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교회에 제안한다

By | 2022년 11월 4일

문제만 지적한다고 교회가 변하지 않는다. 그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제안을 한다. 아마도 이미 TFT에서 제안을 했을 것 같지만, 아직 그 서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 밖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내가 현재 시점에서 쓰는 것이니, 혹시 이 글을 보고 할 말이 있는 바울교회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와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목사나 장로님들은 더욱 그렇다.

첫째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그리고 지금도 문제를 안고 있는 재정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현재 있는 부채에 대한 인식이 교인들에게 있어야 한다. 그저 “이자만 갚아가면 된다.”라는 식의 안일한 대처를 하면 안된다. 갈수록 금리가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수십억원의 부채는 당연히 어떻게 갚아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미 TFT에서 제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부 장로들에 의해 묵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교회에 헌금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그저 이자만 갚아가려는 생각인 듯하지만,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계속 지금처럼 헌금이 들어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교회건물을 팔고 있는 미국의 교회들을 한번 생각해 보면 금새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자신들의 재정에 대한 방종을 감추려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스스로 재정에 대하여 책임감을 갖도록 지혜와 명철을 이미 주셨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직원의 숫자를 대폭 줄여야 한다. 이 언급은 교직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진짜 교회의 녹을 먹고 있는 교직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지금 재정의 절반 가까이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 교직원들은 이 문제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교인수는 절반이상으로 줄었는데, 그에 비하여 교직원숫자가 너무 많다. 대폭 줄여야 한다. 교직원 여러분들이 받고 있는 봉급이 모두 성도들의 피같은 헌금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째로, 교회부서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방대하게 만들어진 교육부를 재정비해야 한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았던 시기에 나누어 놓은 부서들을 통폐합해야 한다. 지금 각 교육부서의 출석인원을 들여다 보길 바란다. 방만해진 지금의 부서를 대폭 줄여야 한다. 그동안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공간에 대하여 다시한번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네째로, 바울센터의 활용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한다. 지을 때 거창했던 구호들은 다 어디로 가고, 카페와 담임목사실 이외에 특별히 사용되는 부분이 있던가? 학생들이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체육관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관리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물의 활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저 대형교회의 큰 건물만 자랑거리로 삼을 것인가?

다섯째로, 어차피 교인숫자가 증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전주에도 대형교회들이 많고, 작지만 건강한 교회들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바울교회를 찾아올 성도는 많지 않다. 더구나 사회적 분위기로 새로운 신자가 교회가 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좋지 않고, 바울교회에 대한 시각도 결코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여섯째로, 바울교회의 담임목사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은교회를 개척한 심정으로 목회를 해야 한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목사는 목회를 해야 한다. 회사는 사이즈에 따라 급이 달라진다. 봉급도 올라가고, 차량도 커진다. 그런데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 자신의 봉급에 대하여 다시금 목회자적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차량도 과감하게 일반인들이 타는 차로 바꾸길 바란다. 바울교회 목사는 소형이나 중형차를 타면 안되나? 되냐안되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번 소형차라도 타보길 바란다. 교인들의 피같은 헌금으로 부귀영화를 누리지 말라는 뜻이다. 목사가 목회자라면 말이다. 부목사들도 그저 좋은 직장으로서의 목사가 아니라면, 바울교회를 과감히 떠나길 바란다. 대형교회를 꿈꾸기에 대형교회에서 목회를 배우는 것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내가 볼 때에는 별로 배울게 없다.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 배울 점일 수도 있다. 진정 목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보길 바라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목회적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다. 그들과 같은 목회적 삶을 살아내는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보면 정답은 간단하다. 지금까지 누렸던 대형교회의 모든 이점을 다 내려놓고 개척교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결과는 뻔하다. “곧 망한다.”이다. 그것이 서구교회가 보여준 교훈이다. 지금 나이든 성도들(그들이 큰 교회를 이루까지 쏟아부었던 열정과 믿음의 행동은 박수를 보낸다.)도 이제는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세대가 가고나면 바울교회에 누가 남아 있을까?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대로 서구교회가 이미 바울교회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과 다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적어둔다. 바울교회가 사라지지 않을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의 떄가 지금이다. 더 늦어진다면 머지않아 바울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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