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불편할 때도

By | 2020년 12월 26일

아마도 현시점에서 온라인 소통에서 페이스북은 소통의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의 소통이 때로는 불편할 때도 있다. 원래 소통은 항상 편안한 것은 아니다. 소통은 서로의 다른 생각들을 내놓고 나누고 그것을 조절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도 그렇다.

그런데…

그러한 특성을 잘 아는 나로서도 때로는 불편해질 때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힘든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하다. (아닌 척하면서 사는 것는 내 스스로 거짓이다.)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을 접속하면서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여러 측면에서 양가감정이 있겠지만, 오늘 아침에 생각한 양가감정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상태라기 보다는 현상황을 보는 나의 혼란스러운 생각들이다.

코로나는 분명히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당분간 삶의 모습은 예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호모 마스쿠스라는 새로운 인종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시점에서의 우리 각자의 삶의 모습이다.

백신구입이 늦어지면서 수많은 화살이 정부를 향하고 있다. 정부가 엄청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을 하다보면 실정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요즈음 보여주는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대응방식의 정책은 분노보다는 허탈감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부의 무능함이 아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정부를 비난해서 그들이 바뀐다면 그렇게들 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페친들이 올리는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에서 정부를 무조건 감싸는 글과 정부의 무능함을 대책없이 그저 비꼬는 모습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잘못하고 있는 것은 잘못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이런 의사의 표현은 선거이다. 이전 정권이 싫은 탓에 한쪽의 손을 너무 많이 들어준 결과로 거대여당이 만들어짐으로서 민주사회의 균형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수가 결정한 것에 대하여 받아들이되, 문제가 있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의사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가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 또한, 민주사회에서 받아들여야 할 각자의 몫이다.

자신의 의사를 페이스북에 표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표현하자는 것이다. 독재사회에서 살아왔고,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왜 세상이 이 지경인가?라는 탄식을 하기에는 국가를 이루는 우리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끝이 없다.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요즈음 페이스북은 내게는 불편한 소통의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최근의 모습은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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