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쓰지 못하는 세가지 주제

By | 2022년 5월 31일

조금전에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이 세가지가 무엇인지 직시하지 않았다. 각자 떠오르는 주제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다들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무튼 요즈음 페이스북에는 잡다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 최소한 나에게는 말이다.

정치이야기

참으로 민감한 주제이다. 이미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 버린 우리사회는 더 이상 중도나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극한 대립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다. 따라서 페이스북도 이 사회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대선을 앞두고는 정말 페이스북을 떠나고 싶었을 정도였다. 그 이후에 많이 잠잠해지긴 했지만, 정치이야기는 늘 폭탄이다.

살아가면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보수던지, 개혁이던지(물론 내 생각에는 현시점의 우리정치에서는 진정한 보수도 개혁도 없다고 본다.) 잘 하는 부분도 있고, 잘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그들을 대표로 뽑아놓은 국민은 그들을 감시하며 때로는 칭찬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비판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것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소통의 장이라고 열어놓는 페이스북에 그대로 적용되어 버린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포스팅도 없고, 정치적인 글에 반응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보수쪽의 글에, 때론 개혁쪽의 글에 반응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되질 않는다. 이미 편이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종교이이야기

종교이야기는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종교이야기는 대부분 기독교관련 이야기여서 그럴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종교는 존재하는 것인데, 소통의 장에서 종교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물론 요즈음 기독교에 대한 글은 주로 비판적인 글들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꼭 종교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글만 종교적인 글인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포스팅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그 포스팅은 “종교글”로 인식해 버리기 때문이다. 삶가운데 자신이 속한 종교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삶의 일부를 떼어놓고 살아야 하는 것과 같아지는 꼴이다.

자녀이야기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 부터 성장해 가는 과정에 대하여 블로그에 적어 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말이다. 특히, “상산고 이야기”와 “일반고 이야기”는 대학을 가야하는 고등학교의 선택부터 대학입시 과정까지 적어둔 기록이었다. 그런데 그런 글 마져도 닫아두어야 하는 우리사회가 된 것이다. 나는 것을 “기록과 정보”라고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랑거리”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글들을 닫아 두었다.

페이스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두 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적는 것이지만, 그런 것은 없다. 오직 “의사인 두 아들 자랑거리”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두 아들은 잘 나가는 의사들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왜 의대 나와서 그렇게 살아요?”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가는 길,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 그런 길을 가지 않는 모습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의대를 졸업하고 기초의학을 선택했을 때에도 그렇게들 반응을 했다. 그러니 페이스북에 적을만한 재미있는 소재들이 많지만 적지 않는 것이다. 아들들도 내가 페이스북에 그런 이야기를 적는 것을 말린다. (좀 더 적다가 그만 멈춘다.)

따라서 나의 페이스북은 매우 좁은 주제만 쓰게 된다. 아니 써놓더라도 감추어 둔다. 그렇게 감춘글들을 쓰다보면 글의 흥미를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은 아직도 나의 수다장이긴 하다. 사진을 좋아하고 많이 찍는 나이긴 하지만 아직도 인스타그램은 하지 않는다. 노땅(?)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는 페이스북이 놀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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