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근처 원룸 구하기

By | 2011년 2월 19일

둘째 아들이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월요일에 받았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신입생이고 집이 전주라서 당연히 되는 줄 알고 방심(?)하고 있다가 허를 찔렸습니다. 연락을 받은 곳은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부안 대명리조트였습니다. 아무튼 일단 수요일까지는 꼼짝하지 못하는 터라 “목요일에나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화요일 “장기하와 얼굴들”(유명한 그룹인데…)이 나오는 서울대 신입생 OT에 참석하고 돌아왔다가, 다시 의예과 신입생 OT에 가는 바람에 얼굴을 못 보고, 목요일날 무작성 서울대쪽으로 갔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곳은 낙성대역 근처 원룸이었습니다. 감기몸살로 심하게 근육통을 앓고 있던터라… 잠을 자지 못하고… 인터넷상에서 여기저기를 뒤져 보았습니다. 가격대도 보고 위치도 보고.. 그리고 몇군데 복덕방의 연락처도 알아 두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후에 반일연가를 내서 서울에 갔습니다. 낙성대역 근처 한빛복덕방의 김선영씨를 만나서 4군데 방을 둘러 보았고, ‘그냥 계약하고 갈까?’하고 생각하던 중, 큰 아들 주찬이의 말 때문에 일단 보류했습니다. 이유는 “자연대학 건물까지 가는 차량편이 원만치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봉천역”으로 갔습니다.

봉천역과 신림역 쪽을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봉천역쪽이 더 가까울 것 같아서입니다. 문제는 서울대입구역 근처는 배제하고 있었습니다. 그쪽 환경이 너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입시때 본 서울대입구역 근처는 말 그대로 “놀자판”의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쪽으로 들어가면 원룸촌들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여지는 남겨 두었습니다.

봉천동….

처음으로 가본 봉천동은 예전에 어떤 동네였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좁은 골목… 언덕길…. 그렇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서울대 입구역 부근 보다 가까운 거리…그리고 버스의 접근성이 더 나은 점 때문에 너뎃군대를 둘러 보았습니다. 여기서도 맘에 드는 곳이 있어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아니다. 서울대입구역쪽을 한번 더 살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은 바로 어떤 교수님의 자녀의 전화였습니다. (집을 구하는 동안 많은 응원의 전화와 메시지들이 있었습니다. ㅋㅋ)

일단 봉천동을 보류하고 토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봉천역 2번출구나 3번출구로 나와 약간 들어간 골목에 있는 “청룡복덕방“의 김윤성이사였습니다. 젊은 공인중계사의 빠릇빠릇한 판단과 고객이 원하는 바를 빨리 파악해서 물건(?)을 제시하는 것이 맘에 쏙 들었습니다. 감기가 다 낫지 않은 탓에 원룸은 공인중계사에서 맡기는 편이 더 나은 셈입니다. 아무튼 토요일(글쓰고 오늘 오전) 일찍 서울로 가서 서울대입구역 근처를 둘러 보았습니다. 청룡복덕방의 김윤성이사의 실명을 굳이 거론 하는 이유는 서울대 근처의 원룸을 찾는 분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될까해서 입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원룸은… 딱 세군데만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가 보았던 곳을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새건물입니다. 새건물 증후군 걱정 보다는 냉장고나 세탁기 등이 새물건이기 때문에 고장 등의 이유가 발생했을 때 신경을 덜 쓰게 됩니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예 생각을 안하는 편이… 건강에 좋을 듯 해서 생략합니다.
2. 1년 계약이 가능했습니다. 대부분의 원룸들이 2년 계약이기 때문에 이것도 사용자 입장에서는 좀 복잡합니다. 월세인데… 2년 계약…이라는 조건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3. 방은 작지만 일단 그 근처의 시세에 맞추어 1,000만원 + 40만원 + 8만원 관리비 + 전기세 따로… 의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서울대입구역쪽으로 올수록 이런 현상은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역시 서울은 비싸고 방이 작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비하여서는. 그러나 일단 기숙사가 되지 않은 이상, 원룸입주는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다만, 식사를 직접 해 먹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식사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두 아들을 다른 곳에서 각각 원룸에 살게 됨으로서 모두 세집살림이 되어버렸습니다. 봉급쟁이 입장에서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지만, 가족이 함께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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