어서고 말았다. 계획에 없던 인디애나주에 들어오고 만 것이다.

  이 일로 또 40여분의 시간을 낭비했지만 인디애나주에서 기름도 넣고…또 루이빌의 북쪽시내도 볼 수 있었다. 루이빌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물론 대도시에 비하면 작고 조용하지만 말이다.

    

신시네티와 콜롬버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신시네티를 지나고 있었다. 가는 길주위엔 넓은 옥수수밭이라 생각되는 밭이 전개되었다. 이곳에서 나온 옥수수가 통조림 옥수수로 나온다고 생각하니…. 텃밭에 옥수수를 키우는 우리네 옥수수 농사를 생각해 보았다. 가격 경쟁이 안되는 농산물…..

  집사람은 “니들은 좋겠다. 땅 넓은데 살아서 .’라고 말한다. 웃음이 나온다. 키득키득. 그러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러니 한국사람들은 할 것이 공부밖에 없다.” 그 넓은 평야지대 오아이오주를 오면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다. 공부……

    

어둠의 클리브랜드 

  루이빌을 출발할 때는 클리브랜드근처에서 자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과 함께 출발했으나 신시네티와 콜롬부스를 의외로 빠른 시간에 통과를 했다. 콜롬부스를 지나가며 클리브랜드에 사는 김관식교수(2002년 1월부터 교환교수로 미국에 거주)댁에 전화를 드렸다. 물론 그전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말을 이미 해놓았지만 잘 하면 클리브랜드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사모님께서 늦어도 좋으니 집에와서 밥먹고 자고 가란다.

  그러나 클리브랜드는 콜롬부스에서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중간에 이미 해가 저물었고 71번 고속도로 동쪽으로 나 있는 271번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어둠과 함께 길의 확장공사로 군데군데 차선이 혼란이 계속왔다. 물론 한 길이기 때문에 다른 길로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한참동안 운전을 해서 클리브랜드의 동쪽에 위치한 Mayfield라는 곳에 도착했다.인터넷에서 알려준 지도(물론 도로 이름만 나와 있음)와 지금까지 경험으로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전화를 하니 근처 쇼핑몰까지 마중을 나온다.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다 되었으나 (오는 사이에 1시간이 땡겨졌기 때문이다.) 사모님께서 우리 가족을 위해 음식을 차려주고 (치과의사 선생님이 아닌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또한…전주예수병원의 신경외과과장으로 재직하다 이곳에 1년간 머물고 있는 E모 선생님가족도 왔다. 우리가 왔다고 떡도 해오고…. (이 분들은 한때 한국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바로 우리 위층에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남이었으나 시간이 늦어서 우린 휴식을 취했다.  캐나다에 비하여 아파트들이 넓었다.

  이렇게 우리의 미국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클리브랜드 – 나이아가라폭포 – 키치너 

2002년 4월 16일 여행 15일째 [클리브랜드에서 나아아가라폭포를 지나 키치너까지]

   

캐나다로 다시 들어가는 날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었던 탓에 아침을 느긋히 먹고 집을 나서 90번 East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 운전자들은 철저하게 속도를 엄수하였다. 95번 하행선에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무튼 고속도로도 편도 2차선이고 도로 상태도 그리 좋지 않은 점도 있지만 대부분의 차량이 속도를 엄수하고 있었다. 중간에 경찰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차의 뒤에서 구정속도로 운전하였다. Ohio주가 끝날 때까지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Ohio를 넘어 New York주로 들어서면서 고속도로의 노면 상태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부자동네는 고속도로로 다른가 보다. 고속도로가 좋은가 싶더니…금새 통행료를 내란다…. 어쩐지…. 통행료를 현금으로 내고 나니.. 내 호주머니엔 10달러도 채 남지 않았다.

  

아 자동차여!

  처음 여행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에어컨 밸트소리(처음엔 에어컨의 컴프레셔 소린가 했는데…아니었다. 다행이도)는 올라오는 길에 점점 심해졌다. 실은 이때까지도 이게 밸트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부분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다만 속도가 시속 100km를넘어서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 소음이 없어짐과 동시에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 이때 벨트에 문제가 있음을 짐작했다. 이때부터 자동차문을 열고 가야만 했다. 날씨가 생각보다 무더웠다. 우리가 미국의 남쪽에 있는 사이에 이 북쪽에도 여름이 와 버렸나 싶었다.

