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모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자녀와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대화가 부족한 것인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인지를 말이다. 많은 경우 대화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주로 학교공부에 촛점이 맞추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공부”와 관련된 대화가 많을 듯 하다. 공부했냐? 학원다녀왔냐? 성적은 어떠냐? 학습지는 풀었냐? 등등… 많은 부분이 공부, 공부를 외쳐대는 것이다. 거기에 간섭의 말들이 많이 섞여 들어간다. 씻어라, 어지럽히지 마라, 치워라, 게임 좀 그만 해라, 등등 잘못을 나무라는 명령어들이 너무 많다.
자식과 대화를 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내뱉는 말은 대부분 명령이나 지시, 충고나 경고, 비난이나 비교하는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러니 대화가 아예 되질 않는 셈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대화를 시도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것을 대화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부모들의 대화시도(?)는 아이들로 하여금 저항하거나 반항, 또는 적개심을 불러일으켜서 방어적 자세를 보이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부모와 대화를 하고 나면 왠지 씁쓸해 지는 죄책감이나 열등감이 만들어지고, 때로는 증오심까지 불러일으키고 만다.
공부만이 이 사회를 이겨낼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자녀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생각이나 갈등에 부모가 접근하는 것 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대화는 겉돌기만 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이 대학이라도 간다면 이제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대화는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다.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 사이에는 도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형식은 남아있겠지만 본질에의 접근은 사실상 힘들어진다. 이런 문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터 이미 형성되기 때문에 부모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젊은 부모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몇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로, 공동관심사를 만들어라. 대화는 스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킬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자녀와의 대화가 잘 안되는 부모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부부지간의 대화는 잘 되냐?”라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대화는 부모로서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접근하거나, 자식의 성공에 집착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된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공유하려고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게임을 한다면 게임을 하지 마라고 하지 말고 그 게임을 함께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함께 게임을 즐기고 나눈다면 좀 더 이야기가 쉬워지지 않을까? 물론 게임시간을 정해놓고 하게 만들면 된다. 아이들이야 조금이라도 더 게임을 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부모의 배려와 인내가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로, 화내지 마라.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부모들은 흔히 화를 낸다. 이유는 당연히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이 화를 내는 많은 경우는 아이들이 능력이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나 부모의 욕심에서 기인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화를 내는 순간부터 부모로서의 권위는 상실된다. 많은 부모들이 그걸 모르고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것으로 권위가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권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더우기 아이들에게는 상처와 불안감, 그리고 대화의 단절을 가져오게 된다.
세째로, 참고 기다려라. 많은 부모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바로 “인내”이다. 하루에도 열두번을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내야 한다. 목까지 올라오는 화를 참아야 하고, 머리까지 올라온 화도 참아내야 한다. 더우기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 이런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라고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다. 다만, 부모의 눈에 차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부모는 늘 참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부모의 절제된 말이나 행동에서 아이들을 스스로 자신을 보게되고 깨닫게 된다.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많은 부모들은 그 부분이 약하다.
네째로, 기도하라.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아이를 더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내 자신을 보게 되는 은혜도 얻게 된다. 내 자신을 보게 되니 아이도 다시 보게 되는 셈이다.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욕심들이 사라지고 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보게 된다. 때론 아이들이 연약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눈으로 본다면 그런 것을 능가하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대화로 대화를 이끌고 있지 않는지 묻고 싶다. 부모의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진정한 대화를 얻을 수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에 대한 간섭의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가지고, 서로의 관심사에 접근할 수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주문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서 부모자식간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 아내는 매주 둘째 아들을 만나러 서울을 향한다. 그 때마다 5~6가지의 주제를 준비해 간다. 정말 다양한 주제들이다. 물론 그 주제는 아들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서로 대화가 가능한 주제이다. 때로는 아들에게 충고를 받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주제들도 포함한다. 그런 주제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아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어떻게 살고 있냐?” “공부는 잘 하고 있냐?”라고 묻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들속에서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부터 자라면서 형성된 부모자식간의 대화가 지금껏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때와는 나이가 다르고, 이미 성인이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그 동안 지켜왔다는 것이다.
정말 감사한 말씀입니다.. 제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일들이었네요.. ^^
아이가 스스로 할수있게 하고싶지만 시간을 넘어서까지 과제를 하지않으면 그때가서 닥달하듯 시키는데
아직도 어려움은 생기지만 저도 아이도 서로 성숙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번 방학 딸과 알차게 같이보내는 시간 많이 갖도록 해야겠어요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배려도하공.. 인내가 저에게 필요해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엄마로서는 더욱 힘든 일일 것입니다.
아이들과 행복한 방학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주는 더워도 너무 덮네요…
아침에 26도에서 시작한다고 하네요.
차에 온도계는 출근할 때 보니 29도이더군요.
아침 7시에….. 그 온도이니…. 힘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덥지만 행복한 시간들을 만들어가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