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구실 책장에는 오래된 책들이 몇권있다. 모두 아버지집을 정리하면서 나온 것들을 가져다 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1970년에 출판된 시조(時調)책이다. 시조를 적어놓은 책이 아니라 시조를 읊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쉽게 말하자면, 시조음악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안을 들여다 보면 참 재미있다. 보고만 있어서 시조가 읊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가져와서 펼쳤을때(종이가 부스러질까봐서 조심스럽게 펼쳤던 기억이…) 도대체 이것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 보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책에 표기된 여러가지 기호들을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시조를 대충 읊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길이와 높이, 그리고 바이브레션 등의 변화를 기호로 쉽게 표기해 둔 덕에 쉽게 시조를 읊을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할아버지댁에 1주일가량 머물렀던 때, 새벽일찍 할아버지의 시조 읊으시던 것이 기억이 새롭다. 단잠을 자고 있을 때 “청산—-~~~~~~~~리~~~~ 벽계~~수—-야~~~~…”이렇게 말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이어서 그랬을까 그 소리는 맑고 청아하고 컸다. 특별한 취미생활이 없었던 시절에 할아버지는 그렇게 시조를 읊는 것이 하나의 취미였고, 70대에는 전주대사습놀이 시조부분에 참가하신 적도 있다.
교통편이 별로 좋지 못했던 시절에 멀리 전남 진도에서 전주까지 그렇게 본인의 취미였던 시조로 그런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할아버지가 가끔 생각난다(당시에 나는 광주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전주”에 지금 내가 살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얼마전에 시조책을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