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이 긴 편지를 보내왔다. 전남 신안에서 발행한 “섬노예”사건을 보고 보낸 것이다. 그 사건을 통해 얼마나 인간이 잔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적은 편지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잔인함 중 “방관과 묵인, 낙인, 정당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죄악에 대한 생각들이다.
물론 편지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그렇다고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앞으로 더 심해질 수도 있는 이런 사회 병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없는 한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 죄에 스며드는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벌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범죄”이고 “죄악”이다. 사회가 악해지면 결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현대인들은 죄에 무뎌져있다. 사회가 악해질 수도록 우리는 죄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둔해진다. 문제는 그 결과들이 곧 자신을 해치러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서서히 스며든 죄들에 둔감해져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악해져가는 사회를 향해 마냥 비난을 할 수 없다. 왜냐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중에 한명이 그렇게 비난하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볼 수 있는 내인력을 길러야 하는 것은 물론 사회를 정화해가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때로는 힘들고 버거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사회를 행복하게 하고, 후손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한다.
사회가 폭력으로 물들어가고 있음에도 묵인하고 방관하고, 때로는 가해자가 되어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