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가 만들어낸 “필요한 만큼만”

By | 2022년 11월 14일

오후에 어떤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사회의 교육시스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절대평가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절대평가가 대두된 것은 상대평가에 따른 무한경쟁을 막기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장단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교육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현재의 절대평가에 의해 교육받아온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에 대한 우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하는 사회”

이것이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이 글을 그만 읽기를 권한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수 있다.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오전에 다른 교수들과의 대화에서 비롯하였다. 주제는 이랬다.

“지금의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원서를 그대로 교과서로 사용하느냐? 아니면, 한글번역판을 교과서로 할 것이냐?에서 비롯한 대화는 학생들의 영어실력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했다.

“1등급”

그들에게 붙어 있는 영어수준이다. 기성세대들이이 보면 그들이 얼마나 영어를 잘 하게 보일까? 그런데 많은 교수들은 그들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원서를 읽지 못해 한글번역판을 읽는다. “한국사람이 한글로 공부해야지 뭔 말이냐?”며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번역의 오류까지 분별할 수 있을까? 사실 번역서들은 많은 번역의 오류(잘못된 번역이라기 보다는 번역자의 표현에 의한 독자의 혼란을 말함.)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오랫동안 해부학교실에서는 원서를 교과서로 채택하고 있다. 교수들이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다. 그런 번역의 오류에서 조금이라도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사실 원서를 읽는 학생들이 별로 없다. 강의안만 갖고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경우 찾아볼 교과서가 있어야 하고, 또 필요시에는 읽어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가 오후까지 계속되어 다른 교수와 교육과정에 대한 대화를 하던 중 처음 이야기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절대가치에 대한 기준은 “그 만큼만 하면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나는 욕심이 있다.

우리 학생들은 그런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필요한 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을 만큼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하는 사회

이것이 내가 원하는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대화 끝에 대화를 하는 교수가 한마디 한다.

“우리 교수님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으셔. 순진하셔. 아직도 기대의 끈을 놓지 않으셔”

그런데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ㅋㅋㅋ

“철없는 놈아! 정신 좀 차려라!”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