   

다시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들어가는 Buffalo는 지도에서 볼 때와는 달리 상당히 큰 도시였다. 발전된 도시는 아니지만. 지도에 있는 캐나다로 들어가는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캐나다의 입구표시가 없어서 조금은 답답해지만 말이다.

  캐나다로 들어가는 것은 입구에서 비자검사를 했다. “뭐 사기지고 가는 물건 없냐?”는 질문이외에는 없었다.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고…

 

무더운 온타리오!

  유리창을 열고 운전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벌써 왼쪽팔은 벌겋게 그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틀동안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린 나이아가라폭포의 북쪽으로 나있는 나이아가라강(호수로 연결되어 있는)을 따라 있는 공원의 도로를 타고 On the Lake로 가던 중 중간에 공원벤치에서 식사를 했다. 벌써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공원을 따라 Winary가 즐비하게 있는데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들려서 와인 만드는 과정과 또 현지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맛보며 또 구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린 라면을 끊여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후에 우린 On the Lake로 갔다. 그곳은 나이아가라강의 끝인셈이다. 거기에서 배를 타면 (30분 간격으로 출발) 나이아가라폭포의 아래쪽까지 가는 투어를 할 수 있다. 폴포가까이 가서 비옷을 뒤집어 쓰고 물도 맡고 또 중간에 물이 빙빙도는 Whorl Pool를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거기를 방문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우리가족중에서는 배를 타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갓길에서 이런 것을 다 볼 수 있다.

 

이래서 가보라고 했구나!

  우린 나이아가라폭포로 갔다. 한참을 가야했다. 가는 도중에 폭포가까이와 주변에 많은 호텔들이 즐비하고 폭포의 끝쪽에 주차장이 있다. 무조건 10불이다. 주차를 시킨 후 폭포로 갔다. 폭포의 물이 위쪽이 보이고 미국땅(여긴 섬이다)이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물소리가 커지고 멀리 무지개도 보인다.

  폭포앞에 가자 우린 탄성을 질렀다. “이래서 가보라고 했구나!” 지금까지 사진이나 TV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오직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대자연의 모습이었다. 우린 부지런히 사진도 찍고 물안개(폭포에 의해 만들어지는)에 더위도 식혔다. 아내도 말로만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린 근처 가게에 가서 몇가지 선물을 샀다. 올랜도에서 몇가지 선물을 샀지만 중간에 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추가로 구입했다.

  

키치너까지

나이아가라에서 우린 키치너(토론토의 서남쪽에 위치, Waterloo와 인접해 있다)를 향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전에 우린 “폭포횟집”이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에서 키치너까지의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키치너근처에서는 도로의 사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초행길이라서 한동안 헤매이기도 했으나 미국에 비하여 캐나다에 들어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차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키치너에 이민오신지 몇 년이 되는 정집사님은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음향관련회사의 중역이었다가 이곳으로 이민을 오신 분이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비즈니스를 시작하며 캐나다안에 깊숙히 와 계셨다.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교회집사로서 많은 사역을 감당했던 분인데 이곳에서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고 했다. (한달뒤에 이 사역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 내용은 공개할 수 없음을 밝힌다.)

 

키치너에서 퀘벡까지 

2002년 4월 17일 여행 16일째 [집으로 가자! 키치너에서 퀘벡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냐

  오늘은 키치너를 출발해서 토론토 옆을 지나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까지 가는 일정이다. ‘가다가 힘들면 퀘벡까지 못가더라도 중간에 자자!’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어제 고장난 에어컨 때문에 계속 차문을 열고 운전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몬트리올은 일단 복잡하고 공기가 좋지 못했다. 좀 지저분하다라는 표현이 어떨지. 표지판은 불어로 완전히 바뀌었고(다행이 거리 표기를 km로 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사람들도 영어로 뭘 물어보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영어를 적대시하는 것인지 영어를 못하는 것이..부끄러운 것인지 조금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프랑스 사람들은 불어에 대한 자긍심이 강해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 대해보니깐 생각이 좀 바뀌었다.

  몬트리올에서 대형마트에 잠시 들려서 쌀을 사려고 했지만 Kraft에서 나온 박스에 넣어져 있는 쌀을 구입해서 길을 재촉했다. 올랜도에 쌀을 놔두고 왔기 때문이다.올랜도에서도 길을 조금 헤매이긴 했지만 그리 문제되지는 않았다.

