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사진에서 얻는 교훈

By | 2011년 5월 21일

오래전 앨범에서 두 장의 사진을 찾아냈다. 캐나다에 머무를 때 일하던 댈하우지 대학의 어느 건물벽을 찍은 사진이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곳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모드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사진이 만들어진다. 내 스스로 세상을 볼 때 이런 경우가 생기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물론 사물을 볼 때야 자신의 기준으로 보던 말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마음속에 일어난다. 특히 사람을 평가할 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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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라는.

아이들을 길러보고, 또 내 자신이 학생들을 교육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삶에서 얻어진 교훈이다. 더구나 의전원이 되면서 입학까지 관여해야 하는 교수입장이 되다 보니 더더욱 이런 부분에 조심성은 커지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젠 점쟁이가 거의 되어가고 있는 부분도 있고, 갈수록 고착화해가는 “선입견”도 사람을 보는 눈의 시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겉모습만 보고 평가를 할 때가 많다. 심지어 입시의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65일 상시면접이란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25분이나 30분 정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과연 옳은가?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3명 또는 5명의 교수가 동시에 보는 시각이기 때문에 믿어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런데 간혹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 아들들을 누군가가 평가할 때 과연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갑자기 쉽지 않은 문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만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그를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말이다. 짐작하건데 답은 “No!”이다. 분명히 학교수업을 제대로 받았을리가 없다. 엄청난 분량을 스스로 공부를 해야했던 둘째가 수업진도에 맞추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평준화되어 있는 고등학교, 그것도 등급별 수업이 아닌 중간에 맞추어 놓고 하는 수업을 통해 절대로 전국에 있는 상위권 학생들과의 경쟁이 되었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냥 착한 학생으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히(짐작이긴 하지만) 나쁜 학생으로 기억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답해진다. 지금도. 솔직히 당시에 그게 걱정꺼리였다. 학생이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나 선생님들이나 다 같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수업을 소홀히 한다면 (이 부분에서 소홀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헷갈리지만) 누가 좋아 할 것인가? 그런데 정작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학교에서 수준별 수업을 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의 입장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둘째아들은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그게 억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행히도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콩쥐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델렐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온 결과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잡음들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한 평가 또한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한다면… 교육자로서 제 자신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너는 잘 하고 있냐?”

교수생활을 처음하던 16년전에는 내 스스로도 이런 부분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 그 만큼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의과대학이나 의전원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느정도 걸러서 여기까지 온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습에 크게 문제는 없지만 때론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경우에 그 접근은 매우 조심스럽다. 이런 경우는 꼭 불러서 확인한다. 그전에는 평가를 유보한다.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기 전에는 말이다. 물론 단순한 정보만으로도 평가를 완성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는 계속되고, 그 평가자체가 하나의 학습의 도우미가 되기도 한다.

아침에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게 된 배경이 있다. 여기에 구구절절 적을 수 없는 아픔이다.

그러기에 내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한다.

“너의 말로 인해 다른 사람, 특히 학생의 마음이 아프게 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하고 말이다.

특히 누군가를 평가하는 내용의 말을 할 했다면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이 아침에 머릿속이 좀 복잡하다. 그냥 적어두는 이야기다. 나중에 이 글을 잊고 살 때가 있겠지만, 나중에 이 글을 읽어 보노라면 왜 적었는지… 당시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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