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4월까지 바울교회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

By | 2019년 4월 30일

페이스북 내에 “바울교회”는 내가 개설했다. 관리자는 나와 나의 고등부 제자였던 젊은 친구가 맡고 있다. SNS시대에 맞도록 페이스북을 하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곳에서 각자의 생각도 나누고, 삶도 나누고자 개설했다. 어느정도 그 목적에 부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거기에 올린 글이 퍼날라지고 있다. 사실 퍼날라도 상관이 없다. 퍼날라서 봐야할 사람이 있다면, 페이스북 안으로 들어와서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면 되는데,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일까?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이다. 비밀글도 없다.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는 글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냥 생각과 삶을 나누는 것 뿐이다.

오늘 생각난 김에 2019년 들어서 내가 포스팅한 것들을 정리해 두려고 한다. 2018년까지 하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에 지난 4개월간 포스팅한 글들을 여기에 올린다(최근 글부터 역순으로 적는다). 바울교회 페이스북에서 내 글을 찾지 말고 내 블로그에서 그냥 한꺼번에 다 긁어가는 편이 훨씬 편하지 않을까 한다.

2019.4.29
하용조 목사님의 1997년 “참된 설교”라는 제목의 설교입니다. 목회자 세미나에서 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링크 글] “참된 설교 by 하용조 목사

2019.4.29.
고 하용조 목사님은 복음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늘 보여오셨기 때문에 복음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삶의 모습이 많은 분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이 그리워지는 그런 월요일 아침입니다. (하용조목사님 사진 첨부)

2019.4.25
“여러분은 왜 페이스북을 하시나요?”

2019.4.25.
이 작은 계란찜기는 참으로 계란이 잘 쩌진다. 물은 오른쪽 옆에 있는 작은 계량컵에 계란의 갯수에 따라 물량이 표시되어 있다. 계란이 많아 질수록 물은 적게 넣는다. 그런데 이걸 반대로 생각하여 물을 더 넣는 분들이 있다. 매뉴얼은 우리의 생각을 앞선다.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매뉴얼 “성경”을 앞서는 것은 없다. 성경이 알려주는대로 살아야 한다. 매뉴얼대로 만들 때 가장 맛있는 찐계란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성경대로 살아내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요? (게란찜기 사진 첨부)

2019.4.22
낯선 이국땅인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하며 죽어갔던 젊은 선교사님들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교회는 정신을 다시금 차려야 합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천국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2019.4.17.
크리스천들은 세상사람들보다 더 윤리적이어야 합니다. 2014년에 썼던 글 하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링크 글] “윤리적인 신앙

2019.4.15.
나누고 싶은 기사입니다. [링크 글]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2019.4.15.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링크 글] “교회는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됐다

2019.4.13. 어느 교회나 재정은 투명해야 합니다. 특히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공개하는 것이 가장 교회다운 모습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교회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사 하나를 링크합니다. [링크 글] “교회 쓰임새 ‘1원’까지 다 공개한다

2019.4.12. 고 옥한흠목사님의 절규를 다시금 듣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한국교회가 바로 우리교회가 아닐까?라는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미 타락의 중심에 서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링크 유튜브 영상] “한국교회의 타락 – 옥한흠 목사

2019.4.12.
결국 신앙의 수준은 “인격”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인격으로 나타나지 않는 신앙이 세상에서 무슨 힘을 발휘할까요? 인격의 변화없는 방언기도, 성경100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2019.4.11.
크리스천인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할 좋은 글이네요.
페이스북에 올라왔길래 한번 올려 봅니다.

2018.4.7.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사용은 결국 “인간”이 합니다. 따라서 헌금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성도된 의무입니다. 좋은 글이 있어서 링크합니다.

[링크 글] “상습적 헌금 남용과 교인 이탈 – 당당뉴스

# 댓글에 링크한 글
1.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기는 교회에 희망없다 – 기독교한국신문
2. “종교개혁 시대 목회 윤리와 신학 – 교회개신협의회

2019.4.6.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가짜가 더 진짜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장 15-20절)

[링크 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가짜 목사 구별하는 법 3가지 – 국민일보

2019.4.5.
교회 밖에서 교회에게 기대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고, 목사가 목사답고, 성도가 성도다운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19.4.4.
공부합시다
4월에도
성경공부가 열립니다.

