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 결과가 씁쓸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이런 글을 쓰면 나중에 학생들의 피드백이 굉장히 형식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글로 남긴다). 물론 피드백 중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 소리가 작다”라는 것이 있다. 사실 깜짝 놀랐다. 수업 때 마다 “소리 어때? 잘 들려?”라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했는데 이런 피드백이 나오니 당황스럽다. 다음시간부터는 내 전용 헤드셋 마이크를 사용하려고 한다. 수년전에 구입해서 사용하였는데 최근 강의실 무선마이크가 나쁘지 않아 강의실에 있는 것으로 사용해 왔었다.
또한 강의에 대한 소수의 의견들이긴 하지만 정리해 보면 주로 강의안에 대한 내용들이다(의대의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의 프리젠테이션 강의자료를 강의안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 강의안을 더 높은 해상도로 달라.
- 강의안에 설명을 많이 넣어달라.
- 강의안에 그림에 교과서 페이지를 넣어달라.
- 각 슬라이드에 제목을 달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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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청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첫째로, 강의안의 해상도는 키노트(Keynote)를 pdf로 추출하는 과정에서 best, better, good 중 나는 good을 선택한다. 이것은 good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해상도가 높으면 출판사로 부터 고발을 당할 수 있다. 너무 해상도를 높이면 책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기 때문에 저작권법에 저촉된다. 따라서 해상도를 높게 할 수 없다. 실제로 good의 수준도 글씨가 절대로 깨지지 않을 수준이기 때문에 강의를 받는데 크게 상관이 없다.
둘째로, 강의안의 설명은 더 이상 넣을 수 없다. 강의용 슬라이드는 보조자료일 뿐이다. 책을 정리한 것인데 거기에 책 내용을 넣을 필요는 없다. 그런 슬라이드로 강의를 한다면 내 강의 스타일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강의의 집중도도 떨어진다. 강의시간에 딴 짓을 하게 된다. 슬라이드는 교과서가 아니다. 강의보조자료일 뿐이다.
셋째로, 강의안에 넣는 그림에 원래 그림번호가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일부러 지운다. 화면에서 거추장스럽고, 또 학생들의 강의내용의 중심은 슬라이드가 아니라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슬라이드에 있는 그림을 교과서에서 찾기는 매우 쉽다. 순서도 그대로이고 대부분의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달라는 요청은 들어 줄 수 없다.
넷째로, 각 슬라이드에 제목은 필요한 것은 다 넣어져 있다. 앞 슬라이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제목이 필요한 경우란 없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나중에 보려니 연속성이 떨어져서 요청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요청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교육이 “고기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아다 바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만큼 효율을 빙자한 “게으름”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의대 캠퍼스까지 있다는 것이 내 스스로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좋은 강의는 교수가 혼자서 만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교수와 학생, 그리고 하드웨어적인 지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 물론 교수의 역할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나 자신도 열심히 노력한다. 내 강의용 슬라이드는 최고는 아니지만 최상의 슬라이드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에 내 정성을 다하여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쓸 자신감이 내게 있는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다고 내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 ㅋㅋㅋㅋ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늦깍이 의대생 김진석입니다.
이번에 해부학실습 PPT를 작성해 보면서 프리젠테이션 자료 준비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의 교안이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록 저도 해상도를 높여주십사 하고 글을 썼지만 (^^;; ) 생각해보면 그것은 버려야할 버릇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subnote 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외국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다른 사이트에서 how to study anatomy? 라는 주제로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교과서를 10번 이상 읽어라” 라고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헉…” 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제서야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헉…
공부할 시간에 왠… 글?
윤철이가 또 카톡에 올렸나 보넹. 헐.
교과서 활용을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교수로서 많이 안타까운 부분인 것은 사실이야.
우리 학생들을 비난하려는 생각은 없어.
페이스북에도 글을 썼다시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쉽게 사는 법”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을 적은 거야.
내일 시험까지 마무리 잘 하고… 다음주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