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이라고 하면 당연히 ‘해부실습’과정을 한다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해부실습을 하지 않은 의대생은 없다. 의대의 모든 과목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과 1학년때 “해부학을 전공하겠다.”라고 선포(?)한 곳도 해부실습실이다.
나는 해부학 시간에 학생들에게 해부실습에 대해 언급한다.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해부실습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언급을 말한다. 오늘 아침에 “해부실습에 대한 해부학교수의 관점”이란 제목을 떠올려 보았다. 무슨 거창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해부실습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쓰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대학의 해부실습은 횟수로 따져서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1/4정도 진행되었다. 첫 땡시도 보았다. 이런 시점에서 이 글을 쓰고, 여기에 대한 영상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
해부실습에 대한 해부학교수의 관점
- 의대생들의 특권이다. 물론, 치대생이나 한의대생들도 해부실습을 하지만 의대생만큼 특권적 위치에서 해부실습을 하는 곳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해부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시신을 기증하시는 분들도 의대생들의 교육과 의학발전을 위해 기꺼이 기증하신다. 사실 교수들이나 대학원생들에게도 해부실습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의대생들의 특권인 셈이다.
- 평면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이다. 의대생들은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 워낙 많은 시간을 책을 통해 배운다. 그런데 책은 평면적이다. 요즈음은 동영상 등을 통해서 3차원적으로 볼 수 있긴 하지만, 그것도 평면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해부실습은 인체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고, 만져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 결합조직에 대한 이해하는 시간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여러분들과 다른 사람들, 즉 일반인이나 보건계열 출신의 의료인들과 다른 이유는 여러분들이 해부실습을 직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그것은 어려분들이 해부실습을 통해서 “결합조직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해부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은 사실 이 말을 듣는 시점에서는 말의 뜻을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해부실습을 하면 과정에서 이 말의 본질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해부실습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경합조직을 제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고, 지루하고, 의미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E-Anatomy라는 동영상 실습자료가 있다. 실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2020년과 2021년에는 E-Anatomy를 보고와서 실습하도록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실습은 결합조직을 제거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구조물을 이해하지만, 그 정도의 이해는 책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영상을 보고 온 학생들의 실습모습을 보면, “그냥 실습책 읽으면서 해부하라.”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해부실습은 결합조직의 제거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물을 관찰하는 것이 진정한 해부실습 과정이고, 그래야만 우리 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 직접 해부를 해본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학생이 모든 부위를 해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부위를 나누어서 해부하게 된다. 각자 자신이 맡은 부위를 해부하는데, 자신이 해부한 부위만큼은 그 누구보다고 잘 알게 된다. 전체를 해보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랫동안 기억이 될 뿐 아니라, 다른 부위를 이해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더우기 올해 부터는 다른 동료가 해부한 것을 관찰하게 하였다. 전에도 그렇게 했지만 올해는 그것을 의무화했다. 실습 전에 자신이 실습할 내용을 발표하고, 실습이 종료될 때 다시 실습한 내용을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구조물을 관찰하게 한다. 즉, 자신이 직접 해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안으로 그런 방식으로 실습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어제 포스팅한 것처럼 다른 조의 카데바 구조물을 관찰할 수 있는 “조별라운딩”도 의무적으로 하고 있어서 기대가 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학습효과는 추후에 연구해볼 예정이다. 아무튼 이미 해부가 된 카데바를 가지고 교수가 설명해주는 해부실습이나 영상으로 보는 해부실습은 의미가 전혀 없다.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그렇다면, 의대생들 이외에 의료계통에서 일할 보건계열의 학생들에게 해부실습을 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떨까? 사실 보건계열학생들은 직접 해부를 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의대생들이 실습을 해놓은 상태에서 구조물을 확인하는 수준의 해부실습이 진행된다. 사실 여러 연구들이 보건계열의 학생들의 해부된 구조물의 관찰은 긍정적 평가로 나타나 있다. “보건계열 학생들의 사람해부실습 교육 효과(유효현 외, 2014)”이나, “카데바를 이용한 해부학 실습의 효과에 관한 연구[응급구조학과 학생을 대상으로](손인아 외, 2013)”, “간호학생의 카데바 실습 경험에 대한 융합적 연구(이현정 외, 2020)” 등의 논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는 한때 “보건계열 학생들의 해부실습에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대학에서 제공해주는 몇시간의 실습을 해당 대학측에서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전북의대에서 해부실습을 직접한다.”라는 식으로 광고를 해댔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 거론된 눈문에서 보면 한나절 정도 실습하는, 실습이라기 보다는 해부된 구조물을 눈으로 관찰하는 수준인데도 말이다. 물론 보건계열의 학생들에게 그 정도라도 보여줌으로서 나중에 의료계통에서 일을 할 때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보건계열의 대학에서 이를 허황되게 선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나는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 많은 시간을 해부실습실에서 보내야 하는 의대생들의 수고는 크지만, 사실 기증하신 분들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신기증에 대하여 문의하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늘 하는 말씀이 있다. “내가 죽고 나면 내 몸을 해부해서 다시는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없도록 잘 연구해 봐요.”이다. 그런데 해부실습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그 분의 질병에 대하여 알게 될까? 사실 의대생들이 해부는 있는 구조물을 그대로 확인하는데도 턱없이 부족한 실습시간이고, 턱없이 부족한 소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의사로 살아갈 의대생들에게는 해부실습시간은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의 뜻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시간들이다. 그것을 알기에 학생들은 매실습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해부실습에 대한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관점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있으나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말도 길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