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앞을 지나다가 문뜩…

By | 2016년 7월 14일

청노루유치원, 내가 사는 아파트의 후문에 있는 유치원이다. 둘째 아들이 1년을 다닌 적이 있다. 우리가 이사를 올 때부터 있었으니 최소 21년이 넘은 유치원이다(실제론 역사가 더 길 것이다). 유치원 이야기를 쓰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조금 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오면서 청노루유치원을 바라보게 되었다. 낮시간이 길어진 탓인지 늦은 시간임에도 석양하늘과 대비된 유치원이 예쁘게 보여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문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불꺼진 유치원이지만, 퇴근시간 무렵에는 부모들의 차량들로 인해 매우 북적대는 곳이다.

간혹 그 시간에 퇴근을 할 때면 아파트 안으로 진입이 힘들어진다. 진입이 가능하더라도 차량들을 이리저리 피해가야 한다. 많은 엄마 아빠들이 유치원 앞에 차량들을 세우기 때문에 좁은 후문쪽이 금새 막히고 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엔 차량을 세우고 부랴부랴 유치원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엄마 아빠들을 보게된다. 약속시간보다 늦었기 때문에 선생님들께 미안하고, 또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게 아이에 대한 배려나 최선은 아닐 수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그 시간에는 유치원 바로 앞 8동 앞뒤로 주차공간이 널려 있다. 15미터 앞에는 아파트 체육관 옆 주차 공간에 수십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유치원 앞 길에 급하게 주차하고 아이에게 뛰어가는 것이 아이에게 부모로서 최선일까?라는 의문이 늘 들곤 했다.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 ‘나라면?’ 아니, ‘나는 어떻게 했었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통로를 막으면서 차를 세워 본 적이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조금은 멀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곳에, 아니 내 차를 안전한 곳에 차량을 세웠었다. 조금은 걸어야 해서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바로 차량을 타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이로울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 있는 곳까지 가면서 얼굴을 쳐다보면서 “오늘 어땠어?”. “오늘 뭐가 재미있었어” 등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차량에 올라타면 운전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빠나 엄마가 늘 질서를 지켜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자라게 될 것이다. 교육이 따로 있을까? 그것이 교육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부모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면 자신의 자녀도 그렇게 밖에 자랄 수 없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게 된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아이들에게 훨씬 더 유익한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를 데리고 나와 바로 차에 태우는 것이 아이에게 유익한 일일까?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너무하네, 한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보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쁘고 힘든 세상이다. 더우기 부모로서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부모로서의 행동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면 좋을 듯 하다. 그것이 자신과 아이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때론 불편함이 유익이 될 때도 있다.

(*이 글은 유치원의 교육이나 운영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내 개인적으론 아파트 입구에 유치원이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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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2017. 7. 18.]

아침에 글을 찾다가 이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을 2년전에 이미 썼다는 것을 발견했다.

“불편함”의 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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