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이 저장장치를 강제로 전기를 중단시키면서 발생한 HDD의 물리적 손상, 그리고 잘못된 소프트웨어의 무리한 작동으로 인한 전 데이터의 손실은 수일동안 나를 멘붕상태에 빠뜨렸다. 컴퓨터 바탕이나 다른 외장장치, USB, 등 데이터가 있을 만한 곳이면 다 뒤져서 자료를 찾았지만 많은 자료들이 소실되었다. 2012년까지 DVD로 백업을 받았지만 가장 최근 자료인 2013년과 2014년의 자료들이 대부분 날라갔다.
며칠전 내일부터 있을 다리(하지 下肢 Lower Limb)를 강의하기 위해 강의안을 찾았지만 강의안이 보이지 않았다. 폴더안에 있던 파일은 손상된 파일이었다. 갑자기 금요일에 다시 멘붕상태에 빠지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까지 다뒤졌다. 다행히도 2013년에 강의 도중에 수정했던 자료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다시 수정보완해서 학생들에게 강의안을 파일로 주고, 이제 강의안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내 강의안 작성은 “흐름”이다. 스토리텔링과 같이 한방향을 향해 흘러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작년에 했던 강의안이 보이질 않으면서 나는 다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조금전 대학원 강의를 끝내고 집에 와서 강의용 키노트를 들여다 보다가 그냥 글 하나 남겨 보는 것이다. 물흐로듯 유연한 강의를 위해 다시 고민에 빠져 있다.
해부학이라는 조금은 어렵게 생각할 과목이 좀 더 쉽게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하는 일은 내 몫이다. 일단 대학원 강의에서 너무 힘을 뺐더니 잠부터 쏟아진다. 강의안을 손봐야 하는데… (아까 오후에 잠깐 다듬긴 했지만 내 마음에 차질 않는다) 눈도 침침하고 어깨도 무겁다.
작년에 말썽을 일으켰던 저장장치는 PROMISE사에서 만드는 Pegasus라는 제품이다. 2테라짜리 하드가 4개 들어 있는 8테라짜리 저장장치이다. 지금은 유연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레이드로 연결되어 독립적으로 움직이질 않고 하나의 하드처럼 작동한다. 물론 그 중 하나가 고장나면 새로운 하드를 바꾸어끼우면 알아서 복구된다(작년에 그렇게 하다가 잘못해서 데이터를 날렸다.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아직도 많은 자료들이 거기에 들어 있다. 그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딱 두가지이다. 강의안과 사진이다. 그 중 사진이 더 중요하다. 강의안은 만들면 되지만 사진은 다시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장장치도…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또다른 탐욕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