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어렵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의대에서의 교육과정은 더욱 그렇다. 수평적 및 수직적 통합교육을 추구하는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는 순서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순서가 바뀌면 안된다.
내가 교수들을 위한 세미나에서 반복적으로 당부하는 것이 “교수 자신이 편의를 위해서 강의시간을 바꾸지 말라.”이다. 통합강의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과 실행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다. 만든 시점과 실제 실행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건축과 똑같다. 건축에서 설계사와 시행사가 다른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시행사에서 짓는 과정에서 ‘설계와 현장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때 시행사의 태도가 중요하다. ‘뭐 이 따위로 설계했어?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네.’하면서 맘대로 수정해서 공사를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설계가 되었냐?”고 설계사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진짜 설계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실제 그 집에서 거주하게 될 건축주의 의도가 반영된 설계“라는 측면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기간동안 피교육자인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한 교육과정‘이 실행하는 과정에서 ‘교수들의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실행하는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왜 이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것을 교육과정을 설계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 대한 생각이 없이 그저 불편할 때마다 바꾸어 버린다면, 모든 교육과정은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시행사가 설계도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맘대로 집을 지어버린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수정은 하되, 건축주의 의도를 반영한 설계도의 본뜻을 계속 파악해 가면서 건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행사에서 느끼는 ‘설계와 현장의 차이’가 시행과정 중에서 오는 불편함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건축에서 설계도면대로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건물전체의 미관이나 용도에 맞다면 그대로 시행해야 하는 것이 맞다.
교수들의 불편함 보다는 학생들을 중심에 두는 교육과정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과정은 꾸준하게 수정 및 보완되어야 발전을 한다. 그대로 두면 안된다. 그런데 그 변화의 중심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저 편의주의적 교육과정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호도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