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시다. 담임선생님은 아니시다. 내가 5학년때라고 기억된다. 아마도 선생님은 2학년 담임을 맡고 계셨던 것 같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전읽기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왔다. 그런데 방학 때 밤시간에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었다. 더우기 남녀로 나뉘어 학교에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자게 되었다. 일종의 합숙인 셈이다.
내 기억에 저녁은 각자 집에서 먹고 학교에 모여서 책을 읽고나서 잠을 잤다. 그날 저녁은 달이 훤히 뜬 날이었다. 아이들이 자정이 지나자 잠을 자지 않고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집을 떠나 왔으니 얼마나 자유스러웠겠는가? 더우기 달빛아래에서 그렇게 공을 찬 것이다. 문제는 시끄럽게 떠들면서 공을 찬 것이다.
학교뒤 관사에서 살고 계셨던 선생님은 아침 일찍 학교에 나오셨다. 모든 남학생들을 복도에 일렬로 세웠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전매특허(?)인 “이빨 깨물엇!”을 외쳤다. 선생님이 앞에 오시면 그 학생은 이빨을 꽉 깨물어야 했다. 그렇게 깨물지 않으면 치아와 잇몸사이에 공간이 벌어지거나 치아가 열린 상태에서 뺨을 주먹으로 맞으면 입안 점막이 찢어져서 피가 나기 때문이다. 이빨을 꽉 물어야만 뺨안쪽의 점막이 찢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김재근 선생님은 그렇게 아이들의 뺨을 때리는 습관을 갖고 계셨다.
그런데 그날은 뺨을 때리지 않고 빗장뼈(쇄골) 위를 내리쳤다. 이빨을 깨물라고 해놓고선 빗장뼈 위 어깨를 내리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은 그렇게 하셨다. 어른인 선생님이 내리치니 아이들은 한명씩 “아이쿠!”하면서 꼬꾸라졌다. 아니 꼬꾸라지는 시늉이라도 해야 덜 혼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김재근 선생님은 키가 매우 작다. 2학년에서 가장 키가 컸던 내 키만큼 하셨다. 살결은 하얗고, 목이 짧았다. 얼굴은 살이 포동포동했고 눈은 매우 컸다. 머리를 비교적 짧게 잘랐다. 그날 아침은 속옷 차림으로 교실에 오셔서 아이들을 혼내셨다. 위에는 하얀 속옷(당시에 “란닝구”라고 불리우는 속셔츠)에, 바지는 7부 잠옷이었다. 이른 새벽에 잠자다가 화가 많이 나셨는지 그렇게 오셔서 아이들을 혼내셨다.
그 사건 이후에 고전읽기 경시대회 준비는 낮시간에만 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지금도 포동포동한 하얀 얼굴을 하고 어깨를 내리쳤던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