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다(멍멍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집을 지으면 꼭 멍멍이를 키우리라’ 생각했던 것을 이제는 포기를 했다. 왜냐하면 집을 지을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멍멍이를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니지만, 나는 개는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물론 잠은 집안으로 들어와서 놀기도 하고 자더라도),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왜 멍멍이를 키우려하지?”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포함하여 여러 반려동물을 별 생각없이 키우는 경우가 많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로 “귀여워서” 혹은 “외로워서”,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해서” 등 답변들이 있다. 이런 답변들은 반려동물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이 키우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자식 한 명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멍멍이를 혼자 두는 시간이 긴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반려동물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낮시간 내내 그들을 방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개나 고양이가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멍멍이를 풀어놓거나 목줄을 채워서 키웠지만, 하루종일 사람이 집에 있었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더나아가 함께 있다고 할지라도 멍멍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밥이나 간식을 주는 것으로 모든 것을 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자신이 안고 싶을 때 몇번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다고 자신의 도리를 다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운동도 시켜주어야 하고, 함께 놀아주어야 하고, 햇볕에도 자주 노출시켜주어야 한다.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멍멍이라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가족이 아닌 타인이 왔을 때 행동을 해야하는지도 알려주어야 하고, 다른 멍멍이들을 만났을 때에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훈련을 시켜주어야 한다. 그것은 주인의 몫이다. 사실 주인이라는 표현도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자식하나를 더 키운다는 각오가 없다면 멍멍이를 키워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귀여운 강아지 때부터 키워서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품어안을 수 있는 자신감과 각오가 되어 있을 때 멍멍이를 키워야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버려지고 있다. 귀엽고 예쁠 때에야 누가 키우지 못하겠는가? 늙고 병들어가는 모습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버려지는 동물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사전에서 ‘반려’를 찾으면 몇가지의 다른 뜻이 나온다. 반려(伴侶)는 “짝이 되는 동무. [유의어] 동반자, 반려자, 짝”이고, 또 하나의 반려(反戾/叛戾)는 “1. 배반하여 돌아섬. 2. 도리에 어긋남.”의 뜻이다. 반려(伴侶)동물이 반려(反戾/叛戾)동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에 관하여 오래전에 써놓은 글 두개를 링크를 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