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그것도 진도라는 작은 섬에 살았던 나로선 영화를 처음 봤던 기억을 갖고 있다. 물론 진도읍내에는 극장도 있었고, 전기가 들어와서 TV가 있는 집들도 있었다. 내가 살았던 군내면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육지에서 들어오던 전기선이 끊어지고 복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읍내에는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여 전기를 공급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으로 기억되는 여름날 밤에 둔전리 창고 앞마당에서 영화가 상영되었다. 창고 앞마당이 마을에서 가장 큰 공터였고, 붙어 있는 두 마을인 둔전리와 장언리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도 했다. 당시에는 한양영배사라는 가설영화배급처에서 간혹 마을에 들어와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지만, 작은 스크린에 무료로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그마한 발전기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필름으로 돌아가는 영사기, 그리고 기둥을 세우고 만든 천스크린이 고작인 상황이었지만 어째든 무료로 영화를 보는 것이니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흙바닥에 앉아서 보았는지, 이동식 의자를 가져와는지, 아니면 볏짚으로 만든 멍석을 깔았는지 기억은 없지만 아무튼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다른 것들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바울을 바구니에 넣어서 창문을 통해 도르래를 이용해서 탈출시키는 장면은 지금도 내 뇌리에 뚜렷하다. 아마도 영화를 통해 선교하는 그런 팀들이 진도섬 작은 마을까기 왔던 것으로 판단된다. TV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가 삶의 한 부분이 된 지금,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본다면 조선시대의 삶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한편의 뚜렷한 장면은 나에게 있어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어렸을 때 보고 듣고 했던 경험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매체에 대해 다시금 고려하게 될 것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