  몬트리올에서 퀘벡까지도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퀘벡은 정말 넓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갖고 있었다. 고속도로로 펼쳐있는 농장은 퀘벡이 캐나다주중에서도 부자주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해가 질려고 하는데 아직 퀘벡까지는 멀었다. 그러나 중간에 잘 만한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동네의 허름한 모텔이 눈에 들어오는데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퀘벡을 300km정도 놔두고 너무 피곤했다. 그러나 날씨가 시원해져 창문을 닫고 운전할 수 있었다. 온타리오와는 날씨가 달랐다. 퀘벡에 거의 가까이 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고 날씨도 쌀쌀했다. 퀘벡입구에서 가까운 Days Inn에 머물렀다. 여기에서 짐을 내릴땐 우린 오리털파카를 다시 입어야 했다. 우린 다시 겨울을 맞이한 것이다. 이곳은 겨울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스티키 쌀…

  운전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웃옷을 벗어제끼고 (밖은 아직도 겨울비가 내리는데…) 먼저 끊인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밥을 하던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문제가 생겼어요?”하는 것이다. 몬트리올에서 샀던 쌀은 가공된 쌀이었다. 이미 쪄진 아주 단단하게 건조된 쌀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것을 기름에 볶아서 먹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밥을 하려고 물에 넣으니 쌀이 물위에 둥둥떠다닌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밥솥의 스위치를 넣고 중간에 계속 열어보았다. 대충..쌀이 불었다. “됐다”싶어서 우린 그냥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 뻥튀기나 해 먹을 쌀로 물을 넣고 밥을 했으니.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김치와 단무지가 있었다.

  피곤이 엄습했다. 오늘도 1000km를 운전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운전한 탓인지..얼굴과 왼쪽 팔이 새까맣게 타 버렸다. 이크…..

 

퀘벡에서 핼리팩스 

2002년 4월 18일 여행 17일째 [집으로 가자! 퀘벡에서 핼리팩스까지]

 

다시 만난 겨울

  퀘벡에서 뉴브른스윜으로 접아들면서 우린 산속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 강원도 정선 정도를 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좁은 길(물론 고속도로로 분류되어 있다)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산…

  산의 응달진 곳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다. 길 옆으로도 눈이 쌓여있는 곳이 많았다. 아! 겨울…. 이곳은 아직도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산은 한국에서 보던 산과 흡사하여 정감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있나? 난 얼굴과 왼팔이 새까맣게 탔는데…여긴 아직도 눈이란 말인가? 넓은 땅…넓은 세계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 핼리팩스에도 아직 봄이 오지 않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브른스윅의 북쪽의 주유소나 휴게소는 불어권의 인상을 받는다. 영어를 사용하지만 발음이 불어같고…내 말도 잘 못알아 듣는다. 손님과 직원이 서로 말이 안통하니…. 어찌하랴?

  집에까지 가려면 오늘도 1,000가량을 달려야 하는데… 중간에 쉴까말까?하는 갈등이 계속되었다. 집에 가서 쉬자 하는 마음과 Monton까지 새롭게 난 2번 고속도로가 이전의 지도에서와는 다르게 1시간 이상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집이라고

  102번 2A를 빠져나와 곧바로 슈퍼스토어에 갔다. 쌀을 사기 위함이었다. 오늘도 1000km를 달려온 탓에 많이 피곤했으나 그 피로도 집에 들어서면서 많이 사라졌다. 카트를 이용해 짐을 다 내리고 우린 집으로 갔다. 집에 가자마자 컴퓨터부터 켜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 쌀을 씻어서 밥부터 하는 아내… 전화를 들고 올랜도의 이근재목사님께 전화를 하는 나… 그리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우린 긴 여행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흰 쌀밥과 김치로 저녁을 먹었다. 2주전에 출발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핼리팩스의 모습이다. 잔디밭에 잔디만 조금 더 파래졌다는 느낌이 들 뿐…. 아직도 춥다…    우린 겨울과 봄, 여름 그리고 겨울을 2주간을 거쳐 경험하고 온 셈이다.