2019.4.4.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2019.4.4.
교회 안에 더 이상 샤마니즘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2019.3.29.
이 책을 권합니다. 평신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할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저자가 서문에 강조해듯이 한번은 빠르게 읽고, 그 다음에는 다시 천천히 묵상하며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제 아내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날을 달력에 기록해 두고 싶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작금의 한국교회 문제의 중심에는 “복음실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다시금 정립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봅니다. (“로마서와 하나님의 나라, 책표지 사진)

2019.3.29.
페이스북 “전주바울교회”는 바울교회의 공식적인 페이스북 페이지가 아닙니다. 페이스북을 통하여 소통하는 바울교회 성도들이 모인 공간입니다. 따라서 모든 포스팅은 개인의 의견이며, 그 의견에 댓글을 통하여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는 곳입니다.

2019.3.27.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2019.3.27.
때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고 자연법칙도 넘어서는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삶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2019.3.25.
성경과 관련이 없는 교회,
성경과 관련이 없는 성도,
성경과 관련이 없는 설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019.3.20.
교인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이겠지만, 헌금을 정말 정직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어서라기 보다는, “정말 힘들게 사는 분들이 어렵게 낸 헌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수백만원 수십만원을 십일조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10만원을 십일조하는 분은 90만원으로 한달을 살아야 하는 분들이다.”라고 말입니다. 어렵게 헌금생활을 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1원짜리 하나라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고 단호히 말씀드립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봉급을 받는 분들은 자신이 받는 봉급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는 그 봉급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는지 돌아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교회재정을 움직이는 분들은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재정을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부요하게 된 한국교회가 정신을 좀 더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밖에서 보는 시각이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럴까요? 비합리와 비상식이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손가락질과 비난을 한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전도의 대상들이 교회에 대한 단순한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말씀하시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대형교회가 아닌 소형교회나 시골의 교회들은 우리가 돌보아야 할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들을 방관하면서 마치 대형교회만 복받은 것처럼, 믿음 커서 대형교회가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 봄날에 가까운 시골교회들을 한번만 둘러본다면 왜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2019.3.19.
우리가 인스턴트 식품을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인스턴트 식품은 열량에 비해 영양은 부족하며, 소금과 설탕, 인공 조미료의 함량이 높아 필요한 영양분의 흡수를 방해하며 비타민과 무기질은 거의 포함되지 않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 나아가 열량이 높고 혈당지수인 GI지수가 높아 금방 소화가 되고 금새 배가 고파져서 비만을 초래할 수 있으며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높은 염분과 식품첨가물들은 주요 장기에 부담을 주며 뼈 속의 인과 칼슘의 균형을 깨서 뼈가 약해진다. 묵상이 없는 말씀은 인스턴트 식품과도 같다. 귀에 속속 들어오는 것 같지만 결국 영혼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2019.3.19.
2017년 7월, 원목사님의 퇴임과, 후임목사가 결정된 시점에서 “바울교회 제2의 도약을 소망하며”라는 글을 블로그에 써놓았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다시금 읽어보았습니다.

세상적 성공과 권력, 탐욕을 버리고, 겸손과 정직, 그리고 단순함으로 “성도의 본질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2년 가까이 세월이 지났습니다. 다시금 바울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는 새벽입니다. [링크 글] “바울교회 제2의 도약을 소망하며

2019.3.18.
교회내 불의를 방관하면서 스스로 용서니 인내니 말하는 것은 비겁이고 죄이다.

2019.3.15.
교회 안에서 교인들은 스스로,
“나는 믿음이 있다”라고 말하는데
세상사람들 보기에는
이상한 종교집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매우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과연 그것은 뭘까요?

작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아닐까요?
우리 스스로 점검하고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갈 수 있으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 비기독교인이셨던 아버지께서
“그 사람 교인이야!”라는 표현을 쓰실 때에는
“그 사람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뜻이었습니다.
요즈음 과연 그런 뜻으로 쓰일까요?
제 스스로도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2019.3.14.
16,17,18권사회. 젊은 권사님들의 특송.

2019.3.13.
2019 바울성경대학 – 3월12일(화)개강 [ 3월 개설과목 ]

  • 참 믿음의 5가지 가치관 – 이택주 목사 목요일 오전/저녁 5주
  • 창세기 자세히 보기 – 최명식 목사 화요일 오전/토요일 오후 12주
  • 성경의 맥 잡기 – 이홍주 목사 화요일 오전 3주
  • 구약 내비게이션 – 박동식 전도사 화요일 오전/목요일 오후 12주

2019.3.13.
전반기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대로 성경을 공부할 시간입니다.

