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졌다는 것은… 많은 분야에서의 가진 자를 의미한다.
- 지식적 측면
- 사회적 측면
- 정치적 측면
- 경제적 측면
- 신체적 측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구별된다. 최근 부쩍 고생인류, 즉 인류의 발달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이런 부분은 나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어제는 어떤(?) 가진 자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1심 선고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물론, 당사자는 무죄받은 부분을 강조하고, 파렴치한 유죄부분은 항소를 한다고 하며 죄목을 흐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다. 왜 하필 그 시간에 그것을 생방송으로 보게 되었을까?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대한민국을 둘로 나누었던) 했던 장본인의 사건에 대한 재판이 무려 3년이 넘어서야 1심이 끝난 것이다. 대학교수로 있는 내 입장에서는 딱 하나이다.
“어떤 형태의 입시부정도 다른 이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기 때문에 용서되어서는 안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관심이 없었던 정부와 여당을 바라보게 되었고, 내로남불이란 신조어에 맞는 모습들을 보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식적으로 사회의 우위에 있는 자들이 사회적 규범을 깨는 범죄 앞에서 “나는 잘못이 없다.”라고 항변하는 모습은 추함을 넘어, 추악하다.
다른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을 이용하여 없는 자들을 착취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사회적 공의”에 기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한번 왔다가는 짧은 인생의 시간들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가진 것”들을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그 얼마나 무의미한가?하는 질문이 우리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사회적 정의가 무너진 우리사회
나는 다시 고생인류를 생각해 본다. 나무 위에서 내려와 땅을 걷게 된 인류가 동굴로 들어가 살면서 작은 사회를 이루어가면서 사회적 공동체가 된 이후에 인간은 동물들이 갖지 못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발전시켜 왔다. 그 중심에는 “공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사회는 그 공의는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만을 쫒는 사악한 무리들로 채워가고 있다. 그것도 “가진 자”들의 횡포는 더 심화되고 있다.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스스로 땅을 기어다니며, 나무 위로 올라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