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는 그렇다. 절대로 1학년 1등이 2학년 꼴등을 이길 수 없다. 정확하게 단계별로 형성되어 있는 교육과정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낸다. 아무리 지적 능력이 뛰어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2학년이 지나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1-2학년 때는 주로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면, 3-4학년 때는 임상실습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임상실습을 하는 3학년 중에서 뛰어난 학생은 4학년 보다 더 지적 우위에 있을 수 있다.
내가 조교를 했을 때나, 교수로 있는 초창기에는 간혹 1학년 말에 휴학을 하려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교수님, 지금 이렇게 낮은 성적으로 2학년에 올라가느니, 차라리 휴학을 하고 내년에 상위권으로 2학년에 올라가는 게 낫겠어요”라고 상담을 요청한다. 나는 늘 반복적으로 그렇게 대답을 했다.
“2학년 꼴등이 1학년 1등보다 낫다 ”
그리고 휴학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한 해 휴학을 해서 다시 다니면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도 하거니와,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나는 늘 휴학을 만류했다.
오늘 통화한 제자 겸 후배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때 선생님께서 휴학을 못하게 하셔서 오늘날 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 아시죠?”라고 말을 한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에 떠오른다. 그런 결과로 1학년에서 2학년 진급도 잘 하고, 나머지 학년을 잘 다녔던 제자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요즈음은 1학년 말에 휴학을 하려는 학생은 거의 없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나 보다. 아무튼 오늘 그 제자와 25분간 통화를 했다. “의학과 치유“라는 책을 선물했던 바로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