  약 9,000km의 거리를 운전하며 기억하든 하지 못하든간에 미국 19개주 캐나다 4개주를 거쳐왔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는 다시금 올랜도를 가고 싶다. 아직 보지 못한 홀리랜드와 씨월드, 월트디즈니의 MGM스튜디오와 애니멀킹덤 그리고 NASA를 가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많은 은혜를 베푼 이근재 목사님과 그 가족을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즈니월드 여행 팁 1

 

디즈니월드를 잘 구경하려면

  여행후기를 쓰다보니 너무 말이 길어지고 지루해졌다. 성질 급한 독자들을 위해서 요약문을 적어 놓는다. 그러나 올랜도를 여행하시려면 제가 너저분하게 써놓을 글들을 몽땅 읽어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올랜도 디즈니월드를 정복하는 길

 

지피지기백전백승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사전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가야 한다. 특히 디즈니월드의 경우는 사전에 많은 정보를 경험자를 통해 들어보는 것이 좋다. 막연하게 간다면 그 만큼 많은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다 볼 수는 없다. (아주 한가한 2월에 가면 대부분 타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진정한 즐김이 될지는 의문이다.)

   

올랜도는 크다

  플로리다, 올랜도 하면, 디즈니월도, 씨월드, 유니버샬스튜디오, 홀리랜드 뿐만 아니라 마이애미나 키웨스트까지 섭렵하려고 하는 마음이 앞설 것이다. 자주 여행못하는데 최소한 이런 것은 봐야지 하는 마음이 누구나 있다. 그러나 4박 5일이든… 7박 8일이든… 정해진 날짜에 우린 플로리다를 아니 올랜도를 다 볼 수 없다. 그래서 우선 순위를 정해서 봐야한다. 이것은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왔다갔다 하지 마라

  한가지의 테마 파크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도를 보고 순서를 정한후에 줄서기와 Fastpass를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왔다갔다 하면 시간과 정력이 낭비가 된다. 오른쪽(반시계방향)으로 돌던지 왼쪽(시계방향)을 돌던지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그 넓은 곳을 왔다갔다하는 것은 그 만큼 많은 것을 놓지게 된다.

  

무거운 가방을 버리라!

  햇빛은 뜨겁고 걷는 것도 힘이 든다. 먹을 것을 가방에 잔뜩 넣어가지고 가는 것도 금물이다. 그냥 기분 좋게 사먹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그안에 음식의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음료수를 얼려서 가져가도 시원하게 먹을 수는 없다. 무겁기만 하다. 가능한 짐을 줄리고 만일에 가져간다면 사물함에 보관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린아이나 노약자와 동행할 땐 마음을 비워야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경우엔 유모차를 (갖고 가던지 거기서 빌리던지)를 밀면서 다니는 일은 중노동중의 하나이다. 또 나이드신 분들은 한두 개만 탈려고 해도 지치고 힘들다. 줄서기가 쉽지는 않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중노동이다. 부모나 어른신네를 모시고 간 젊은 분들은 어르신네의 속도에 박자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달려다니지 말라!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대개는 달려 다닌다. 젊은이들 일수록 심하다. 그러나 한번 가보라. 얼마나 복잡한지를. 아까운 돈내고 하나라도 더 타고 더 볼려고 하는 것은 백인이나 흑인이나 황인종이나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달려다니면 부딫히고(이거 얼마나 큰 시비거리가 될 수 있는지 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면 다 안다) 넘어지고 이런 곳에선 더 느긋하게 사람도 구경하면서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저 즐기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마치 하나라도 덜 탄다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

  

사진을 많이 찍으라!

  ‘갔다오면 남는게 사진’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으니 열심히 사진찍고 열심히 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과 메모는 재산이다. 재산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쉽게 덤비지 마라

  한주차장의 경우도 그렇다. 꼭 메모를 해두어야 한다. 해질무렵에 나오면서 차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이 한둘인가?

 

디즈니월드 여행 팁 2 

 

자동차로 미국을 여행하려면

  이번 여행을 정리하면서 참으로 먼 거리를 자동차로 달렸다. 이번 여행을 통해 자동차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프로그램밍

  여행을 마구잡이식으로 하며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절대 우왕좌왕해서는 안된다. 철저한 사전 계획표가 나와야 한다. 무슨 여행을 하면서 이리 복잡하게 하는가?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실제 긴여행을 할려고 한다면 철저한 준비가 즐거운 여행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분명한 목적지와 경로, 그리고 일정이 나와야 한다. 가장의 사소한 당황하는 모습이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가족에게는 상당히 큰 위협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달력모양으로 되어 있는 일정표를 만들어 거기에 경로와 숙박하는 곳의 연락처 등과 또 비상연락망을 적을 수 있는 한 많이 적어 놓았다. 그리고 이것을 복사해서 연구실에, 이곳 한인교회 목사님께, 그리고 서류화일에 넣고 하다는 아내에게 주었다. 지금도 그 일정표를 들여다 보면 모든 여행의 시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의 역사인 셈이다.

