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妥協)

By | 2019년 2월 5일

타협(妥協)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출처:네이버사전)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삶의 여러가지 상황에서 타협을 해야할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타협이라는 단어가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타협이라는 과정들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넘어, 불의와 타협을 했던 수많은 역사의 과정들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타협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 가운데 분명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느낌 때문에 이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타협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를 위한 떡국을 만들면서 타협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이 단어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 것이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집에서 모실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절인 설과 추석에는 집으로 모셔서 2박 3일의 일정을 보낸다. 직접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내 자신과의 최소한의 타협인 셈이다.

요즈음 처럼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이 많은 세상에서 집에서 노인들을 모시는 가정은 많지 않다. 더구나 꾸준히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실 노인을 집에 모시는 경우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요구된다. 즉, 모시는 사람의 개인적인 삶은 사라진다. 왕성하게 활동을 해야 할 나이의 자식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타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렇게 명절엔 집에 모시는 것이다. 물론 이 타협의 과정에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부담과 갈등의 연속 속에서 타협점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타협점을 찾을 뿐이다.

자식으로서 마음의 부담이고, 때로는 죄의식까지도 생기지만 계속해서 타협점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명절만 되면 이것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진다. 설날 아침에 쓰는 글 치고는 조금은 우울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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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설날 오후에 점심을 먹고나서 검색해 보니 작년 설에도 같은 마음의 글을 쓴 것으로 나온다. 그동안 비공개로 해놓았던 글이다. 오늘 공개로 전환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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