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예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By | 2021년 1월 10일

우리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인들은 종교시설에 출입할 수 있다. 교회의 경우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것을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예배가 금지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일환이다. 오늘 신문기사의 댓글을 보는데 이런 글이 있다.

“예배당에서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 보다 지하철이 더 위험하다.”

글쓴이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사실 식당에 가보라. 더 위험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끊임없이 찬송가를 부른다. 과도한 호흡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하철에서 침묵하면서 목적지를 가는 경우와 다르다. 교회에서는 사람들과의 간격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다. 그리고 최근 예배당에서의 코로나 확산을 이미 경험을 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굳이 이 말씀을 가져올 필요가 있을까? 우선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자신이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더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 상항에서 굳이 대면예배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엔 헌금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헌금은 하나님께 직접 드려야 한다.”라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소부재의 하나님이 예배당(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왜곡하면서) 안에만 계실 것이라는 착각과 무지함 때문이다. 그러면서 왜 각 교회에서는 온라인으로 헌금을 받을까? 그러니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목사들이라도 제대로 성도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더 앞장서서 대면예배를 강조하고 있으니 과연 그들이 목회자가 맞나 싶다. 그들이 그동안 성경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대리인인냥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동안 종교장사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런가? 그 와중에도 바르게 성도들을 이끌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종교놀이에 빠진 그들…

너무 오랫동안 학습된 탓일까?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들의 신앙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들은 세상과 교회를 이분화한다. 교회는 성스럽고, 세상은 악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이분법적 사고는 오늘날 교회가 잠시 흥했다가 망해가는 길을 걷게 하고 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더이상 교회를 거룩한 곳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이상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그냥 또라이집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예배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져본다면, 대면예배든지, 비대면예배든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형화된 교회의 예배당에서 무엇을 보는가? 강대상위에 모니터 화면을 본다.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헌금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교회들을 많이 본다. 진짜 헌금이 줄어들어서 교회 운영자체가 힘든 소형교회들은 오히려 조용히 있다. 그런데 돈이 넘쳐나는 대형교회가 오히려 죽는 소리를 한다. 대형교회 교인들은 교회재정장부를 한번 들여다 보라. 기가 막힐 것이다. 진짜 재정을 걱정해야 할 교회는 작고 힘없는 교회들이다(작은 교회라고 꼭 건강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제발 좀 비대면예배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무엇이 믿음인지에 대하여 제발 좀 생각 좀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교회가 천국을 가는 통로라면, 그런 천국은 안가고 싶다. 제발 좀 다시금 신앙의 본질로 회복되길 소망해 본다.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지도 못하면서 더 이상 천국타령 좀 안했으면 좋겠다.

주일 아침에 예배를 준비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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