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내 직분의 위험성

By | 2022년 1월 13일

교회 내에는 여러 직분이 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전도사, 등 교파에 따라 명칭이 다르지만 여러 직분들이 존재한다. 직분이 생긴 이유는 교회 내에서의 역할을 위해서이다. 사제제도가 있는 가톨릭과 다른 모든 직분은 평신도들이다. 사제와 평신도의 구별이 있는 가톨릭과 분명히 다른 점이다.

목사는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 교단에서 안수를 준다. 그리고 어느 교회에서 목회자로서 청빙을 해서 그 교회에서 목사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물론 교회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회안에는 장로나 권사, 집사 등의 직분자들이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고 있다. 이런 여러 직분들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끌고 나간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직분이 계급화되고 있다. 문제는 그 계급화는 서열화를 가져오고, 서열화는 차별화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이러한 직분에 의한 권력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교회법들은 각 직분의 역할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에 대하여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교회가 외형적으로 커지는 대형교회가 되면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렇게 대형교회가 되는 배경에는 그 목사의 설교의 유명세와 관련이 되어 있다. 이런 경우는 교회의 성장의 이유로 목사의 설교가 대두되고, 이것은 목사의 전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내가 설교를 잘해서 교회를 키웠다.’라는 공식을 들이대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외형적으로 커지는데는 목사 개인의 설교 능력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그런 요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이 부각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된다.

영적 권위?

교회에서 흔히 목사의 “영적 권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물론 이 말을 처음 말하는 사람도 목사이다. 그들 스스로 영적 권위에 대하여 언급한다.

권위‘라는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출처 : 온라인 네이버 사전)

권위 (權威) [명사]
1.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2.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사회의 어떤 분야이던지 간에 우리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 사람이 그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을 따로 공부하고 연구했으니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일반성도들 보다는 신학공부를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주고, 그가 풀어내는 성경에 대한 해석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영적 권위”라는 운운하며, “목사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라든가, “목사는 하나님의 대언자”, “목사하는 하나님이 보낸 사자” 등의 표현으로 스스로 권위를 내세운다.

영적 권위는 그렇게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 개신교에는 존경할 만한 목사가 없는가?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금새 답이 나온다. 수많은 교회들, 많은 대형교회들이 있지만, 과연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들을 보면서 “나는 개신교로 가겠다.”라고 나서는 경우가 있는가 말이다!

교회가 커지면 좋은 집, 좋은 차를 원하는 목사들이 대부분인 지금의 한국교회에서 누가 목사를 보면서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겠는가 말이다. 교회가 조금 커지면 봉급부터 올리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중 누가 부목사 보다 봉급을 적게 받는 경우를 보았는가? 어떤 담임목사가 “나는 아이들도 다 성장했고, 돈도 별로 쓸 곳도 없다. OOO부목사는 자녀들도 네명이나 되고, 부모도 봉양해하니까 봉급을 훨씬 더 많이 주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담임목사는 부목사보다 무조건 많이 받아야 한다라는 것이 목사들이나 교회직분자들의 생각이 아닐까? 수많은 작은 교회들의 목사들은 기본 생활비 조차 못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일부 배부른 목사들의 모습은 절대로 ‘어떤 권위’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누가 그들을 보고 ‘존경’이란 말을 하겠는가? 욕을 안하면 다행일 것이다.

이런 행태는 결국 목사라는 직분을 계급화했고, 서열화했고, 권력화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교회의 직분은 교회 내에서 봉사를 하기 위한 역할의 분담일 뿐이다. 그것이 계급화가 되면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권력으로 작용을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교회가 아니다.

목사 뿐이랴! 교회 내에서의 장로직분도 마찬가지이다. 장로는 무슨 평신도의 대장인 것 처럼 생각하거나 행동을 하면 안된다. 장로가 되기까지 교회내에서의 봉사의 수고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교회의 어른으로서 대접하는 것일 뿐이다. 장로라는 타이틀은 무슨 계급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더 겸손하고, 더 낮아져야 하는 직분이다.

간혹 장로가 되면 무슨 계급장을 단 것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로라는 타이틀을 악용해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평신도들은 일반적으로 순진하고 단순하다. 따라서 교회내 직분을 보고 사람을 신뢰한다. 그 마음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런 것은 결국 장로를 선출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장로를 뽑을 때 우선 교회의 목회자들이 추천을 하는데 그 추천하는 배경이 재미있다. 십일조는 꼬박꼬박 잘 하는가? 새벽기도는 잘 나오는가? 주일예배 뿐만 아니라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는 안빠지는가? 부서에서 봉사를 오랫동안 해왔는가? 결국 이런 배경으로 장로를 추천하니, 그 대상자들은 “보여주기식”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사는가?”하는 요건은 없다. 물론 그런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부분도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정리를 해보자. 교회의 직분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직분이 계급화가 되고, 서열화가 되고, 그것을 인한 차별이 생기고, 더 나아가 직분이 권력화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은 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현실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린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몇자 적어두는 것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