2019.3.5.
어제 오후 늦게 김제평야를 다녀왔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적기로 합니다.
다만, 어제 보았던 시골교회의 모습은 제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아내와 그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북미대륙의 교회들도 함께 떠오릅니다.
바울교회, 아니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좀 더 준비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계속 생각 중입니다.

2019.3.3.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몇년 전에 썼던 글 하나 링크합니다.
바울교회가 종교화될 것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링크 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2019.2.25.
이단에 대하여 교인들에게 알리고 경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더불어 기성교회 안에 이단적 요소는 없는지 살펴야하며, 이단적 요소를 방조하거나 때론 동조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비성경적 요소들도 찾아서 단호히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기 때문입니다.

2019.2.25.
한국교회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이제는 “상식”적이었으면 합니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은혜라는 단어의 가면뒤에 숨어서, 추악한 인간의 욕망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믿음이 없어서 교회를 떠날까요? 천만에요. 교회가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교회를 등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비상식의 중심에는 목사가 있습니다. 거기에 기복적 신앙관을 가진 성도들의 협조(?)가 뒤따르죠. 그런 모습을 본 젊은이들이 교회에 있으려 할까요? 안타까운 일이 한국교회에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요?

2019.2.25. 제가 교회페북에 올리는 글들이 불편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2017년 7월에 썼던 글 하나를 링크합니다. [링크 글] “‘불편함’의 미학 2

2019.2.23.
바울센터 엘리베이터, 아이들이 우르르 올라탄다. 모두 펭귄들이다. ㅋㅋ 여중생들이 입술을 칠하고 얼굴에 뭔가 발랐는데, 한결같이 같은 색, 같은 모양이다. 귀엽고 예쁜 펭귄들이다. 믿음 안에서 귀하게 성장해 가길 기도하며, 축복한다.

2019.2.22.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를 보니, 바울이 결혼을 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네요. 이걸 왜 여태 몰랐을까요?

2019.2.21.
교회를 위해 성도가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해야 합니다. 다시금 교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고 점검해야 할 때는 아닐까요? 본질에서 멀어질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니까요.

2019.2.21.
이 글을 썼는지도 까먹고 있었는데, 1월에 써놓고 비공개로 해두었네요.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링크걸어봅니다. [링크 글] “초대교회

2019.2.17.
십.자.가

2019.2.13.
갈대아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에게는 비전이 있었을까요? 비전이 있었다면 그 비전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비전’이란 무엇일까요?

2019.2.11.
최근, “심방”에 대하여 반기는 성도보다는 거부하는 성도들이 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간단히 답이 나옵니다. 그런 거부감의 중심에는 “봉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성격이 달라서 그냥 심방만 받으면 되는데, 봉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바울교회는 “목양비”라는 봉투를 철저히 없애야 하는 때입니다. 철저히 없애자라는 말은 “안하면 돼요.”라고 말하면 안되고, 공식적으로 “우리교회는 어떤 형태의 목양비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선포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을 기다립니다.

2019.2.11. 작년에 썼던 글 하나 링크합니다. [링크 글] “기독교에는 ‘사제’가 없다.

2019.2.9.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목회자 1위인 이재철 목사님의 퇴임설교입니다. 작년에 이미 본 영상이지만 오늘 아침에 다시금 보고 싶어서 꺼내옵니다. #숫자 1위가 중요한 것은 절대로 아님을 밝힙니다. 표현하기 위한 것이니 양해를 부탁합니다. [링크 글]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목사 은퇴설교│담임목사가 아름답게 은퇴하는 방법

2019.2.8.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링크 글] “분당ㅎ교회 전 교인들, 헌금 강요와 부당노동행위 호소

2019.2.7.
각 교회에서는 강단에 외부 인사나 단체를 초청해서 세우기 전에 심혈을 기울여서 검증을 해야 합니다. 요즈음 하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죠. 결국 손해는 교인들에게 미치니까요.

2019.2.5.
“축복”의 인사를 나누는 설명절 아침에 마태복음 5장 1~12절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2019.1.31.
“교인 한 명, 한 명이 소중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성도가 많아도.”

2019.1.18.
링크했었는지 기억이 없어서 다시 링크합니다. [링크 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서 바라본 한국교회

2019.1.13.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주일 예배에 “품격”이 느껴지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전 1부 예배를 이미 드렸습니다)

2019.1.6.
바울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아침 1부예배 후에 적은 글입니다.) [링크 글] “바울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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