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졸업 중에 기초의학(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생화확, 병리학, 예방의학, 미생물학, 법의학, 유전학, 기생충학 등)을 전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매년 3천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만, 그 중 극소수만이 기초의학을 선택하였는데, 요즈음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현재 의대를 졸업하고 기초의학을 전공하려고 석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 졸업자는 채 30여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0개의 의과대학이 있다. 그렇다면 박사과정까지 5년이라고 계산한다면 최근 졸업생 15,000여명 중에서 30여명이 기초의학을 전공하겠다고 석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한 대학 당 1명도 되지 않는다. 여러 기초의학 교실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의대를 졸업한 기초의학자는 멸종되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 중에서 과연 해부학은 몇명이나 될까? 결국 의대를 졸업한, 의사자격증이 있는 해부학자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누가 해부학을 강의할까?
통상 “해부학을 가르친다.”라고 하는 것은 해부학관련 과목들을 강의한다는 뜻이다. 해부학을 비롯하여, 조직학이나 신경해부학, 발생학 등을 강의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연구는 이 중에서 극히 특정분야에 해당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부학교실 소속이라면 이 과목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의대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치는 것은 특정 구조물에 대하여 가르친다기 보다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인체구조를 가르치는 것이다. 조직학도 우리 인체의 조직학적 구조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해부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해부학적 육안구조에 대하여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조직학도 자신의 연구주제와는 별개로 교육을 위해 전체적인 조직학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강의자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부학과 조직학에 대한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의학자가 해부학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의대를 졸업한 졸업생이 해부학을 전공하지 않는 시대에 과연 미래에 누가 해부학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와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나의 이런 염려를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괜한 걱정을 뭐하러 하느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을 말하면 이렇다. 2015년에 “대한의학회 TFT”를 통해 기초의학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의협신문의 기사내용을 인용해 본다.
대한의학회 기초의학 TFT에 따르면 해부학·생리학·약리학·미생물학·생화학·기생충학과 같이 전문의제도가 없는 6개 기초분야의 교수 중 의사비율은 평균 50% 내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15년 내(2015년 기준)에 의사 기초의학자의 3분의2인 323명이 은퇴할 예정이며, 현재 45세 미만인 의사 기초의학자는 전국을 합쳐 60명을 넘지 않았다. 6개 분야를 합쳐도 젊은 기초의학 교수는 학교 당 평균수가 2명도 되지 않았다.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
교수 정년이 65세인 것을 감안하면, 향후 15년 이내에 해부학을 비롯한 기초의학교실에는 의대출신 기초의학자는 대학당 채 2명도 되지않을 전망인 것이다. 누가 해부학을 비롯한 기초의학을 교육하게 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단순히 기초의학을 누가 가르치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연구자적 마인드로 의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의학은 죽은 학문이 되고 말것이고, 의사는 의료기술자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바라보는 “의사”라는 직업자체에 대한 관점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의학을 배우는 의대생이나, 학부모들 마져도 이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라는 것이 슬픈 것이다.
비단 의학분야 뿐이랴! 과학도 기초과학의 바탕이 없이 응용과학만을 선호한다면 이미 그 사회는 이미 나약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경제적 부흥기에 맞아 살만하다 보니 진정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사회인 것 같아서 안타깝고 슬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