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은 언젠가는 인류도 우주도 멸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안에 미세먼지와 같은 존재이다. 긴 역사는 지금까지 지나왔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모든 인생은 주어진 120년이 못되는 시간들을 이 땅에서 살아간다. 좀 더 일찍 가거나 좀 늦게 갈 뿐 어차피 왔던 인생은 다시 되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진리이다.
주어진 시간동안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뉜다. 하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신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 역사상 보기드물게 비약적인 발전을 한 케이스이다. 양적 성장으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 역사 100년이 넘으면서 한국교회는 휘청대고 있다. 교회는 “품위”와 “권위”를 상실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사실 교회만큼 사회에 공헌하는 기관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한국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탐욕”과 “권력”, 그리고 “성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관련글 보기). 세상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는 교회를 세상사람들은 결코 좋게 바라보지 않는다. 교회만큼은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을 버리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급성장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교만해지고, 신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종교의 특성인지 몰라도 신격화되어가고(그게 성도에 의해 만들어졌던지, 교회지도자들의 의도로 만들어졌던지 간에) 자신들의 힘(권력)만 키워갈 뿐 세상을 향한 진정한 권위는 갖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변질되어 더 이상 그들에게 신앙이란 찾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라는 말을 던저기 전에 “나”를 되돌아 본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온전한가?”라는 참회적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와 “하나님”의 “온전한 관계”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 본질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계명을 주셨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이렇게 기록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한국교회가 다시한번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세상으로 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은 세상적 욕심을 버리고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