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페이스북에 [긴글 주의]라는 말로 시작하는 글 하나를 써놓고 이를 다시 제 블로그에 옮겨 놓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이 통성명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여서, 저희 아파트에서 만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지만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아내와 저는 그들의 별명을 붙여서 구분을 합니다. 그 분들 중 한분이 “써니 언니”입니다. 여자분들에게는 주로 뒤에 ‘언니’를 붙입니다. 미소언니, 고니언니 등으로 말이죠.
써니 언니는 이미 통성명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명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OOO 작가님이라고 부릅니다. 글을 많이 쓰고 계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몸이 많이 불편합니다. 고개가 꺾여지는 원인불명의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팡이를 늘 짚고 다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얼굴도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인사도 잘 나누셔서 붙여진 이름이 “써니(Sunny) 언니”였습니다.
어느날 부터 “내가 써놓은 글들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렸었고, 지난 금요일에 제게 써놓은 노트 두권을 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잠깐 읽어보면서 그냥 덮었습니다. ‘이 두권의 노트를 빨리 써니 언니에게 돌려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본 제 느낌은 이 두권의 노트(더 많은 노트가 있는데 그 중 두권만 샘플로 주신 것입니다.)는 그 분에게 있어서 “보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전화를 드려서 두 권의 노트를 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노트를 비롯해서 선생님께서 쓰신 노트는 제가 봐서는 ‘보물’입니다. 이 노트를 활자로 옮겨서 책으로 만드는 것 보다는 원본을 그대로 간직하시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노트에는 주로 일기형식으로 선생님의 역사이고, 당시에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것으로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서 자식들에게 주는 것은 그리 의미가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읽지도 않을 것이고, 읽는다고 해도 그 당시상황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때론 편안한 마음으로, 때론 격한 심정으로 적은 것으로, 글씨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당시의 감정이나 느낌의 표현을 다른 활자로 옮겨서 책으로 만들어 봤자, 전혀 다른 책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사용했던 볼펜의 잉크가 번져서 뒷면에 베어 있는 이유로 글씨가 흐리거나 보이지 않는 것 자체도 귀한 기록이며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노트만큼 더 좋은 책은 없습니다.”
이런 내용의 대화를 20여분간 나누었습니다. 물론 본인은 책으로 만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는 듯하였으나, 제가 봐서는 그 노트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분께서도 자주 읽어보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이 때 이랬었구나!’라는 생각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제가 한마디 더 보탰습니다. “글씨를 쓰실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을 적어두십시요.”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