  

지피지기백전백승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사전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가야 한다. 지도와 여행정보는 필수이다. 지도 없이 미국여행을 할 수가 없다. 절대로. 지도는 가장 좋은 것으로 사는 게 좋다. 고속도로 주변의 Information Center에서 무료로 주는 (이것도 달라고 해야 준다) 지도보다 주유소같은 곳에서 사는게 좋다. 특별히 MapArt라는 회사의 것이 좋다. 얼른 보면 노랑색을 뛰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지도이다. 아마도 미국과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지도일 것이다.

  지도는 사전에 숙지하라. 동행한 가족에게도 알려주라. 사전에 모든 길을 머릿속에 넣고 마치 아는 길을 찾아가는 것 처럼 간다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함께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는 것도 큰 교육중에 하나이다. 물론 옆에 앉은 아내의 몫이기도 하다.

 

휴식은 최고의 힘

  갈길이 멀다보니…늘 무리해서 운전을 하게 된다. 또… 집을 찾거나 호텔을 찾으면서 쏟는 에너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장거리 운전후에 이런 일들이 주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 피로도는 말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늘 해지기 전에 숙박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가서…밥 먹고 가족과 함께 수영도 하고 산책도 하길 바란다. 여행의 기쁨을 만끽할 뿐더러 다음의 여행에 있어서 힘을 비축할 수 있다. 또한 숙박시설에 너무 늦게 들어간다면 그만큼 본전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Indoor Pool이 있는 모텔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다움 숙소에서 또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어린이들의 여행피로를 줄어들 게 한다.

 

1/2 2 hours Rule

  기름 계기판에 1/2이 되거나 2시간 정도의 운전후에는 반드시 쉬길 바란다. 캐나다나 한국(한국 고속도로가 캐나다보다 백배 낫다)과 달리 좋은 고속를 가진 미국에서의 운전은 자칫 오버하기 쉽게 되어 있다. 조금만..조금만 하면서 무리수를 두게 된다. 멀리보고 뛸려면 그만큼 많이 웅크려야 한다. 서두르지 마라. 갈길이 멀기 때문이다. 쉬는 곳에서는 온 가족이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의무적으로.

 

자동차도 가족이다?

  자동차를 아끼는 것은 여행에 있어서 자신의 발을 아끼는 것과 같다. 특히 년수가 좀 된 차들은…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우선 여행전에 점검은 당연하고 중간에 계속 엔진오일과 미션오일의 점검을 해야 한다. 특히 엔진오일은 고속주행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엔진오일 교환시 같은 종류의 엔진오일을 하나 더 사두었다가 계속 보충하며 가야 한다. 어차피 닳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많이 넣는 일을 없어야 한다. 또한 브레이크등, 깜박이등, 헤드라이트 등을 비롯한 전등 및 전기 장치도 꼭 자주 점검해야 한다.

 

Sun Block

겨울이 아닌 이상 미대륙의 여행은 많은 햇볕을 받게 된다. 특히 운전자의 경우 왼족팔과 손 그리고 얼굴을 많이 그을리게 된다. 창문이라고 열고 운전하노라면 더욱 그러하다. 선블록과 긴팔을 꼭 준비하길 바란다.

 

Rest Area를 이용하라

  군데군데… 고속도로 주변엔 휴게소가 있다. 일종의 피크닉 park과 같은 개념이다. 거기서 밥을 꺼내놓고 먹어도..김치를 먹어도… 라면을 먹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여기서 밥 뿐이 아니다. 지도와 호텔할인쿠폰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휴게소의 위치는 지도에 나와 있다. 이런 rest area와 information center가 있는 곳이라면 더욱 유용하다. 다만, information center는 5시나 6시전에 문을 닫는 곳이 많다.

 

경험자의 말에 귀기울이라

  경험자의 경험이 다는 아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바로 내가 다시 반복할 수 있는 시행착오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겸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경험자의 말과 현지에서의 자기의 판단이 함께 한다면 더욱 즐거운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자동차에 돈을 아끼지 마라

  자동차여행에서 자동차는 여행의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 그래서 점검은 필수이고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관계로 필요한 여러 편이장치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다. CD플레이는 물론이거니와 필요하다면 110V전원 컨버터 등도 구입하라. 차안에서 밥도 할 수 있고 다른 전기제품들도 사용할 수 있다.

