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옛날에도 그랬을 것이고,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입시지옥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혼연령이 늦어지면서 자녀를 적게 낳을 수 밖에 없는 물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녀교육비 등의 문제로 자녀를 적게 가지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크게 걱정스러운 부분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모습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던 시간들이었던 같다. 특히 아이들의 사춘기에 대하여 나름대로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두 아들 모두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성장하였다. 나름대로 사춘기의 발생기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고 감사할 일이다. 이런 결과가 있기까지 엄마의 몫이 컸다고 판단된다. 곧으면서 섬세한 삶의 기준을 가진 아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저 자신도 가정, 학교, 교회에서의 균형잡힌 삶을 살려고 노력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저나 아내가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수없이 느끼고 감사한 부분들이 바로 아이들이다. 여행 중 피곤이 쌓이면 짜증도 내고, 형제 둘이서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여준 아들들의 모습은 엄마의 인격을 많이 닮은 것 같다. 간혹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지 않을 수 있나요?”라고. 솔직히 답할 수 있는 정답을 제 스스로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사춘기의 발생기전 중 신체적인 변화이외에, 성격이나 인성에서 오는 사춘기의 문제발생 요인을 “가치기준의 발생”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아빠,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던 시절은 그게 아이들의 기준이었다. 아빠, 엄마의 말은 늘 진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눈을 떠보니 꼭 그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 아빠의 헛점이나 거짓된 부분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가 성장하면서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말이나 행동에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여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지 정답은 아니다.
따라서 TV를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들어가 공부해!라고 말하면, “알았어!”하면서 문을 꽝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이들의 맘속에는 ‘지는 TV보면서 나보고 공부만 하래. 으씨~’라고 반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부모는 이런 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할 것이다. ‘어~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하면서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고, 이것이 서로에 대해 좋지 못한 행동들을 유발시킨다고 보여진다. 이 떄 참지 못하는 아빠가 옆에 있었다면 그 자녀는 바로 응징(?)을 당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에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권위를 갖고 있다면 아이는 지속적으로 엄마의 말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에게 그런 권위가 없다. 아이가 볼 때는 “별 것도 아닌 엄마”일 뿐일 것이다. 따라서 어떤 명령어로 말하면 그것을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듯 하다.
아아가 어려서 부터 엄마의 말이나 행동이 늘 일관되고, 상벌의 기준이 정확했다면 아마도 엄마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다. “이건 잘못된 것이고, 이건 잘한 것이다”라는 가치 기준을 엄마로 부터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나 아빠의 기준이 자신들의 감정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한다면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눈치만 늘어갈 것이고, 결국은 부모의 말이나 행동의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사춘기를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제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