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말한다. “예전의 노인들은 참 멋이 있었는데….”라고. 그 생각은 내 자신도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베이비부머 이전 시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멋진 모습이었을까? 지금 우리사회의 노인세대를 만들어가는 베이비부머와 바로 그 앞 세대의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마침 오늘 아침에 “노인혐오에 대한 기사가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노인들을 보는 눈은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에서 드러난다. ‘노인충’,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 등의 표현은 예전에도 존재했던 “노인네”라든가, “꼰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표현들이다. 왜 이 사회가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단순히 젊은 세대의 책임이나 사회적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찜짐한 구석이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 이 나라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이렇게…살았었다.”라는 노인들의 말은 이제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삶은 이미 풍요에서 시작했고, 부모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 살아온 세대들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 나름대로도 어려움이 많다(물론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아무튼 오늘 아침에 그들이 보는 노인들의 모습이 어떨지를 한번 생각해 본다.
나도 이제 곧 이런 노인세대에 들어가기 때문에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다볼 필요가 있다.내가 보는 공공장소에서 보는 노인들의 모습 중 부정적인 부분은 “무례함”과 “배려의 당연시”이다. 물론 노인들은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약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가지 모습은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을 뿐, 젊은 세대들에게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인세대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배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배려를 받는 강자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무례함이 나타난다. 거기에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겹쳐지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전혀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노인세대, 특히 전후세대인 베이비부머들과 바로 직전의 세대들이 살아온 인생을 본다면 그들은 이 사회에서 존경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전쟁폐허의 복구와 산업화의 주역으로 이 나라를 이 만큼 발전시킨 주역들인데, 그들이 이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처절한 인생의 시간 속에서 놓치고 살았던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세대들이 놓치고살았던 것은 “공의“와 “정직“, “배려“와 “나눔“, 그리고 “겸손“과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치열한 삶의 시간들 속에서 그것들을 얻지 못한 세대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그것을 가졌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천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멋진 노인들이 넘쳤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멋진 노인이 되어가는 것이 나의 남은 꿈이기도 하다. 이 땅의 젊은 세대들도 자신도 늙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지금 보이는 노인세대의 부정적인 모습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DNA를 갖고 있고, 같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매사 깔끔한 어른은 멋집니다.
겸손하고, 군더더기 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저도 그런 멋진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겸손하고 온유하고 배려깊은 그런 삶이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