 

놀이를 개발하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게임은 필수이다. 난 미국 50개주의 자동차 번호판 찾기를 했다. 캐나다에 올 때까지 아이들은 전혀 심심해 하지 않는다.

  

대화하라

  여행은 휴식이고 재충전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계속 대화를 하라.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시도하라. 졸리지도 않고 심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괜히 이전의 아픈 기억들을 되살려셔 여행분위기를 망치면 안된다. 여행을 할 만큼의 마음이라면 더욱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하라. 여행은 고행의 길이 아니다. 즐거움이자 재충전의 시간들임을 잊지 말자. 특히 남편(아빠)는 가족과 대화를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가장된 도리이다. 진실된 대화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렌트한 차가 아니라면

  AAA나 CAA에 가입하라. 자동차견인이 필요한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늘 대비책은 마련해 놓아야 한다. 또한 이곳에 주는 지도는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다. (이 지도도 2주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또한 호텔에서의 할인도 된다. 거의 대부분의 호텔에서 말이다.

 

 

여행을 마치며 

여행후기를 쓰기 시작하며

  여행이 끝난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그동안 여행후기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만 마음에 있었고 실제로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어제는 여행후기의 웹페이지에 쓸..버튼을 만들다 아내가 불만을 토로한다. 맨날 컴퓨터앞에 앉아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 버튼하나 만드는데 자그마치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찍어온 사진중에서 먼저 적당한 것을 고르고 또 이것을 편집해서 또..작은 버튼용 그래픽화일에 집어넣는 일이 일일이 작업을 해야하니 말이다. 물론 대충만들면 5분이면 만들겠지만 그래도 세심하게 해야하니..여간 시간이 필요하다.

  내용도 빨리 적어야 그만큼 생생한 기록을 할 수 있는데 자꾸만 게으름을 피우는 내모습이다. 그래도 많은 분들과 약속을 했으니 여행후기를 적어야 한다. 다만,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여행후기를 적어가고 (물론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추가할 생각이다.) 또 많은 경험과 느낌을 기억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면 안되기에…하나씩 하나씩… 한걸음씩..한걸음씩… 그렇게 기록해 가고 싶다.

2002년 5월 23일 화창한 핼리팩스의 봄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은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여행의 총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는 올랜도 휄로쉽교회의 OOO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늦은 시간 우리 가족을 반가히 맞아주고 아픈 몸에도 대접을 아끼지 않는 뉴욕의 장호준 형제와 안민선 자매님께….. 또한 처음 만나는 방문객을 맞아주시고 정말 많은 사랑을 주신 볼티모어 이근영선생님과 퍼주는(?) 것이 버릇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모님, 네쉬빌에 정영철 교수님과 사모님, 그리고 네쉬빌에 거주하고 있는 동창생인 범은경, OOO선생님, 루이빌의 사랑이네 가족들과 클리브랜드의 김관식 교수님과 가족들, 그리고 키치너에 권종섭 집사님과 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기간에 제가 깜빡 실수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의 상처를 준 네쉬빌에 신배호 형제님과 사모님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이번 여행을 적극 환영해 주시고 추천서를 써 준 댈하우지대학의 Brian K. Hall 교수님과 제가 자리를 비운사이 개구리(?)를 보살펴 준 Wendy에게 또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2002년 6월 3일 저녁에

 

 여행후기를 읽으신 분들께

  여행후기라기 보다는 저의 여행기록에 가까운 너저분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가족은 결혼후 2번째 여행입니다. 한번은 용인의 “민속촌”을 다녀온 것이 지금까지의 유일한 여행이고 이번이 두 번째 여행입니다.

  그간 가족들에게 베풀지 못한 사랑이 어찌 한번의 여행으로 갚아지겠습니까마는 저도 나름대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중입니다. 한국의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가정을 소홀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사진은 Kodak DC210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한때는 좋은 카메라였으나 지금은 어느덧 구형이 되어서 사진의 퀄리티가 최상은 아니지만… 보시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카메라는 서울에 사는 제 친형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또한 전체적인 웹페이지는 1024 X 768 모드에서 잘 보이도록 하였으며 인터넷 익스플로어 5.0 이상이면 무난하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은 포토샵 6.0으로 에디팅했으며 문서는 나모 5.0버젼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부족한 글을 읽어주심을 다시금 감사드리며 혹시 의문사항이나 제가 도울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라구요. 내용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주저마시고 연락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6월 20일 저녁에 김형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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