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세월호 참사/美 재난대처의 교훈]
2005년 美 카트리나 사태 신속 수습한 아너레이 현장사령관
2005 년 8월 말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웅은 합동 태스크포스(JTF) 사령관을 맡은 러셀 아너레이 당시 제1군사령관(64·중장)이었다. 그는 사전 대처 소홀과 늑장 대응으로 비난을 한 몸에 받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0∼2002년 주한미군 제2사단장으로 복무해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아너레이 예비역 중장은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형 재난사고는 첫 일주일이 중요한데 세월호 침몰 사고는 리더십 혼란으로 이 시간을 허비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2008년 전역 뒤 CNN방송 분석가와 갤럽 선임고문으로 활동하는 그는 재난 대비 강연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출장길에 애틀랜타 공항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고 한 시간 가까이 열변을 토했다.
―카트리나 사태에서 얻은 교훈은….
“지휘체계를 세우라는 것이다. 카트리나 사태가 초기에 부실 대응 비난을 받은 것은 주정부와 연방정부 간 지휘 혼선 때문이었다. 미국은 재난사고에서 주정부가 최종 지휘권을 갖지만 카트리나 때는 주정부가 피해 당사자여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연방기관인 재난관리청(FEMA)은 주정부의 협조 요청을 기다리다가 사태를 키웠다. 내가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연방 지휘권을 세우고 미국 전역에서 7만여 명의 주방위군을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인 것이다.”
―대형 재해재난 사고에서 컨트롤타워는 누가 맡아야 하나.
“누가 컨트롤타워를 맡느냐는 상관없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조직이나 인물은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다. 지휘권을 놓고 기관들이 갈등을 빚지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된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부실 대응 비난을 받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는데….
“지도자는 사전 준비와 사후 대응 능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가 초대형 허리케인이 될 것이라고 미리 보고를 받았지만 사전준비가 부족했다. 피해 예상 지역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지 못한 것이 최대 실수였다. 반면 사후 대응은 비교적 잘 이뤄졌다.”
―한국 당국이 세월호 구조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지 않아 실종자 가족과 국민이 매우 답답함을 느꼈는데….
“현장 사령관으로 구조 활동을 지휘한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직접 하루에 세 번씩 기자회견을 했다. 공개하는 정보는 100% 진실이어야 한다. 둘러대거나 부풀린 정보는 들통 난다.”
―한국에서 미선 효순 양 사건을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들었는데….
“내가 2009년 저서 ‘생존’에서 밝혔듯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아닌 대변인이 한국인의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명 위주의 기자회견을 한 것이 반미(反美) 감정을 키웠다. 대형사고가 나면 책임자가 나서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현장 책임자는 뒤에서 지휘권을 행사하지 말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
―세월호 사고 때 안전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매뉴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상황에 맞게 매뉴얼을 계속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기난사 현장에 있으면 예전에는 숨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요즘은 안전지대를 찾아 뛰는 것이 원칙이다. 카트리나 직후 수많은 이재민들이 신분증 없이 다른 지역으로 탈출하려고 했을 때 공항에서는 테러 검색을 명목으로 이를 막았다. 그래서 간이 신분증이 있으면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당시 매뉴얼을 고쳤다.”
―대형 재난사고 때 국가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모든 재난 사고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카트리나 사태를 지휘하면서 능력 있는 리더는 ‘먼저 보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무능한 리더는 대형 사고가 닥쳤을 때 비난이 두려워 행동해야 할 때 하지 못한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