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실습은 의학의 첫걸음에서 가장 잊지못할 기억이다. 매년 3월말 또는 4월 첫주에 해부학실습은 시작된다(학교마다 다르다).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은 늘 4월 첫주에 시작한다.
올해도 학생들의 묵념과 학생대표의 추모사, 그리고 해부학교실 주임교수의 말씀, 그리고 추모비 앞에서의 묵념과 헌화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신을 닦고 머리카락을 모두 자르고 해부실습을 시작한다.
나는 주임교수로서 한가지 경험과 세가지의 당부의 말을 했다(1주일전만해도 더 강하게 이야기를 꺼낼까하다가 그냥 당부의 말만 하기로 했다).
몇년전 해부학교실에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기증하시겠다고 오신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은 후에 내 몸을 샅샅이 해부해서 나처럼 수십년간을 고생하는 사람들이 치료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라고. 솔직히 그 할머니께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학생들의 해부실습용 시신으로 질병연구까지 할 수 있는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체의 구조를 배우는 단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바탕으로 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임상의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질병퇴치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 할머니의 말씀처럼 그렇게 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난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다. 다만, 그 할머니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학생들이 열심히 해부를 해서 인체의 구조를 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그 분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루어드릴 수 있는 길이 된다고 생각한다.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 당부의 이야기를 했다.
해부 첫시간에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해부실습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타성에 젖기도 하고, 처음 가졌던 마음보다는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들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흩으러질 수 밖에 없지만, 처음 가졌던 마음을 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둘째로는 진정한 해부를 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사전지식없이는 제대로 된 해부를 할 수 없다. 시간적으로도 더 낭비이기 때문이다. 실습전에 자신이 찾아야 할 구조물에 대하여 잘 파악학 있을 때 제대로 학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생명이 없어져 실험대에 누워계신 분들도 이 땅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았던 분들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하면서 해부를 하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해부를 하는 대상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의사로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해부실습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다. 때로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들이 될 수도 있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실습실의 약품냄새로 더욱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해부실습용으로 기꺼이 내주신 분들을 조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한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이 고인에 대하여 좀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습을 잘 해 주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