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글을 반수를 생각하는 의예과 합격생들에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산에 올라가 바위에 대고 말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적어두려는 것이다.
지방의대에 합격한 학생들 중에는 서울쪽 의대를 가기 위해서 반수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등고선식 서열화는 비단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적인 현주소이다. 지방자치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더욱 뚜렷한 현상이다.
반수를 하든지, 온수(?)를 하든지,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이니 말릴 이유도 없고, 또 말릴 수도 없다. 자신이 시험에 실수를 해서, 아니면 조금만 더 노력을 했다면 좀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반수를 하겠지만, 몇가지 생각을 좀 해보자는 뜻이다.
등고선식 우리사회
앞서 말했지만, 우리사회는 서울 중심의 등고선식 서열화가 명확한 사회이다. 그 서열화는 차별화를 만들고, 더 나아가 권력화하고 있다. 대학도 이렇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등고선식 서열화에 빠져 있다. 따라서 지방의대에 합격한 학생들도 오직 “서울쪽 의대”를 가기위해 재수나 삼수를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의 기능
오늘날 대학의 3대 기능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이다. 봉사는 대학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책무성에 비롯하였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대학은 이 세가지 기능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취업을 위한”이라는 말 말이다.
취업을 위한 대학?
일반 대학이 취업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의대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서열화 때문에 서울쪽 의대를 선호하는 것이 아닌,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개업의나 봉직의 등을 생각해서 미리 자신이 직업인으로 살아갈 곳으로 모이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그렇다면 한 개인이 ‘반수’를 해서 서울쪽 의대로 가는 것으로 끝날까?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서 그 해당연도에 졸업생 한 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즉, 자신이 입학했던 학년의 졸업생이 한 명 줄어드는 것이다. 대학마가 결원에 대한 정책이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히 의사 한 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단순히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에서 필요하는 의사의 숫자가 줄어드는 셈이다.
사회적 책무성을 져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까? 왜 자신이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되냐고 반문할 것인가? 의사는 사회적 지도층이며, 그 만큼 사회적 책무성이 있는 것이다. 그 책무성의 시작은 학생 때부터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대학마다 결원에 대한 충원이 되어서 다음해에 바로 의사의 숫자가 정상화된다고 치자(그렇게 되어야 맞다.). 그러면 이제 개인적인 문제로 되돌아 가보자. 아무튼 반수나 삼수를 통해서 등고선의 중심쪽에 있는 대학으로 진입했다고 하자. 과연 자신의 인생이 변할까? 자신의 인생의 본질이 변하냐?하는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이란 “의사가 되어가고, 또한 의사가 되어서 살아가는 인생의 시간”에 대한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냥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그저그런 인생도 필요하지만, 자신이 합격한 의대를 버리고, 더 안쪽으로 진입했다면 그만큼 그 인생이 남들과 달라야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다.
내가 정답을 말할 수는 없어,
인생에 대하여, 직업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생각이 다르다. 거기에 내가 왈가불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인생의 끝에서 ‘아, 아쉽지만 내가 괜찮은 인생을 살았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에 대하여 고뇌하며 그렇게 삶을 살아냈느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대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만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력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환경이 남들과 달랐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고 생각들이 다를 것이다. 아마도 이런 반응이 있지 않을까?
- “아무래도 서울이 좋지!”
- “나중에 직업으로 살 것도 생각해야지!”
-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지!”
- “서울이라고 별 것 없어.”
- “지방은 발전이 없어.”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인서울 하는 것이 너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지?”
즉, 서울 가까이 가면 네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느냐?하는 것이다. 의사로서 살아갈 준비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의 질문도 포함된다. 서울에 있는지, 지방에 있는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고, 그 가치와 삶의 의미를 고뇌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개척해가며 살아갈 수 있느냐?라는 질문도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으로서의 의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의사”라는 고귀한 가치에 대하여 고민해보자는 뜻이다. 반수가 어쩌니 저쩌니를 따지자는 말자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내 자신”에 대하여 고뇌해보자는 뜻이다. 과연 인서울하면서 내 인생의 본질이 바뀌는 과정인지, 단순히 의사로서 살아가는 좋은 환경에 근접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그리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단순히 학교를 바꾸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지 말고, 자신을 가꾸는데 사용하면 어떨까? 자신의 본질을 성장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으로 말이다. 단순히 타이틀이나 무늬만 바꾸는 인생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본질을 바꾸는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의사라는 직업은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다라고 생각하기에.
학생을 성적순으로 뽑고 성적에 따라 ‘서열’화 시키는 의대 교육과정에서, 다시 말해 위기지학이 아닌 위인지학을 강요하는 의대 교육과정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종용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학생들에게만 ‘의’를 강요하시는 것은 어쩌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의 한 문구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시대가 나를 휘감고 내가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삶에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다.
-‘정약용의 고해’ 중
글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도 많구요.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