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내가 90년대 초에 공중보건의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때가 떠오른다. 70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가 오니 갓길로 살짝 피하려다가 그만 넘어졌는데 사망한 사고였다. 옆을 지나던 자동차 운전자에 의해 실려온 할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했을 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이를 의학용어로 DOA라고 부른다. Death on arrival).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와 부딪히지 않았음에도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사체검안을 아주 상세하게 해야 했다. 경찰이 와서 “자전거를 직접 충돌하지 않은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내놓은데다가, 운전자가 절대로 충돌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손목에 약간의 찰과상과 왼쪽 두피가 약간 부은 것 이외에는 너무 깨끗했다. 골절된 곳도 없었고, 갈비뼈 골절이 없었지만 가슴천자까지도 시행했다. 사체검안서에 쓸 말이 없어 난감했다. 따라서 몸 전체를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한번도 죽은 사람을 X-레이 촬영을 한 적이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방사선사를 설득하여 머리 사진부터 찍게 했다. 내가 직접 사망자의 머리를 잡아주면서 앞뒤, 뒤앞, 좌우 옆면 두 장, 양쪽 빗각 사진 등 6장의 사진을 찍게 했다. 물론 사진을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이학검사상 특이사항이 없었던 몸통과 팔다리 사진도 찍었다. 몸 전체를 스캔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렇게 많은 사진을 검토하니 사망원인이 나타났다. 두개골 다발성 골절이었다. 보통 두개골 골절은 두피상태에서 예상을 할 수 있고, 이학검사상 골절을 판단한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망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연세가 많아서 두피가 얇아 두개골이 만져다시피 한 경우였지만 두개골 골절을 의심할 정황(이학검사상)은 전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개골 골절이 심했으나 단 한군데도 흩으러지지 않고 스파이더맨의 가면처럼 골절이 있을 뿐 뼈조각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학검사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인은 ‘두개골 다발성 골절에 의한 두개내 출혈(추정)’이었다. 물론 CT가 없던 병원이라 실제 출혈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검안서 사망원인에는 그렇게 적었다.
그 할아버지가 안전모(헬멧)만 쓰고 있어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였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옛날 이야기를 적는 것일까?
아침 온라인 뉴스에서 “자전거 안전모 착용 새달 28일부터 의무화 논란“이란 제목을 보고 옛날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뉴스 내용에도 있지만, 2016년 기준으로 자전거 교통사고는 1만 5천건에 육박하며, 사망자수도 258명이다. 그나마 이전보다 약간 줄어든 양상이다. 또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안전모 착용여부가 확인된 사망자 941명 중 832명(88.4%)이 안전모 미착용자였다.
두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자전거를 타는 모든 사람은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첫번째 조건이다. 큰 도로에서 타는 경우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곧 안전모를 쓰는 것이라는 공식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살버릇 여든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부터 자전거를 타는 경우에는 무조건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둘째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안전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교통수신호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처음 듣는 일이라고 반응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아파트 내에서도 마찬가지)에서 수신호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기존 운전자들이 이 수신호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도 의문스럽긴 하다.
사람의 생명은 단 하나이다. 귀하지 않은 생명이란 없다. 그 귀한 생명을 경히 여기는 것은 죄이다.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렇게 노력하는 일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안전모 착용의무가 논란거리는 절대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