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흔히 잘 쓰는 말 중 하나가 “은혜스럽게”라는 말이다.
“이번 총회가 은혜스럽게 끝났으면 좋겠다.”라는가, “오늘 예배가 은혜스러웠어.”라는 표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표현은 어느 순간부터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통용어가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은혜스럽다”라는 말은 “은혜”라는 단어 뒤에서 “-스럽다”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스럽다”는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이루신 은혜”이다. 인간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 사랑이 바로 “은혜”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결과를 바라면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은혜스럽게” 혹은 “은혜스럽다”이다. 과연 “은혜”라는 단어 뒤에 ‘-스럽다’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많이 양보를 해서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서 은혜스럽게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표현은 뭔가 희석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회 안에서 “오늘 설교가 은혜스러웠어.”, 혹은 “오늘 성가대 찬양이 은혜스러웠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참 좋았어.”라는 말 대신에 표현하는 말인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은혜스럽다”라는 말의 남발은 계속 거슬린다.
“이번 총회(어떤 교회는 ‘사무총회’, 어떤 교회는 그냥 ‘총회’로 표현함)가 은혜스럽게 끝날 수 이도록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교회의 총회는 1년을 결산하고, 다음해를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각 교회의 총회는 논의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시끄러울 수도 있다. 따라서 흔히 “총회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 속에 “은혜스럽게”라는 말을 넣는다.
총회이든지, 다른 회의이든지 간에 회의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모으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때로는 논쟁을 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의견을 모아가는데 힘들 수도 있다. 그런 회의를 “은혜스럽게” 끝나면 좋겠다는 뜻 안에는 의견이 잘 모아졌으면 하는 뜻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냥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덮고 갔으면 좋겠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은혜스럽게”라는 표현이 계속 거슬리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 “우리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은혜”라는 단어를 그렇게 남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사랑”이다.
어찌 보면 “이번 총회가 큰 어려움 없이 문제를 덮고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교회에서 통용되는 “은혜스럽게”라는 말을 사용하여 “대충 넘어갔으면 좋겠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기엔 “은혜”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은혜이다. 그 “은혜” 뒤에 ‘-스럽다’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적인 싸구려 사랑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전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을 흉내내는 듯한 “은혜스럽다”의 표현으로 인간의 죄악을 감추는 일은 이제 교회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은혜를 받고 사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덜 짓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