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93] 산토닌과 원기소

By | 2014년 9월 23일

우리집은 약방이었다. 지금의 약국처럼 많은 약들이 있었다. 그 중 산토닌이란 기생충약이 있다. 젤리처럼 생겼고, 실제로 젤리맛이다.  가끔 약방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약을 사러오는 사람이 없으면 심심하기 그지 없다. 그럴 땐 진열장 아래쪽 서랍에 있는 산토닌을 하나씩 꺼내 먹는다. 젤리과자 대신에 산토닌을 먹는 것이다.

그런 이유였을까? 학교에서 단체로 하는 기생충 검사에서는 기생충이 없다고 나왔다. 당시에 학생들의 기생충 검사결과에 보면 회충, 요충, 편충이 많았고, 드물게 십이지장충, 촌충 등이 발견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한 학생은 마침 설사를 했는데 종이봉투속에 있는 작은 비닐에 가득차게 가져온 아이도 있었다(실은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배고팠던 시절에 그 주린 배에서 영양분을 빼먹는 기생충이 많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또하나 간식처럼 먹었던 약은 원기소이다. 원기소는 어린이용 영양제이다. 나중에 나온 에비오제에 비하여 맛이 훨씬 더 달콤했다. 에비오제는 약냄새가 난다. 어느 약이나 그렇듯이 원기소도 한번에 먹는 량이 나이별로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주먹씩 먹는 날이 많았다. 아니, 처음엔 정량을 먹었다가 그 다름 살금살금 더 먹기 시작해서 결국 많은 량을 먹기도 했다. 거의 과자처럼 먹었던 것이다. 원기소를 한주먹 쥐고 동네에 나가면 아이들이 원기소를 얻어먹기 위해 손을 벌리곤 했다. 원기소를 쥐고 있던 나는 손이라도 제대로 씻었을까? 의심스럽다.

뚜껑을 열려고 병을 잡으면 속에서 원기소의 알약이 움직이며 벽과 부딪히거나 약끼리 부딪히며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귀에 선하다. 또 원기소병을 들었는데 오는 무게감으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짐작이 가곤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그렇게 먹었던 원기소가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과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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