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이미 같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말은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한 말이기도 하다. 물론 수많은 기독인사들이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금 기독교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 종교화되어버린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쩌다가 기독교는 종교가 되면서 무례하고 천박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아침이다.
주일예배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타이틀이 붙은 수많은 예배의 참석과 헌금, 그리고 봉사(노동착취인지 봉사인지도 모를)를 통해 자신의 신앙심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기독교를 종교화하게 만들고, 그들 스스로 종교인이 된다. 그래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오랜시간동안 목사들은 성도들을 그렇게 우매화시켰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기독교를 제대로 모르고, 스스로 종교화되었는지도 모른다(그렇다고 그들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기독교의 본질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할 수 있겠지만,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기독교의 본질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 만남이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이루어지는 삶”이라고 말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 분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짧은 인류의 역사, 그리고 우주의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을 바로 아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를 알게 되면 그가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로를 알게 되고, 그를 믿게 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다. 그와 동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와 동행하는 삶은 그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그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행이 아니다. 그 분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이다.
기독교가 천반해졌다는 말에는 바로 그런 것이 들어 있다. 기독교에서 흔히 잘 쓰는 말 중에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4영리와 같은 작은 책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가르친 것이 겨우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십일조를 비롯한 수많은 명목의 헌금, 그리고 열심히 교회 안에 단체들에서 활동하고, 또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거기에 담임목사를 섬기라는 것까지 그렇게 종교생활을 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니 기독교의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종교생활만 남은 것이다.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증거로 헌금과 헌신을 강요한다(한국교회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것이 믿음의 증거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정작 가르쳐야 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에 대하여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을 향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가르치지 않고, 목사한테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잘 하는 것이라는 거짓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건물 안에 가두었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당 건물은 계속 커지고 화려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담하며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지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의 종교생활을 잘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큰 예배당과 많은 성도로 구성된 대형교회에서 시골의 작은 교회, 도시의 빈민교회들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그들은 크고 화려한 예배당 안에서 ‘사랑’을 선포한다. 일반 사회봉사단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간단하다. “사랑”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이다. 무엇이 사랑인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인간이 무지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이라는 죄성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깨달았다고 해도 스스로 외면하는 것이다. 그것이 죄이다. 그 탐욕에서 한발짝 물러서는 것이 회개이고 돌이킴이다. 그것이 구원의 증거를 보여주는 첫번째 발걸음이다.
한국교회의 무례함과 천박함은 바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교회가 대형화되고 부유해지면서 스스로 교만에 빠져 작고 가난한 교회에 대하여 무례하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그들에게 적선하는 시늉을 하면서 스스로 복받은 자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에게만 복과 구원이 있는 양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런 종교생활을 하면서 말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추해지면 안된다. 그리고 종교생활을 탈피하고 기독교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목사들이 변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종교는 곧 자신들의 밥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도들이 변해야 한다. 더 이상 거짓에 속지 않고 기독교 본질을 되찾도록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 자신이 이웃들과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함으로 물질적 복을 받으려는 샤마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 하나님의 뜻을 늘 구하고,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늘 준비를 해야 한다.
- 교회 안에서도 이성적이고 지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 지구상의 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이 아침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라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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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코로나 확산의 원인을 제공한 교회와 목사, 신자들 태도를 보면서 경악하고 절망했습니다.
아무리 자신들과 정치적 가치관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런 태도는 누가 되었든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요? 세상이 힘들 때 종교가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틈을 이용해 개인이나 교회 이익을 챙기려는 태도는 결국 공멸입니다. 중세에 흑사병이 도졌을 때도 부패한 교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결국 종교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한민국 대형 교회는 기업입니다. 드러난 치부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종교도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단호하게 응징의 벌을 내려주면 좋겠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 정도의 인격과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라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보여집니다.
비지니스로 연결되어 있죠.
신앙공동체는 허울 뿐이고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커넥션. ㅠㅠ
스스로 자멸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