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이웃사랑”(4)-목사편

By | 2022년 1월 8일

크리스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목사’일수도 있다.

만일에 당신이 목사라면,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목사들은 이웃사랑 실천을 하겠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목사들은 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내 이웃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이웃사랑은 시작된다라고 보여진다.
  • 목사에게 있어서 가까운 이웃은 성도이다.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느냐?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로, 성도들에게 거짓을 말하면 안된다. 교회 내 직분은 차별화와 계급화를 만들어냈고, 급기야는 ‘권력화’를 생산했다. 즉, 목사가 마치 하나님이 파견한 하나님의 대언자처럼 행세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럴싸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둘째로, 교회의 양적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 헌금을 강요하면 안된다. 부자인 성도들도 있지만, 가난한 성도들도 많다. 소위 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거짓된 설교를 하면 안된다. 교회공동체를 운영할 운영비를 십시일반 나누어서 내는 것이 헌금이지, 교회의 통장에 돈이 늘어가는 것이 헌금이 아니다. 결국 헌금이 늘어서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목사들과 교회직원들의 봉급을 늘리고, 좋은 사택에 좋은 차를 타는 것 아닌가?
  • 세째로, ‘영적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사용하면서 마치 일반 성도들을 아래급으로 보는(위에서 말한 서열화) 목회를 통해 수많은 성도들을 호도하고 있다. 얄팍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그럴싸한 말들을 만들어내는 것으 일종의 사기이다. 예전에는 교회의 수준이 일반사회 수준보다 높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교회 밖의 지적수준이 교회보다 더 높아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지적수준이 높아진 젊은이들을 지금의 시스템으로 대한다면 당연히 그들을 잃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웃이 아닌가?
  • 네째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이벤트성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성탄절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행사를 많이들 한다. 그 사진은 1년 내내 홍보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그들이 가난으로 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교회의 이웃사랑이 아닐까?
  • 다섯째로, 대형교회들은 작고 가난한 교회가 이웃이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교회들이 많다. 도시의 빈민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몰락해 가고 있는 시골의 교회들을 보살필 의무가 도시의 대형교회에 있다. 대형교회의 목사들의 착각은 본인이 잘나서 큰 교회에서 목회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골교회에서 헌신하는 그들을 보지 못하면서 이웃사랑을 논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웃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계명”이다. 이웃사랑은 기독교의 본질이고, 능력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 목사라면 무조건 가짜이거나 사기꾼이다. 이런 우려와는 달리, 이 땅에서는 선하게 목회하는 목사들이 훨씬 더 많다. 주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목사들의 타락을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목회현장에서 애쓰는 수많은 목사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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