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다. 내일이 주일이니 또다시 “대면예배 강행”이라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 뻔하다. 대면예배를 강행하려는 교회들은 ‘정부 방역 정책의 형평성’을 말하면서 법집행의 불공정성을 말한다.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교회가 소상공인이라면 그것이 그렇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가 소상공인이냐?”
뭐가 그리 형평성을 따질 것이 있다고들 그 난리들인지 모르겠다. 작금의 모습은 교회의 의연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고, 믿음을 빙자한 헌금걷기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비대면예배는 곧 헌금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일까?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그렇게 본다. “그렇게 본 사람이 잘못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큼 불법과 불합리, 비상식과 비형평성, 비공정성이 있을까? 죄없는 사람에 대한 십자가의 처형을 한번 생각해 보길 바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와! 믿음 좋다.’라고 생각해 줄까? 보편적인 사람들이 몰상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한국교회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다수의 교회들은 정부의 예방수칙을 따르고 있다. 실제 그런 교회들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 대면예배강행은 대형교회, 소위 배부른 교회들의 배고픔타령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할려거든, 축적해 놓은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시골의 작은 교회들에게 나누길 바란다.
설사 정부의 방역정책이 형평성을 잃었다고 할지라도 그 대상이 교회라면 교회는 그것은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곳으로 교회가 인식될 우려가 있다면 오히려 서둘러 비대면예배로의 전환을 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닐까? 예수님이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왜 내게 예배하지 않지?”라고 말씀하실까?